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을 밟는 지혜.
우주는 조바심에 가득 차 있다.
쉼 없이 달려감 / 헤르만 헤세
그대 두려움에 감싸여 있는 영혼이여,
그대는 늘 이렇게 묻는다.
험난한 날을 그렇게 많이 보냈건만
평화와 휴식은 도대체 언제 오는가?
오, 나는 안다.
편안한 날을 맞이하자마자 우리는
새로운 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사랑스러운 나날을 고통으로 보낸다는 것을.
그대는 잠시 안식을 취할 뿐
다시 새로운 고통을 찾아 나간다.
성급하게 뜨는 샛별처럼
우주는 조바심에 가득 차 있다.
열아홉
이제 막 피려던 싱그러운 꽃몽우리 시절. 그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이 내겐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때의 추억이라곤 삭막한 회색의 기억들이 전부인 것 같다. 그저 적막하고 차가운 느낌의 회색 도시, 대기를 가두던 공장 굴뚝 위의 희뿌연 연기들, 시린 회색의 벽들로 길게 둘러 쌓인 창살 없는 감옥, 그리고 그 안으론 차마 한 걸음을 쉽게 떼어놓지 못해 힘겹게 내디딘 첫 발걸음.
지금 생각해도 너무도 소중한 것들과 바꾼 그 결정들이 어쩌면 내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렇게 건강을 팔아 번 돈의 대가로 얻은 목디스크는 때때로 날 여전히 괴롭히곤 한다. 조금만 목을 오래 써도 쉽게 몸살이 오는 고장 난 몸이 된 것.
스물
목디스크란 병을 이유로 강제적 2년의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멀쩡한 직장을 퇴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난 뼈저리게 느꼈다. 건강보다 소중한 것이 없다는 흔하고 흔한 그 말의 실체와 돈이 아무리 좋아도 건강을 잃으면 말짱 꽝이란 당연한 이치에 대하여.
사람들은 겪어봐야, 잃어봐야 그제야 깨닫는다고 했다. 그 소중함의 크기와 가치를 말이다. 그래서 심신의 큰 시련이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은 별일 없이 지나는 사소한 오늘의 일상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것인지를 상대적으로 더 잘 안다. 아마도 그건 평범함을 지키고 누리고 사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으며, 사실은 가장 어렵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내가 가질 수 있는 여러 행복감은 어쩌면 단조로운 일상에 대부분 녹아 있다는 걸 난 너무 잘 알고 있다.
망각
나름의 아픔을 많이 회복한 후, 나도 한동안은 그 평범함 들을 만끽했다. 언제나 감사했고 무엇을 갖지 않아도 충만함으로 늘 가득 차 있었던 나다. 하지만 아픔에서 점점 멀어지고 평범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그 소중함을 망각하기 시작했다. 아픔에 쓸려가며 겨우 비우고 내려놓은 욕심들을 심신이 편해질수록 나도 몰래 다시 야금야금 축적하고 있었던 것.
그래서 난 가끔은 내가 정말 붕어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욕심을 향해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경주카처럼 쉬지 않고 달리다가 어딘가에 꼭 부딪히고야 질주를 멈추고, 그제야 정비를 한다. 그 순간만은 잠시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지만, 돌아서 조금만 달릴 수 있겠다 싶으면 다시 가속을 밟고 브레이크를 고장 내버리는 바보 같은 나다.
최근 고장 난 브레이크를 자각하면서도 난 계속 과속을 했다. 결국 난 또 일주일을, 보름을 시름시름 앓고 있다. 사람은 겪어봐야 깨닫고 후회를 한다고 했던가? 아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겪어봐도 조금만 내 심신이 편해지면 금세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한다. 그래서 신이 망각이란 것을 선물로 주신 것일까.
난 왜 그렇게 고생을 하고 비웠음에도 욕심을 다시 채우고 있을까. 난 무엇 때문에 이 멍청한 짓을 계속 반복하는 걸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내 사랑스러운 평범한 날들을 고통으로 바꾸고 있는 것일까.
브레이크가 고장 나기 전에
자연스럽게 밟는 '멈춤'.
우리에겐 제때 밟아주는 '멈춤'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대는 잠시 안식을 취할 뿐
다시 새로운 고통을 찾아 나간다.
성급하게 뜨는 샛별처럼
우주는 조바심에 가득 차 있다.
(헤르만 헤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