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내게 무얼 말하고 싶었던 걸까.
우연일까 필연일까.
여긴 친정집 마당이다. 나는 뜨락 위에 있고, 내 눈은 마당을 서성이는 엄마의 동선을 쫓으며 아래로 향해있다.
"니 눈에도 저게 보이지? 그래서 나는 이제 가야겠다."
그 말 끝에 엄마가 낸 수수께끼의 답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방황하던 내 눈. 그러다 어느 한 구간에서 분주하던 눈알이 멈췄다.. 우리 집 마당 끝과 맞닿은, 집 앞 골목길로 이어진 내리막 경사에 상여가 서있다.
그 상여는 내 집 마당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집 밖으로 이어진 내리막 경사에 의지한 채 마당의 끝 라인에 정확히 맞춰 서 있었다. 오동나무로 만들어진 상여는 화려한 꽃들로 장식되어 있고, 상여의 맨 앞은 누군가의 영정 사진이 걸려 있었다.
영정 사진을 본 난, 순식간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검은 테두리의 리본이 장식되어 있는 액자 속엔 바로 내 엄마가 있었던 것....
마당에 엄마가 둘인 것 같은 기괴스러운 상황의 공포감에 온 몸이 굳어졌다. 이상했다. 액자 안은 흔히 쓰는 평면 컬러 사진이 아니었다. 차갑디 차가운 시퍼런 색체의 아우라가 태양이 타오르듯 액자 밖으로까지 일렁이고 있었고, 액자 속에 든 엄마는 마치 산 채로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서슬 퍼런 아우라가 엄마에게 파란 조명이라도 비춘 듯, 액자 안에서 드러난 엄마의 모든 살갗은 파란빛으로 발색했다.
"엄마 무슨 소리야 뭐가 보인다고 그래... 제발 이상한 말 좀 하지 마. 제발.."
공포스럽고 놀라운 기색을 애써 숨기며 엄마를 다독여 본다.
"니 눈에도 저기 내 사진이 보이잖아. 난 이제 갈 때가 됐어."
엄마가 상여 옆을 지나 내리막길로 걸어가고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내가 순식간에 내달려 엄마의 팔짱을 끼곤 팔을 꼭 끌어안았다. 아닐 거라고, 다시 한번만 확인을 하자며 마당 안으로 끌다시피 데리고 와선 엄마를 설득시키려 했다. 그 순간에도 흘깃 영정사진에 다시 눈이 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액자 속 인물이 바뀌어있는 게 아닌가.
"엄마 봐봐. 엄마가 아니라 이모잖아!"
"가시네 뭔 소리하노 그럴 리가 없다. 어디가 이모로!"
엄만 보고도 모른 척하며 역정을 내셨다. 그 순간 내 등엔 천으로 된 옛 책보가 메여있었다. 언제부터 메여 있었는지는 감을 잡을 수 없었지만, 이 책보 안에 한자로 쓰인 그 문서가 '부정'이란 걸 순간 깨달았다.
난 당시 임신 만삭 때였지만, 이 부정만은 쌍욕을 하고 버려야 떨어질 것 같다는 어떤 확신이 들었다. 급히 내리막을 내려가 어깨에 묶인 책보를 풀며 집 앞 작은 도랑에 다다랐다. 그런데 손에 든 책보를 버리려던 찰나 평소보다 훨씬 넓어진 도랑의 폭과 거세진 물살의 위세에 멈칫 주저하게 됐다.
내가 서 있는 곳과 바로 앞 도랑은 마치 다른 세계인 듯 느껴졌다. 못 물이 터진 듯 불어난 도랑은 물이 가득 찼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세찬 물줄기처럼 물살은 위험해 보였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적막할 정도로 바람 한 점이 없거늘 바로 코 앞 도랑 위 바람은 태풍을 연상케 했다. 조금만 내 손이 잘 못 닿여도 금세 거센 바람에 삼켜질 것만 같았다.
잠시, 그 관경에 넉을 놓고 있다가 시간이 얼마 없단 예감이 나의 뺨을 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순간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세찬 바람결 속에 문서를 버리면 부정이 다시 와 들러붙진 못하겠단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으리.
"ㅆㅂ 재수 없어 ㄲㅈ버려!!"
난 배에 힘을 가지 껏 주고 쌍욕을 내뱉으며 문서를 도랑에 던져 버렸다. 그러자 문서는 눈 깜짝할 사이 다른 차원으로 빨려가듯 사라졌다...
"으으으~~~~ 앜."
모든 게 꿈이었다.
새벽 3시 , 옆에선 신랑이 자고 있었다. 내 옆에 누군가 있어도 전혀 안정되지 않았고, 눈앞에 생생히 그려지는 서슬 퍼런 3D 영정사진에 자꾸만 불안해졌다. 그리곤 금세 그 시퍼런 아우라가 안방을 가득 메웠다. 그러자 한 겨울 바닷가를 걷듯 차가운 공기가 내 몸 전체를 휘감았다. 그렇게 한참을 이불속에서 꼼짝하지 못 한 채 시간이 흘렀고 차가운 아우라가 현관문 밖을 모두 빠져나가고서야 조금 진정할 수 있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다음 날도 그 꿈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난 굳이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며 바쁘게 지내면서도 한편으론 꿈속에서 결과적으로 엄마를 구한 것 같아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이모 얼굴로 바뀌었던 영정 사진에 대한 찝찝함과 왠지 모를 불안함이 날 자꾸만 쫓아다녔다.
"엄마 이모한테 혹시 무슨 일 없어? 전화해봤어?"
"아니 뭐 무소식이 희소식이지 왜?"
"아니 그냥 잘 있나 전화 한 번 해보지.."
일주일 후,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모부 돌아가셨대."
"뭐... 뭐라고? 왜? 어떻게.."
만삭인 나를 배려해 이미 3일장을 다 치른 후 소식을 알린 엄마. 내가 그 꿈을 꾼 후 삼일 뒤쯤 이모부는 음독자살을 하셨다고 했다. 개인적인 사정들은 다 알지 못했고,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란 걸 대충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겐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고등학교 2년을 이모부 집에 얹혀살며 쌓인 정과 감사함은 이루 말할 수없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남은 가족들의 안위를 묻는 것, 이모부의 명복을 빌어드리는 것 밖엔 없다는 사실에 이모부의 부재가 더 허망하게 다가왔다.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 들은 그날,
꿈속 영정사진을 타오르며 일렁이던 시린 아지랑이가
한참 동안 내게 피어오르다 사라졌다.
PS. 우릴 너무 예뻐해 주시던 이모부.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