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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친왕 묘

by 정유지

완친왕 묘

출처:조선왕릉사진작가 김상일

망국의 한이 서린 서삼릉 후궁묘역

대원군 깊은 총애 황후의 표적 되어

황태자 될 뻔한 운명

완친왕에 족하다


-정유지



서삼릉 숙의묘역에 모셔진 분들 중에 후궁이 아닌 분도 모셔져 있는데, 고종과 영보당 이씨의 사이에서 태어난 서장자 완화군(完和君, 완친왕 추존)의 묘가 그것이다.


완친왕 묘가 어이없게도 후궁묘에 자리하고 있다. 봉분과 비석 이외에는 아무것도 조성되어 있지 않다. 1864년(고종1) 철종과 그의 비 철인왕후 김씨의 예릉이 들어서 ‘서삼릉’이라고 불렸다.




완친왕(이선, 1868~1880)은 완화군(完和君)으로, 고종 장남이다. 영보당(永保堂) 귀인 이씨와 고종과의 사이 태어난 아들로, 고종의 서자이지만, 첫 번째 아들이다.


흥선대원군이 완화군을 매우 총애하여 세자에 앉히려고 했었으나 명성황후의 완강한 반대로 실패했다.


명성황후, 흥선대원군 사이 반목의 원인이 되었고, 완화군은 명성황후의 질투로 독살되었다는 설이 있다.


완화군은 1880년에 병을 얻어 사망했는데, 귀인 이씨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실어증 걸려 병을 앓다 사망했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사후에 완화군은 완친왕(完親王)으로 추존되었다. 자식 잃은 슬픔으로 실어증 걸린 귀인이씨의 아픈 사연이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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