일주일 전
옷장문을 열어 일렬로 가지런히 걸린 옷가지들을 한 손으로 슬쩍슬쩍 제치며 두 눈으로 한 번 쓱 훑는다.
"하.. 이래선 입고 갈 옷이 영 없네. 어떡하지.."
몇 벌 되지 않는 상의, 하의를 꺼내, 이렇게 저렇게 대어 본다. 도대체 이 옷들은 몇 해전 입었던 옷들인가...
개중 그나마 나은 옷들로 골라 입곤, 전신 거울 앞에 서는 나. 거울 속에 비친 옷도, 그 옷을 입고 선 나도 초라해 보이긴 마찬가지다. 아직 돌아가시지도 않은 친구 어머니를 염두하고 조문 복장을 고르고 있다니... 순간 출처를 알 수 없는 죄의식이 느껴진다.
그동안은 나도, 아이들도 어리다는 이유로 장례식장을 갈 일이 거의 없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재택근무를 하는 내 처지엔 특별한 장소에 갖춰 입고 갈 만한 변변한 옷이라곤 없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지 않은가. 그나마 있는 옷들이라곤 이젠 7년도 더 되어 낡고 유행이 지난 옷들.. 이대로라면 옷을 한 벌, 아니 구두까지 모두 사서 입고, 신고 가야 하는 사정이다.
이런저런 어수선한 생각들을 머릿속에 굴리며 텅 빈 눈으로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이 참으로 이질적이게 느껴진다. 그나마 예식장 하객으로 참석하는 것이라면 없는 복장이라도 기쁜 마음으로 사서 준비할 텐데 말이다. 의사소통도 안 되고, 눈도 못 뜨시는 상태라고 하지만 여전히 숨을 이어가고 계신 분의 미래의 장례식을 위해 옷을 산다는 건 왠지 예의가 아닌 듯하여 잠시라도 복잡하게 펼쳤던 생각들을 모두 말끔히 접기로 한다.
"누구한테 잘 보이려 가는 것도 아니고.. 좀 볼품없더라도 어떠하리.."
친구 말론 병원에서 모든 가족들을 불러 면회를 이미 마쳤다고 했다. 며칠밖에 더 못 견디실 거라며... 하필 신랑이 가장 바쁜 주간이라 일을 주야장천 해야 하는 주다. 신랑과는 급한 상황이 되면 밤늦게 당일치기라도 다녀오자는 얘기로 합의를 마쳤다.
마치 운명의 장난 같았다. 신랑이 사고로 입원을 한 다음날 오전, 결국 친구의 어머니는 숨을 거두셨다. 친구와 통화로 갈 수 없게 된 사정을 밝히곤 잘 보내드리고 우리 곧 만나자고 미안하다는 말만 연신 전하곤 통화를 끝냈다.
"수나... 어떡하지 나 꼭 가려고 했는데 오빠가 바로 어제 차사고로 병원에 입원했어. 네 얼굴 보러 가야 되는데.. 꼭 가야 되는 건데 진짜 미안."
"아니 나는 괜찮은데 너네 오빠는 괜찮아?"
"야. 너는 괜찮다니 무슨 말이야. 우리 오빠가 지금 문제냐.. 아이들도 둘 데리고 힘들겠다. 네 마음 잘 보살피고 어머니 잘 보내드리고 우리 곧 만나자..."
괜찮은 듯 말을 주고받았지만 나와 그녀의 목소리는 분명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내가 그랬듯 그녀 또한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녀도 꾹 참고 감추는 눈물을 내가 먼저 꺼내 보일 순 없었다. 전화를 끊고서야 나는 소리 내 흐느낄 수 있었다. 두 달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리 만무했다. 나도 이렇게 아픈데 그녀는 어떨까. 나는 조금도 가늠할 수 없음에 마음이 더 아렸다.
그날 또 다른 절친이 말했다.
"이번을 계기로 생각해보니 나는 언젠가부터 예식장 보단 장례식장을 더 많이 가고 있더라고. 너도 인식하고 있었어? 우리가 벌써 그런 나이네..."
순간 복잡한 여러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표류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무엇들을 준비해야 되는 걸까. 나는 쉽게 짐작할 수 없었다.
하객룩과는 달리 조문 복장은 정해진 대상이 없을 때에 미리 준비해 두는 게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장례식이 가까운 미래에 또 예견된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조문 복장을 미리 마련해둘까 한다. 다시금 다가올 누군가의 장례식에 예의를 갖추기 위하여.
그리고.. 앞으론 조금씩 더 많이 마주 하게될 죽음들 앞에 나는 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
편히 잠드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