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길(我们的路)(9)

중국현대소설 번역 연재, 罗伟章의 중편 소설, ‘我们的路’

by 탐구와 발언


사람들이 떠나자 집이 너무 갑작스럽게 비어버렸다. 방금 전의 그 떠들썩했던 장면이 마치 꿈속의 한 장면 같았다.

아내가 저녁 준비할 때 나는 딸 아이를 찾으러 집을 나섰다. 중간 공터에는 아무도 없어서, 동쪽과 서쪽에도 가보았으나 모두 아이들만 없는 게 아니고, 어른조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불과 십 분 전에 우리 집에서 나간 그 노인, 부녀, 아기들이 모두 깊은 시간 속에 조용히 가라앉은 것 같았다.


서쪽 공터에 갔을 때, 춘매네 집을 수차례 바라봤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집 안 사람들은 깊은 정막 속에 잠겨 있었다. 다만 담 위의 개집에 웅크려 앉아있던 그 큰 회색 개가 삼각 눈을 치켜 뜨고 나를 30초 정도 노려보았다. 이번에는 짖지 않았다. 아마도 녀석이, 그의 주인이 나를 ‘따바오’라고 부른 것과 수년 전에 내가 확실히 이 마을에서 살았다는 것을 기억해 낸 듯했다.

9-농민공4.jpg 농민공

나는 다시 진흙탕 같은 밭고랑을 따라 학교로 갔다. 조금 큰 애들은 학교에 가서 탁구를 칠 수도 있고, 딸아이와 같이 작은 애들은 그 뒤에서 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학교에도 사람은 없었다. 학교는 주민들의 주택과 같이 모두 목조 건물이었다. 20여년간 바람과 비에 목판은 전부 좀먹고 썩어버렸으며, 매우 많은 곳이 갈라져 있었다. 격자창에는 나무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고, 훤하게 활짝 열려있었다. 학교 앞쪽에는 솟구친 산들이 있고, 뒤쪽에는 산성 성벽이 있었다. 산성 아래부분에는 누군가가 구멍을 하나 파고, 그 구멍 안에 여래불상을 모셔 놓았다. 이는 옛 절에서 남겨져 온 유물로, 수년 전에 흙 속에서 파낸 것이다. 이 같은 정경은 나에게 일종의 환각을 불러 일으켰고, 그로 인해서 나의 마음 또한 아득히 먼 과거로 잠복했다. 과거가 깊어서 바닥이 안보인다. 바로 미래와 같다.

그때의 나는 숨을 쉬고 있었고, 울퉁불퉁 고르지 못하고 곳곳이 물에 잠긴 진흙땅 위에 서있었다. 그러나 나는 자기 조상을 전혀 모른다. 그들이 어떤 길을 걸어 갔는 지, 그들이 어떤 어떤 뿌리의 그물망에서 어떤 인연과 기회에서 나를 만들어 냈는 지 모른다.


  운동장이 큰 흙더미를 안고 있었고, 시든 풀이 빽빽하게 물웅덩이 가운데를 덮고 있었다. 운동장 가에는 두개의 사람 형상의 돌사람이 서있다. 이 두개의 돌사람은 땅속에서 발굴되어 나왔는 데 원래 부처 옆의 장군이었다 한다. 둘 다 모두 머리가 잘려 있었는 데, 그중 하나는 찾았으나 다른 하나는 찾지 못했다. 사람들이 찾아낸 머리를 목 위에 올려 놓았는 데, 목덜미가 손상되어서 안정되게 놓지를 못해서, 바람이 강하게 불면 쿵쿵 흔들거렸다.

나는 일찍이 이곳 소학교를 다녔고, 지금은 나의 딸이 이곳 유치원반에 다니고 있다. 나는 이 산에서 나가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 나의 딸은 이룰 수 있을까? 만일 나의 딸이 나와 같이 대학에 합격하고, 한푼도 없이 입학하게 되면, 그녀와 그리고 나에게 장차 어떠한 종류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학교에서 나와서 뒷산을 향해 올라갔다. 뒷산에 올라가면 높은 곳에 제법 넓게 평평한 곳이 있는 데, 쏭린완(松林弯)이라 부른다. 한때는 이곳 넓은 면적에 빽빽하게 튼튼하고 실한 유송림(油松林)이 자랐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마을 사람들이 소나무숲을 모두 불사르고 뿌리까지 파낸 후, 땅을 갈아 엎어서 밭으로 만들고, 옥수수와 수수를 심었다. 현재 쏭린완(松林弯)에는 소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

잣나무는 이 빈약한 땅에서도 하늘을 찌를 듯한 큰 나무로 자랄 수 있지만, 농작물은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없었다. 옥수수와 수수의 생산량 모두 매우 낮았고, 마을에서 거리가 멀고, 일하는 사람들이 분분히 마을을 떠난 후에는 이 땅들이 버려져 황무지가 되었고, 아이들의 낙원이 되어, 여름에는 잠자리와 나비를 잡으러 가고, 겨울에는 눈싸움을 하러 갔다.

