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 박정희 묘소 참배
며칠 전에 장인어른 기일이라 유해를 모신 동작동 현충원 충혼당(납골당)에 아내와 함께 다녀왔다. 간 김에, 날씨도 좋고 해서 잘 꾸며논 원내를 산책하다 박정희 전대통령 부부 묘역을 만났다. 계단으로 올라가며 사방으로 묘 주위와 비문 등을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묘 앞에 서서 두 손 모으고 참배했다. 젊은 시절에 무척이나 미워하고 증오했던 사람이었다. 1979년 10.26 사건 당시에는 상병으로 군복무 중이었다. 당시에 김재규가 박정희 죽였다는 소식 듣고 너무 기쁘고 흥분되서 표정 관리하려 애썼었다. 그래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의 박정희 유신독재체제에 대한 혐오감과 증오감이 당시 중대 인사계 이원규(?) 상사님과 대부분의 내무반 선후임 동료들의 평균 정도 보다 훨씬 더 컸다고 생각했었다. 정말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후, 제대하고 복학하고, 대학원 다니고 국토연구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즉, 4.19 이후 혼란했던 한국사회, 특히 정치판, 그 상황에서, 5.16과 박정희 통치가 없었어도, 현재와 같은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선진국 대한민국이 과연 가능했을까? 라고 질문해 본다. 아마도 어려웠을 것, 최소한 훨씬 더 많은 시간과 사회적, 국가적 비용을 치뤄야 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박정희 이후,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에 이어서 윤석열, 이재명까지 겪으며 비교, 판단해 보니 그렀다는 말이다.
이 나이까지 살면서, 중국에서 15년 이상을 살아보고, 중국공산당 역사와 마오쩌뚱, 그리고 명실상부한 '후조선'에 백두돼지핏줄 김가 패밀리 류의 실상과 행적을 알면 알게 될수록, 그들과 비교하면서, 그래도 박정희는 신사(젠틀맨)였다. '박정희 독재'는 애국애민의 방향성이 있었고, 실천전략과 전술도 탁월했고 합리적이었다. 독재의 정도도, 그 정도는 상대적으로 절제된 독재였고 휴머니즘이 있는 독재였다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실사구시(实事求是)적 경제발전 전략과 측면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인도주의, 휴머니즘,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도 위의 두놈 마오와 김가하고는 비교 자체가 우숩다는 것이다.
전체주의 사상과 폭력을 극도로 혐오하고, 개인의 자유와 인권에 무한한 가치를 부여하고, 최고의 중요 가치, 기본 가치로 보고 있는 나의 관점에서 보자면, 박정희에게도 물론, 독재정치로 인한 폭력과 죄과는 있다(특히 유신 이후). 그러나 그렇다해도, 그 조차도 마오와 김가 이 두놈과 비교하면 그 정도면 신사(젠틀맨)라는 말이다. 아닌가? 혹시 이견 있는 분 있으면 마오와 김이 저지른 일들을 조금만 더 진지하게 찾아보시라 권하고 싶다. 요즘엔 주요 참고자료를 쳇GPT나 제미나이 등 AI에게만 물어봐도 줄줄 잘 정리해 줄 것이다.
소위 진보, 좌파 지식인이란 자들은 남한내 독재자를 증오하며 투쟁하고 싸우면서, 정말로 위험 천만한 주적인 공산당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풀고, 오히려 "적의 적은 동지"일거라는 정말로 말도 안되는 착각까지 했던 사람도 적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오랜 기간 중공 통치하의 중국과 한국에서 경험하고 관찰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사상 사춘기인가? 진실을 깨닳고 난 각성과 충격인가?
사상 패러다임 쉬프트라 하겠다. 앞으로 또 이 정도로 바뀔 수 있을까?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이 정도로 큰 폭과 강도로는 아닐 것이다.
박정희님, 제가 이 전에는 당신을 지나치게 많이 증오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조금 덜 증오했거나 조금 더 이해해 드리려고 노력했더라면, 내 인생도 좀 더 긍정적, 생산적, 건설적으로 진행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젊은 시절 다 보내고 60대 끝줄 나이에 아쉬움 속에 저의 한계를 확인, 인정하고 사과드립니다.
아무튼 부디 저승에서 김재규님 만나시면 제 안부도 전해주시고, 두분이 함께 잘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박정희 #현충원 #사상사춘기 #김재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