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이 감기에 걸렸다. 행복하다.

"저기 말 안 듣다 감기에 걸린 놈이 바로 제 신랑입니다."

by 미카
그놈은 아팠지만, 나는 웃었다.



나는


자식이 셋이나 있다.

둘은 유치원생인 아들과 딸.

그리고 또 한 명은 마음으로 낳은 그 자식,

바로 올해로 마흔이 되는 나의 신랑이다.


"엄마아~ 첫째 아들도 챙겨줘어~~~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못해애~"


자칭 스스로를 첫째 아들이라고 칭하는 신랑을 오늘만큼은...

'그놈'이라 부르려고 한다.

아, '놈'이라고 칭한다고 하여 절대 절대로 오해는 마시라.


<네이버 국어사전>
'놈'

의존명사
1 ‘남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
예 > 여자는 하나도 없고 시커먼 놈들만 앉아 있다.
2 ‘남자아이’를 귀엽게 이르는 말.
예> 저기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놈이 제 아들입니다.

명사
1 적대 관계에 있는 사람이나 그 무리를 이르는 말
예> 우리는 목을 지키고 있다가 놈들을 덮쳤다.



그러니까 나는

국어사전에 나오는 '놈'의 뜻 중 의존명사 2번

"저기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놈이 제 신랑입니다."

할 때의 그 '놈', 한마디로 신랑을 귀엽게 이르는 말로 쓰는 것이다.








그놈은


내가 존경하여 고른 내 '놈'이다.

결혼 8년 차에 접어든 지금, 여전히 나는 한결같은 그놈을 존경한다.


그란데 그렇게 존경스러운 그놈도 단점이 하나 있다.

그건.. 자기 신념을 웬만해선 잘 굽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융통성이 없는 것.



처음엔 이 부분 때문에 엄청 답답해하며 자주 다투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어디 남한테 피해주나?"

그래 그놈은 교묘하게 타인에게 피해를 안 주는 것 같은 곤조?내세우곤 했다.


연애 때 그런 부분 때문에 질리게 싸워서 그런가 오히려 결혼하고 이 부분을 내려놓자 거짓말처럼 사이 다툼이 줄어들었다. 이젠 일 년에 한두 번 싸울까 말까 한 정도로 거의 다투지 않고 서로 잘 맞춰 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자신을 고쳐서 이뤄낸 결실이 아니다. 내가 그냥 그를 이해한 것이다.



그런 그놈은 비가 와도 웬만큼 쏟아지지 않는 이상 비를 맞는다.

지만 맞으면 되는데 나 보고도 뛰자고 한다.

그러나 새 신발을 샀을 땐 명품이 아니라도 새 신발이 비가 맞을까 봐 우산을 쓴다.

도대체 신발이 중요한지 내가 중요한지...


집에서 생활할 때 춥다고 꿍얼거리면서도 한 겨울에도 팬티 한 장에 반팔 티만 입고 다니고, 잠을 자다가 아무리 추워도 귀찮아서 이불을 덮지 않거나 외출 시 긴 패팅이 불편하여 얇은 점퍼를 입고 나간다던지 하는 등 스스로의 몸을 혹사시키는 행동을 자주 한다. 그런 지? 몸을 위하는 건 그가 아니라 늘 나다.


사람들과 여행 계획이나 약속을 잡을 때도 그 신중한 성격 때문에 제일 늦게, 그것도 거의 당일이 되어 가기 전까지 답을 미룰 때가 종종 있다. 주변 사람들이 그 부분에 많이 답답해하고 때론 불만을 드러낸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양쪽 마음을 다 알고 이해하는 입장에서 신랑이 신중해서 하는 행동임을 알고 이해해주는 이는 역시 나밖에 없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니 나는 입장이 난처하거나 답답할 때가 여전히 많다.


처음엔.. 그래 뭐 지 몸, 지 혼자서 괴롭고 불편한 건 그렇다 쳐도 상대도 같이 대하는 건 정말이지 이기적으로 보이고 화가 났다. 그런데 결혼하고 살면서 지켜보니 절대 고쳐질 부분이 아니란 걸 인정해야 했다. 내가 선택한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입 무겁고 진중한 사람을 존경하고 그 모습에 반해 결혼했으면서 장점만 쏙 골라 좋아하고 단점은 고치려 드는 것도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신기한 것은 스스로 이해하고 내려놓고 나니.. 그놈이 같은 말 같은 행동을 하는데.. 이제 그저 귀엽고 웃기다는 사실이다.





내가 춥다고 했지, 그놈이 감기에 걸렸다.



올해도 역시


신랑은 굳이 집에 따뜻한 긴 패딩이 두 개나 있음에도 걸리적거리고 불편하단 이유로 짧고 가벼운 가을 점퍼를 걸치고 다녔다.





달 전쯤 일 것이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바다 근처에 펜션을 잡고 모임을 한다고 했다.


