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성 Oct 24. 2023

중국현대사의 교훈

박인성의 중국현대사(저자 노트)

1921년 창당 후 초기에는 중공중앙의 업무 지휘권을 코민테른과 소련 유학파들이 장악하고, 혁명 전략의 중점을 도시 중심의 노동자 운동에 두었었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징강산에 들어가 근거지를 구축하면서 토비들의 싸움 방법과 군중노선과 실사구시 전략을 결합한 이른바 ‘16자 전술’을 고안하고 실천해서 상당한 재미를 보았다.


마오는 장정(长征) 초기에 준이회의에서 당 중앙의 권력을 장악한 후, 이 전술을 더욱 강화 및 확대시켜 나갔다. 핵심은 농촌과 산간 오지에 혁명 근거지를 구축하고, 유격전으로 국민당 군대에 맞선 것이었고, 결정적 동력 발원지는 농촌 인구 구성원 중 대다수를 점하는 고농과 빈농의 지지 획득을 겨냥한 토지 이슈였다.


1949년, ‘사회주의 신 중국’ 출범 후에는 토지개혁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200만 명이 넘는 지주와 그 가족들이 토지를 강탈당한 후 처형되거나 ‘오악(五恶) 분자’ 등으로 분류되어 연좌제까지 적용된 차별과 학대를 당했다. 단, 그 같은 폭력을 농민 중 대다수를 점하는 고농과 빈농들이 보다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고 공고히 하기 위한 ‘혁명투쟁 과정의 불가피한 조치’라고 합리화하고 선전하면서 당당하게 진행했다. 농민들은 지주와 부농 몫을 빼앗아 토지를 분배받으면 자기 몫이 더 커질 것을 알았기에 중공이 지주와 부농들에게 가한 잔인한 조치들에도 동조 또는 묵인했다.  


그러나 무상분배받은 토지의 소유권 등기를 하고 난 지 채 3년도 지나지 않아서, 합작화와 인민공사 체제로 전환이 추진되었고, 토지를 포함한 모든 생산수단이 국공유로 되었다. 즉, 도시 토지는 전인민소유(全民所有), 농촌 토지는 촌민 집체소유로 되었다. 결국 중국 농민들은 분배받은 후 가슴에 품고 있던 토지소유권(사유권) 등기 대장의 잉크 냄새와 온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국가권력에 ‘무상몰수’ 당했다. 그 토지의 명칭과 형식만 ‘집체소유’로 바뀐 채로…….


곧 이어서 ‘사회주의 신 중국’의 농민들은 초급 및 고급 합작사, 인민공사류의 ‘운동’의 물결 속에서 매일 호각 소리를 듣고 집합했다가 해산하고, 집단으로 노동한 후 배급받고, 매일 매 끼니마저 공동 식당에서 정해진 시간에 단체로 먹는 일상생활을 해야 했다. 봉건지주제하의 소작농, 농노 처지에서 ‘해방’된 줄 알았으나, 통치 주체가 공산당으로 바뀌었을 뿐, 생산대 촌락을 사회 및 공간의 기본단위로 하는 수용소 죄수나 국가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마오쩌둥이 영도한 중공은 좌경 모험주의 노선인 ‘대약진’을 거칠게 추진하다가 대실패와 대파탄을 초래했다. 적게 추산해도 3000만 명 이상의 농민들이 기아 상태에서 굶어 죽었고, 아사를 면한 인민들도 농촌이고 도시고 가릴 것 없이 춥고 배고픈 문제(温飽問題)조차 해결 못 하고 헐벗고 굶주렸다. 봉건왕조 시절이라 해도 이 정도 상황이 되면 재난이었다. 중공 내부에서도 “이러려고 우리가 지주와 부농들을 그렇게까지 모질고 잔인하게 학대하고 죽였단 말인가?”라는 자조와 탄식이 나왔다.


그러나 마오쩌둥은 자신의 권력 기반을 흔드는 이 같은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문화 대혁명’이라 명명한 대동란을 발동했고, 그 결과 ‘문화’와 ‘혁명’ 모두를 능멸하고 파괴하면서 당을 사당화했다. 이 같은 좌경 모험주의 신념과 권력의 작동 방식과 그로 인한 영향과 결과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교훈을 도출해야 할 것인가? 이 책의 집필 동기이자 목적이 그 답을 고민해 보자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1959년 여름, 루산에서 펑더화이가 직언으로 지적했고, 그 직후에 발생한 실제 상황과 경험을 통해서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되었듯이, ‘좌’의 문제는 폐쇄적 자기 확신과 확증편향 속에 추진하는 맹동주의에 있다. ‘좌’는 결국 자기와 생각이 다른 타인의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고 탄압하는 전체주의를 추구하면서도, 오히려 당당하게 ‘궁극적 선’이나 ‘역사적 사명’을 추구하기 위해서라고 떠벌이게 되니, 그에 따른 문제와 폐단이 ‘우’보다 훨씬 더 크고 위험하다.


