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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난삽하다

깃털

by 고대현

정확한 시점은 모르겠다. 언제부터 내 통장의 잔액은 내 몫이 아니었다. 내 지갑의 지폐는 내 몫이 아니었다. 내 서랍의 동전은 내 몫이 아니었다. 내가 기거하는 셋방은 내 몫이 아니었다. 나의 처소는 내 몫이 아니었다. 나의 유일한 취미인 도서들은 내 몫이 아니었다. 통장의 수치가 낮아지고 지갑의 지폐가 줄어들면 내 몫이었던 책을 가져다가 팔았어야 했기 때문이다.

굴러서 들어온 인간은 박혀서 있는 인간을 열심히 도려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박힌 인간은 안간힘을 쓰지만 즉 사력을 다하지만 상대방의 의지를 꺾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비탈길로 향한다. 낭떠러지는 일종의 원치 않는 목적지다. 나는 밀려난다. 나는 반항한다. 나는 저항한다. 나는 항거한다. 나는 어리석다. 나는 벼랑의 끝으로 밀려난다. 이미 밀려났다. 어느 새 나는 낭떠러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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