"자기야~ 패딩 챙겨~ 날씨 진짜 추워 바다 근처라고 했잖아."

"에이~ 뭘, 어디 나갈 것도 아니고 방안에서만 놀다 올 걸? 그리고 바다 바로 옆도 아닐걸?"

"에이~ 사람일을 어떻게 안다고 낮에라도 어디 나갈지도 모르고"

"아니야, 그럴 일 없어. 그리고 무거워 불편해."

"차가 싣고 가지 자기가 들고 가냐.. 푸하하하하 맘대로 해."




그날도 나는 격하게 권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놈이 패딩을 안 가져갈 걸 나는 뻔히 알고 있었다.

속으로

"그래 이놈아 너는 또 겪어 봐야 아니까. 마음대로 해~" 하면서 그저 웃음만 나왔다.

얼마나 말을 안 들으면 이제 신랑의 저런 행동과 말은 그저 황당하여 웃기다 못해 귀여운 수준이 되었다.

아, 결국 그 모임 후 약간의 감기 몸살 기운을 앓고 지나갔다.





며칠 전


신랑이 회사에서 고마운 분들과 연말 삼아 한 잔 하고 온다길래 용돈까지 챙겨주며 술 한잔 드리고 고맙단 인사도 꼭 전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부드럽게~ "패딩 입고 가"라는 말을 했다.


신랑은 저번 바닷가 모임 때 덜 아팠던 게 분명했다..

아니지 여적 추위에 호되게 당해 보지 못했던 탓이겠지? 기어코 또 얇은 회사 점퍼 하나만 입고 문 밖을 나가는 것이었다. 이번엔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도 아니고 택시를 타고 이동하는데 말이다. 변수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 그놈은.. 자기 몸이 좀 고생하는 게, 귀찮고 걸리적거리는 거보다 낫다고 하는 양반이니 말해 뭐 해?


이번에도 나는 한두 번 얘기하다가 속으로 생각했다.

"말도 드럽게 안 듣네.. 푸하하하하하. 그래 너는 겪어 봐야 달라지는 사람이니까. 건투를 빈다."



그날, 새벽 늦게 들어와 잠자는 내게 그놈이 뭐라고 뭐라고 하는데... 나는 그래그래라며 잠결에 대답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들어보니 엄청 추웠던 그날, 택시가 진짜 더럽게 안 잡혀 밖에서 그 얇은 점퍼 하나로 얼마나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 다는 것이다. 그래서 디지게 아프다고 했다.



신랑,, 아니 그놈은 결국 독한 감기에 걸렸다.


"자기야 나 아파 어제 너무 추웠어 열나. 감기 걸렸나 봐."

"거봐. 내가 변수도 생각하라고 했잖아. 얼마나 추운데 그러게 말 좀 듣지.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자기야 말 잘 들을게. 아씨 겁나 추웠어. 디지게 추웠어."

"아이고 그래, 말 잘 들어야 착하지 우리 아들!"



거의 8년 가까이 한겨울에도 가볍고 짧은 점퍼를 입고 다니는 걸 고집했는데 며칠 전부터 신랑이 긴 패딩에 지퍼를 턱 아래까지 잠가 입고 다닌다.

와~ 이 어려운 걸 내가 또 해냈다.

나는 집에서 물건들이 밖을 나갈 수 있게 길을 개척했던

다음으로 뿌듯했다.


푸하하하하하하.

드디어 그놈은 추위에 항복했다.

신랑이 감기에 걸렸는데 이렇게 춤을 출 기세로 기뻐하는 미친년은 흔치 않겠지~~~~~?

사람들이 이 기쁨의 의미를 알랑가 몰라?

속으로 또 혼자 엉뚱한 생각을 하며 나는 소리내어 웃었다.








신랑은 늘 그랬다.


쉽게 뜨거워지고 쉽게 식지 않는 대신, 뭐든 천천히 대피고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며 답답하리만큼 신중한 사람이다. 그런 만큼 뭐든 깨닫는 것도, 변화도 느린 사람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가 전혀 노력하는 거 같지 않았지만 그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보니 그는 늘 한결같이 내가 사랑하는 처음 모습 그대로였으며, 비록 병아리 눈물만큼이지만 그는 늘 끊임없이 노력하고 변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놈이 답답한 짓을 하고 말을 더럽게 안 들을 때도 웃을 수 있는 것 같다.

사람이라면 모두 같다.

나에게도 그가 반한 장점이 있는 반면 담점이 있듯,

우린 모두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장.단점을 갖고 있다.


나는 그놈과 내가 서롤 믿고 사랑하는 만큼,

그래서 그 단단한 세월이 쌓이는 만큼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조금씩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믿고 싶다.





"저기 말 안 듣다 감기에 걸린 놈이 바로 제 신랑입니다."


더럽게 말 안 듣는 귀여운 나의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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