따라서 ‘좌’는 그 역할을 문제 진단 그리고 방향과 비전 탐색에 국한해야 하고, 그 처방이나 실천은 실제 문제와 상황의 복합, 복잡성을 진단하면서 점진적으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문득,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1613~1917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첫째 딸, 올가 니콜라예브나가 22세에 볼셰비키에게 총살당하기 전날에 썼다는 기도문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주여, 비바람이 몰아치는 험난한 시절에

사람들의 분노를 견디고,

저희를 미워하는 이들의 고문을 참을 수 있도록

저희를 보살펴 주소서…….     


올가는 불과 22세에 이렇게 기도한 후 부모인 니콜라이 2세 황제 부부와 어린 동생들과 함께 총살당했다. 도대체 그녀가 무슨 죄를 어떻게 지었다는 것인가? 282년간 이어온 러시아 로마노프왕조에서 왕비에게 잉태되어 공주로 태어났고, 그 후 건강하고 아름답고 총명하게 자란 그녀가 자신에게 씌어진 그 ‘죄’라는 것이 뭔지 알 수라도 있었을까?


그러나 혁명 성공 후에 도래할 유토피아 청사진에 취해 있던 볼셰비키들에게는 그녀의 출신성분과 계급, 그 자체만으로도 총살이 마땅하다고 판단하는 데 추호의 고민이나 망설임도 없었을 것이다. 혁명의 성공을 위협할 가능성이 0.1%라도 있다면 총살도 대량학살도 주저할 필요 없고, ‘혁명의 적’이나 ‘계급의 적’에게는 일말의 관용도 필요 없다고 굳게 믿었을 것이다.


올가가 죽은 후, 새로이 러시아에서 권력을 잡은 볼셰비키 세력에게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는 이름으로 토지와 재산을 강탈당한 수많은 지주와 부농들도 학살당했고, 살아남은 자들은 ‘반동계급’으로 분류되어 계속 학대와 모욕을 당했다. 그리고 레닌 사후에 소련공산당 내 파벌 간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스탈린에 의해 보다 잔혹한 압제가 시작되었다.


한편, 소련 밖에서는 ‘러시아 10월 혁명’ 성공 소식이 인류 사회 구원을 위한 복음으로 포장되어 전파되었다. 1921년 7월, 소련공산당 조직인 코민테른이 상하이 시내 프랑스 조계지 안의 사립 여학교 건물 안과 저장성 자싱(嘉興)에 있는 난후(南湖) 호수의 배 안에서 창당대회인 중국공산당 제1차 당 대표대회를 개최하도록 지원·조종한 때도 그 무렵이었다.


이렇게 출발한 중공이 창당 28년 만에 국민당 세력을 제압했고, 1949년 10월 1일에는 마오쩌둥이 베이징의 역대 왕조의 궁궐 정문 누각 위에 서서 아래에서 환호하는 광장의 군중을 내려다보면서 진한 후난 지방 사투리 억양으로 ‘사회주의 신 중국’의 출범을 선포했다.


그러나 이같이 공고해진 중공과 마오쩌둥의 권위는 전체주의와 독재체제의 강화를 예고하고 있었다. 이후 개혁·개방 이전까지 ‘사회주의 신 중국’에서 ‘진보’의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제한과 통제 기제가 지속적으로 강화되었다.


역사적 전환기와 격동기에 진보적 사상과 이론, 혁명과 이념, 신념을 위해 희생한 이들의 열정과 헌신이 인류 역사 발전에 기여한 바가 있다는 점을 부정하거나 그 의미를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혁명 성공과 권력 쟁취 후에, 혁명 과정에서 내걸었던 이상과 신념에 기초한 (단, 실제는 선동적 목표로서 더 유용했던) 구호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신의 권력과 이익을 위해 위선과 오만, 심지어는 배신과 패악을 행한 자들도 적지 않았다.

철부지 중학생으로 홍위병 시절에 자신의 친엄마를 ‘반혁명’이라 고발해서 총살당해 죽게 만든 중국 산동성 출신 노홍위병이 회한에 잠겨서 한 말을 다시 옮긴다.     


"이상사회, 천당 같은 환상적 모습과 감동적인 설교, 인간이 조작한 우상, 신성한 제단 등등은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우롱하고 속이는 것이고, 자기 자신까지도 속이게 되는 요설이고, 청소년과 아동에게 독을 주는 정신적 아편이고, 출혈 없이 살인을 하는 예리한 칼입니다."

     

이 책이 설익은 혁명 사상과 이념 등 당시의 역사적 조건과 소용돌이에 말려들어 희생된 분들의 영혼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고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의 한 부분만이라도 대변해 주었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중국현대사 개요와 주요 관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