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의 첫째 부인 정성왕후 운명한 후
영조가 죽어 함께 묻히길 원했건만
권력의 눈치 본 정조
홀로 묻힌 물망초
-정유지
홍릉은 사적 제198호로 제21대 영조 원비 정성왕후 서씨(1692~1757) 단릉으로 서쪽은 우허제로 비어 있다.
병풍석은 없고 난간석만 둘러져 있고 능상은 삼계로 구분되어 있다. 무인석과 문인석도 있다. 영조는 왕자시절 11세에 13세인 첫 번째 부인과 혼례를 치르게 되는데 그가 바로 영조의 왕비가 된 정성왕후이다.
정성왕후는 본관이 달성(達城)이며, 1692년 달성부원군 서종제의 딸로 태어났다.
1740년 혜경이란 존호가 올려졌고, 1757년 정성왕후가 66세로 서거하자 영조는 경기도 고양에 있는 서오릉에 정성왕후의 묘지를 마련하고 봉분 두 자리를 만들어 오른쪽을 비워 두게 한다. 그곳을 홍릉이라 하여 자신이 죽은 뒤 그곳 오른쪽 자리에 함께 묻히기를 원했다.
영조는 사후 정성왕후 서씨 옆에 묻히고자 했으나 정조가 살아있는 권력 정순왕후 눈치를 보느라, 결국 홍릉을 배제하고 원릉을 조성했던 것이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데도 살아있는 권력으로 인해 원하지 않는 곳에 묻힐 수 있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비록 홀로 묻혔을 지라도 영조 사랑을 듬뿍 받은 정성왕후의 홍릉은 결코 외롭지 않으며, 분명 영조의 영혼은 오른쪽 자리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