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오늘의 창

도시 곳곳마다 속도를 잡아먹는 거미줄을 주목한다.

나는 외계인이다, 도시 벽을 타는 금성인이다, 거미줄을 발견한다.

by 정유지

위험한 외계인처럼 도시 벽을 타며 산다

절벽과 절벽 사이를 넘나드는 줄타기

생과 사의 교차로 ‘찐’ 전쟁터의 통과,

거미줄처럼 잇고 또 잇는 표식이 등허리에서 끈끈하다


또 다른 외계인을 간과했다

과거를 삭제하는 결과론자를 만나면 땡볕에 서있는 듯하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다

해답 없이 헤어질 때가 많아 그를 회피하고 우회 전술 구사,

그도 마찬가지겠지


고독이 주성분인 거미줄 세트를 갖고 활보하는 지구인, 그들을 바라본다


도시가 속도를 잡아먹는 거미줄로 몸살을 앓는다

3톤 우주선을 모는 외계인조차 저항 없이 침묵해야 이 도시에서 살아갈 수 있다

졸다가 고정형 거미줄에 걸려들기도 하고 속도를 잡아먹는 이동형 거미줄에 포획되기도 한다


초등학교 근처 밀집 주택가 어린이보호 구역에 주차한 외계인에게 범칙금이 부과됐다, 크다

폐부 찌르는 신음

그뿐인가 블랙박스형 거미줄에 걸려든 경우, 날벼락 같은 활자가 괴롭힌다

악 소리도 못한 채 사전 납부제를 선택한다

몇몇은 거미줄을 탈출하지 못해 휴화산을 안고 산다


벌점이란 족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 보지만 또 걸릴 것을 안다


도시가 끈적거린다 거미줄이 늘어난 빌딩 숲을 헤적이며 걷는다


서서히 나를 감는다

- 정유지의 시, 「거미줄」 전문


오늘의 화두는 ‘거미줄’입니다.

나는 외계인입니다. 관계지향의 금성인입니다. 금성인은 목적지향의 화성인과 공존해야 합니다. 도시마다 설정된 벽을 오르내리는 줄타기를 하는 금성인입니다. 제 눈엔 거미줄이 보입니다. 도시 곳곳마다 설치된 거미줄입니다.

속도를 잡아먹는 거미줄이 존재합니다. 고정형, 박스형, 이동형입니다. 속도제한이란 거미줄을 펼쳐놓고 먹잇감이 걸리기를 기다립니다. 안전이란 든든한 논리의 방패로, 속도를 추가하는 만큼 더 키워서 잡아먹습니다. 물론, 안전이란 이유는 가장 우선시될 수 있는 논리의 정점입니다. 속도가 곧 세금으로 귀속되는 그 과정에서, 생계를 위해 우주선을 타야 하는 이들에겐 가혹할 수 있습니다. 이들에겐 속도가 곧 생계로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외계인들이 타는 전용 우주선마다 200킬로까지 날아다닐 수 있도록 설계되었는데, 실제 그 용량을 다 발휘하려면 이 도시를 벗어나야 가능합니다. 도시 안에서는 있는 듯 없는 듯 날아다녀야 곳곳에 쳐놓은 거미줄에 걸려들지 않겠지요.

교통법규 세금을 세게 만들어, 안전의 펜스를 치겠다는 논리는 굉장히 타당해 보입니다. 어린이보호구역 속도 위반 시, 12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됩니다.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이들에겐 큰 호응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자가 우주선을 타고 직장에 출근해야 하는 외계인들에겐 늘 부담일 수 있습니다. 방범 거미줄은 많을수록 좋습니다. 한편 속도를 잡아먹는 거미줄이 많을수록 자가 우주선 타는 외계인들의 그 부담은 더 커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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