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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다 Jul 08. 2024

혼자지만 외롭지 않다

자발적 왕따

15년간 회사에서 여러 번 책상을 옮겼다. 팀 막내에서 상무까지.

누군가에겐 짧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보수적인 우리 회사 기준에서 나는 초고속 승진자였다.

운 좋게(돌이켜 보면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만 없지만) 어린 나이에 상위 관리자인 상무가 되었고 7년 반을 버텼다.


그 시간 동안 그야말로 무수한 정보더미를 헤집으며 살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시도 때도 없이 회사의 대소사를 보고받았다. 업무상 발생한 굵직한 사건 사고부터 업무 외 자질구레한 직원들 개인사까지 회사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조리 입 싼 직원들을 경유해 나에게 왔다.


임명된 첫 해에는 보고받는 정보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해 보였다. 순서를 가리지 않고 귀 기울이고 고민했다. 임원 논의가 필요한 대형 사건을 제외한 대부분 문제는 나 혼자 판단하고 결정해야 했다. 나름 고심하고 한 결정에도 일부직원들의 불평은 늘 따라다녔고 모두가 만족하는 결정 따윈 현실에 없는 것만 같았다. 사실 기막힌 해답이 있다 한들 나는 그 해답을 내놓을 만큼 현명하지 않았다.


내 결정이 누군가에게 불리해진다는 사실이 불편하고 신경 쓰였지만 우유부단하게 보이긴 싫었다. 어린 나이지만 권위를 갖고 싶었던 모양이다. 권위에 대한 강박과 호인이 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참 많이 방황했다.


어느 회사든 정치가 있다. 그 안엔 업무는 덮어놓고 정치만 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일에는 관심이 없기에 항상 소문이나 정보를 쫓아다닌다. 그리고 찾아낸 정보를 확대하고 재생산해서 은밀한 비밀인 양 보고한다. 누군가의 의도로 가공된 정보는 늘 그들이 눈 밖에 난 몇몇의 험담과 비난으로 마무리되었다. 처음엔 이게 정치질이라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다 보니 어느 날부터는 그들의 쏟아내는 정보의 본질이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거짓 정보가 보이기 시작한 이후부터 나는 급격히 지쳐갔다. 왜곡된 정보를 뿌리는 이들이나 그걸 이용하는 이들이 모두 혐오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거짓 정보가 난무하는 아침 간부 회의가 정말이지 싫었다. 그렇다고 "이건 참이 아닙니다." 할 수 없었다. 아니, 하지 못했다. 괜히 모난 돌이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저 그들의 거짓정보 파티에서 입 다물어 버리는 소심한 저항을 택할 뿐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저항이 아니었다. 나는 반박도 동조도 하지 않는 침묵의 정치를 했을 뿐이었다. 현혹과 선동으로 최고 결정자의 눈과 귀가 가려지는 현장에서 나는 나만의 정치를 하고 있었다. 좋은 분위기로 무사히 회의가 마무리된 날에도 마음은 언제나 참담했다. 그들과 한패가 되어 희생양을 물고 뜯지 않았다는 사실이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증명되는 것은 아니었다. 잔혹한 파티에서 나는 조금씩 내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7년 하고도 몇 달의 시간이 지났다. 어떤 큰 사건 앞에서 결국 나는 최고결정권자와 다른 노선을 탔다.(이 사건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 며칠간 잠 못 자고 고민한 어느 날 아침, 멍한 머리와 떨리는 손으로 최고결정권자에게 '00님의 결정에 동의할 수 없어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얼마 뒤, 나는 상무에서 두 단계 하위 직급인 팀장 명함을 지급받았다.


추락이라 불러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추락했다. 한순간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임원층에서 배정받은 실무층으로 내려왔다. 더 이상 개인 방도 없다. 법인카드 전표도 직접 작성해야 했고,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하던 불편한 문제들은 타 부서에 협조 문서를 보내야만 겨우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런 불편한 변화는 익숙해지면 그뿐이니까.


진정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그들은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되는 듯했다. 여전히 상무님이라며 전 직책을 불러주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곤란한 눈빛으로 호칭을 생략했다. 호칭이 불편해서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말을 걸지 않거나 피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 또한 그들만큼 그들이 불편해졌다. 때문에 꼭 필요한 일 외엔 입을 닫았고, 가급적 책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전과는 성격이 다른 방식의 침묵의 정치를 시작하고 있었다.


늘 회의와 회식으로 북적이던 삶이 일순 차분하고 조용한 삶으로 바뀌었다. 헛헛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채우고 정돈할 무언가가 필요했기에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 근처 헬스장을 등록하고 내 마음만큼 무거운 쇠를 들어댔다. 복잡한 잡념들이 땀과 함께 배출되길 바랐다. 퇴근 후에는 집 근처 수영장을 오갔다. 물속에 들어가면 어지러운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이렇게 혼자 보내는 시간을 늘려갔고 이 생활은 차츰 익숙해지고 편해졌다.


혼자 잘 놀다가도 가끔은 술이 고팠다. 북적이던 술자리가 그리운 것인지 말이 하고 싶은 것인지 분명치 않았지만 술 생각이 날 때면 어김없이 가까이 사는 30년 지기 친구를 호출했다. 서로의 삶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관계라 딱히 진지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속내를 주고받았다. 소주가 몇 병 쌓일 동안 취기를 앞세워 속내를 뱉어내고 나면 묵은 때를 벗긴듯한 후련함이 들기도 했다.


그 외에 시간은 대부분 혼자서 보냈다. 십 수년간 손대지 않던 책을 읽기 시작했고, 일기도 쓰기 시작했다. 운동, 독서, 일기로 생활 루틴을 만들고 나니 사람 관계에 대한 욕구도 점진적으로 줄어들었다. 대신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비례적으로 늘었다. 내가 뭘 좋아했는지, 뭘 불편해했는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희미하기만 했던 내가 조금은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알던 나보다 훨씬 내성향 인간이란 걸 인식했다. 혼자 지내는 삶이 사람들과 함께할 때보다 더욱 풍요롭다고 느꼈다. 단순해진 생활루틴은 빡빡한 스케줄이 있던 삶 보다 훨씬 내실이 있었다고도 여겨졌다. 마치 나 자신과 연애한다는 착각이 들만큼.



이렇게 만들어진 분위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연애에 대한 감정과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기 마련이다. 갈수록 깊어지기도 하지만 보통은 옅어진다. 때문에 혼자 보내는 시간이 어느 날 갑자기 지겨워질 수 있고, 불현듯 삶의 패턴을 바꿀 계기가 찾아와 혼자만의 시간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나로서는 앞으로 나에게 일어날 일을 알 길이 없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여느 때보다 충만한 마음으로 나와 만나고 있고 조금씩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만은 분명하게 느껴진다.

이별을 염두하고 시작하는 연애는 깊이 빠지기 어렵기에 기왕 연애를 시작했다면 설령 언젠가 이별할지라도 과감하게 현재만을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나는 지금 하고 있는 나와의 연애에서 이별을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우연히 나를 들여다보게끔 만들어 준 환경에 불평 대신 감사를 하며 걸어가고 싶다. 이 시간동안 나를 계속 두드리며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만나기를 기대하련다.


202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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