농촌에 남겨진 농민공 자녀들

과연 딸아이 인화(銀花)와 대여섯명의 꼬마들이 그곳에서 눈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 아이들 중, 현재 인화만 부모가 모두 집에 있고, 나머지는 모두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딸 아이는 나를 보더니, 추위로 붉고 통통해진 두 손을 벌린 채 눈 위로 깡총깡총 뛰어와서 바람을 맞으며 큰 소리로 말했다. “아빠, 내가 친구들 아빠 엄마 만드는 거 도와주고 있어”

아빠 엄마를 만든다고? 다가가서 보니, 아이들이 눈사람 10여개를 만들어 놓았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아빠, 엄마였다!

인화가 말했다. “아빠 이거 봐, 하오쯔(耗子)가 자기 아빠 만들 때 잘못 만들었어. 그 애 아빠는 분명 손이 하나뿐인데, 그 애가 손을 두 개 만들었어.”

‘하오쯔’라는 그 남자아이는 인화보다 몇 살 많았다. 그의 아버지는 3년 전에 신장(新疆)의 한 탄광에서 가스 폭발 사고를 당해서 왼팔을 잃었다. 상처가 아물자마자 그는 아내와 함께 다시 우한(武漢)으로 갔고, 그의 아내는 목재 공장에 들어갔고 그는 한커우(漢口) 강변 일대에서 고물을 줍고 있다.

9-농민공2.jpg 농민공

나는 하오쯔가 만든 그의 ‘아빠’ 눈사람을 보았다. 왼팔이 유난히 크고 길었다.

나는 하오쯔를 안아주며 말했다. “하오쯔, 잘 만들었어. 네가 맞아.”

하오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성숙하고 확고한 모습은 내가 감히 마주하기 힘들 정도였다.

하오쯔를 내려놓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아빠, 엄마를 그리워하는 만큼, 너희들 아빠, 엄마도 너희를 그리워한단다. 너희가 집에서 공부만 열심히 하면, 너희 아빠, 엄마는 기뻐하실 거다.”

인화보다 조금 더 큰, 징징(京京)이라는 여자아이가 물었다. “아저씨, 아빠, 엄마에게 제가 안보이는 데, 어떻게 알고 기뻐해요?”

여자아이는 앞니 하나가 빠져 있었다. 너무 추워서인지 아니면 이빨이 바람을 막아주지 못해서인지 말이 분명치 않게 들렸다.

9-농민공1.jpg 농민공

   내가 그애 앞에 쪼그려 앉은 후 그애 얼굴을 보며 말했다. “네 아빠, 엄마는 너를 볼 수 있어. 아빠, 엄마가 너를 낳은 후부터 아무리 멀리 가도 너를 볼 수 있단다.”

징징이 말했다. “그럼 저는 왜 아빠, 엄마를 볼 수 없어요?”

“너도 볼 수 있어. 단지 그때는 네가 잠들어 있어. 아빠, 엄마는 네가 잠든 사이에 와서 너와 함께 있어.”

징징은 깡충깡충 뛰면서 말했다. “그럼 나 오늘 밤에는 안 잘 거에요!”

내가 말했다. “그건 안 돼. 네가 잠을 안 자면 아빠, 엄마는 기뻐하지 않을 거야. 그러면 네게로 오지 않을 수도 있어.”

징징의 눈속에 밝았던 빛이 엷어지고 망망한 슬픔이 보였다.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가 슬퍼하는 모습이 뼛속 깊이 새겨졌다.

눈바람 속에 이미 황혼이 내려왔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억새풀을 뜯어서 아빠, 엄마들을 덮어준 뒤,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왔다.

인화(銀花)가 나에게 업어 달라고 했지만, 나는 들어주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없었다. (계속)


#농민공 #방치된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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