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랑하는 나그네, 하늘은 흐리고 비는 내리지 않지만 거친 바람은 불고 짚신을 신고 있다. 어깨에는 무거운 짐이 있는데 나뭇가지가 가득 들어있는 짐승의 가죽으로 이루어진 주머니를 짊어지고 있다. 수시로 짐이 무겁게 느껴져서 눈에 닥치는 대로 아무 집의 대문이나 두드리지만 문전박대는 일상이고 면전에다 대고 욕설을 먹는 일오 허다하다. 사람들은 나를 반겨줄 이유도 없지만 실제로 반겨주지도 않으며 나는 그들에게 기대를 하지 않으나 일말의 기대를 거는 것도 사실이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운이 좋게도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여느 경우처럼 아무 문이나 조심스럽게 혹은 미친듯이 두드렸고 나는 어느 집에 상대방의 호의로 입장을 할 수 있었다. 물에 젖어 무거운 짐을 즉시 땅바닥에 내려놓고 숨을 돌리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시원한 냉수를 부탁했고 상대방은 기꺼이 그리고 빠른 속도로 즉시 나의 쉽지 않은 부탁을 들어준 뒤, 그제서야 자기의 입장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냉수를 먹다가 사발을 내려놓고 다시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에도 허탕인 것 같았다. 그래도 고맙다는 인사는 제대로 건네고 떠나야만 할 것 같았다. 상대방은 그래도 양반에 속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문전박대는 당하지 않았으니까 운이 정말 좋은 경우라고 생각을 하고 싶다. 짚신이 아까보다 더 풀려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