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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마꼬 Jul 14. 2024

나에게 영어 카세트 테이프란?

- # 1 세상은 아직 따뜻하다. -

  나는 국민학교 때의 일기장을 아직까지 가지고 있다. 30권에 가까운 일기를 보면 나의 꿈은 초등학교 교사였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아버지의 부재로 인하여 실업계 고등학교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꿈까지 길을 잃지는 않았다. 경북 영천에서 고등학교를 보내면서 취업은 꼭 서울에 하겠노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꿈을 꾼 것은 현실로 이루어졌다. 난 19세에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면서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몸은 지쳐도 꿈을 이루겠다는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다.


  사회생활 1년 6개월 만에 중소기업에 취업을 하였다. 그 회사는 만년필을 도매로 파는 회사였다. 거기에서 내 인생의 큰 영향을 주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영업팀 과장님이셨다. 과장님은 키가 180cm 정도에 등치가 크셨다. 얼굴이 까무잡잡해 보이셔서 매우 건강해 보이는 분이셨다. 항상 웃음으로 회사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저래야겠다고 항상 다짐했다. 내가 그 회사를 근무하는 2년 정도의 시간 동안 한 번도 화를 내시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운동도 많이 하시고, 항상 영어공부를 하시며 자기 관리가 철저하신 분이셨기에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교대에 가기 위해 야간 수능 학원을 다니며 수능 공부에 몰두했다. 회사를 다니며 수능공부를 하는 게 쉽지 않았다. 회계팀이라 월말기간이 되면 학원에 가서 꾸벅꾸벅 졸음과 싸우기 일쑤였다. 그래서 학원 수업을 녹음해서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에 줄곧 들었다. 불광역에서 3호선을 타고 압구정역으로 가는 길에 운이 좋으면 자리를 맡게 된다. 30분 걸리는 시간 동안 수학 문제집을 풀다가 졸아서 볼펜을 놓친 적도 수차례다. 내 앞에 서서 가던 사람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회사 점심시간에는 남들은 식당 가서 밥 먹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사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때 난 그들과 지금 현재 나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고 생각했다. 난 혼자 KFC에 가서 햄버거 하나 시켜놓고, 수능 문제집을 열심히 풀어나갔다.


  어느 날, 과장님께서는 그런 나의 모습을 알게 되셨다. 그래서 그다음 날부터 과장님께서는 매일매일 MBC FM 영어회화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을 하셔서 나에게 선물처럼 건네주셨다. 그게 하루의 시작이 되었다. 주말이 되면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까지 테이프 세 개를 한꺼번에 주시기도 하셨다. 아무 연고도 없는 서울에서 이렇게 꿈을 격려해 주시는 과장님을 만난 다는 것은 나의 커다란 인복이었다.


카세트 테이프

  

  과장님은 해외출장을 다녀오시면서 성공의 의미로 꼭 만년필을 선물해 주셨다. 이를 질투하는 다른 부서 언니들도 있었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언니들은 이미 대학원까지 다 나온 능력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과장님 덕분에 영어 점수도 많이 향상되었다. 그해 나는 수능을 봤다.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한 한 단계 다가갈 수 있었다. 집안 사정상 주간 대학을 갈 수 없었고, 야간 대학교를 다니며 교사자격증을 딸 기회가 얻었기 때문이다.


  과장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회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 가는 거야."

  "행복은 운이 아니야, 자기가 만들어 가는 거야."

   

  꿈을 이루자마자 가장 먼저 찾은 분은 바로 과장님이었다. 케이크를 들고 과장님을 찾아뵈었는데, 늘 그렇듯 건강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 주셨다. 과장님께 받은 그 따뜻한 격려를 나도 다른 이에게 전파시켜야겠다는 생각이 깊게 들었다. 나에게 영어 카세트 테이프란? 세상의 따뜻함을 알려주는 메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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