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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마꼬 Jul 16. 2024

저거 피 아니야?

- 도시락 먹방한 날 -

#1. 피구  


  여름 방학 전 마지막 체육관 수업이었다. 아이들은 줄넘기, 장애물 경기를 해서 온몸에 땀이 비 오듯 내렸다. 쉬는 시간 종이 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육관에서 조금이라도 더 놀고자 하는 의지가 보였다. 그래서 왕잡기 피구게임을 했다. 1학년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종목이지만, 태권도 학원, 체육 학원에서 많이 한 아이들이 예전부터 소원했던 놀이였다. 여학생은 여학생끼리, 남학생은 남학생끼리 가위바위보를 했다. 그래서 진 사람 편, 이긴 사람 편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같은 편에서 왕을 뽑았다. 왕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은 공을 맞아도 아웃되지 않고, 왕이 공을 맞으면 게임이 끝난다. 아이들은 공 하나에 온몸을 집중한다. 공이 저 멀리 날아가면 강아지가 밥그릇 쫓아가듯 공을 쫓아가는 모습이 정말 귀엽고 애쓰는 모습이 사랑스럽다. 마음 같아서는 체육관에서 한 시간 더 수업을 하고 싶었지만, 정해진 순번이 있기에 피구를 멈춰야만 했다. 다행히 무승부였다. 서로 상대방에게 격려의 말을 해 주기로 했다.

  "너 아까 공을 진짜 멀리 던지더라. 그래서 당황스러웠어."

  "나 왕 아니었는데, 왜 나 맞추려 했어? 그때 마음이 두근두근거렸어."

  "공이 나에게 올까 봐 두려웠어."

   마무리는 내가 했다.

  "이번 수업에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 들어 보세요."

  내 눈에는 열심히 하지 않은 친구도 보였으나, 항상 자기 평가를 할 때는 모든 아이들이 손을 든다. 자기 평가도 매우 중요하기에 난 긍정적으로 인정해 준다.

  "정정당당하고, 열심히 참여한 자기 자신에게 칭찬의 박수~ "



#2. 저거 피 아니야?


  피구가 끝나고 온 교실은 한동안 조용하다. 아이들의 기운을 쏙 빼고 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단 5분만!! 곧이어 점심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운동 후 먹는 급식이라 이만한 꿀맛도 없을 것 같다. 아이들이 급식을 먹을 때 나는 가림판을 하고 나의 도시락을 먹는다. 초라한 나의 샐러드 도시락을 굳이 공개하면서 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꼭 가림판을 하고 먹는다. 다른 때보다도 점심시간은 특히 더 조용하다. 입으로 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간이 그나마 귀가 쉬는 시간이라 나름의 힐링 타임이다.

  그때 갑자기 여기저기서 구시렁구시렁 소리가 들렸다.

  "야, 저거 피 아니야?"

  "색깔이 왜 저래?"

  "저거 먹는 음식 맞아?"

  "드라큘라가 먹는 음식 같이 생겼어."

  난 아무것도 모르고

  "조용히 급식 먹겠습니다. 급식 다 먹고 친구랑 대화 나누어요."

  우리 반 예준이가 큰 소리로 말한다.

  "선생님! 점심 실시간 먹방하는 거예요?"

  "응?"

  "선생님 왜 저런 걸 드세요?"

  "응?"

  알고 봤더니, 실물화상기를 실수로 켜놓고 점심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양배추, 당근, 병아리콩이 비트 색깔에 물이 들어 도시락 전체가 온통 시뻘겠다. 교실에 있는 그 큰 TV로 도시락을 먹방하고 있었다니.... 참, 나 스스로가 한심하고 민망한 순간이었다. 도시락 내용물은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는데, 온통 공개를 해 버렸다. 이게 바로 자살꼴이다!



#3. 학부모 상담


  3월은 1년 중 가장 바쁜 달이다. 그중에 가장 심장이 두근두근 하는 행사는 입학식도 아닌, 학부모 공개수업도 아닌, 바로 학부모 상담시간이다. 학부모의 요구가 많은 시기라서 어디까지 가드라인을 긋고 대응을 해야 할지 아직도 어렵다. 그때 한 학부모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자기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민망하다는 듯이)

  "선생님,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지, 말아야 될지 사실 고민이 됩니다. 아직까지 이런 질문은 한 번도 못 들어보셨을 것 같은데요.."

  학부모 민원이 넘쳐나는 요즘에 숨이 턱 막히는 서두였다. 갑자기 손에  땀이 났다.

  "선생님, 이런 질문 죄송한데요.

   우리 지훈이가 선생님께 꼭 여쭤봐 달라고 해서요.

   선생님, 도시락 뭐 싸서 오세요? 지훈이가 말하기를 '우리 선생님은 빨간 거를 드셔. 그게 뭘까? 여러 번 지나가다가 봐도 절대 모르겠어. 엄마가 상담 때 꼭 여쭤봐 줘'라고 했답니다. 어떤 도시락을 싸 오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교직 경력 18년 동안 이런 상담 내용은 생전 처음이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네, 지훈이가 정말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제가 싸서 다니는 도시락은 샐러드 도시락입니다. 양배추, 당근, 비트, 병아리콩이랍니다."


  선생님의 도시락이 뭐라고 그렇게 궁금해할까?

  작은 거 하나에도 관심이 집중되는 우리 1학년 천사들...

  오늘도 덕분에 많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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