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천리길을 따라

프롤로그: 마음은 바라보는 게 아니라 먹어보는 거라

by 임다래


2024년 1월 1일,

나름 '값진 한 해'를 기원한답시고 새벽길을 나섰다.


자연의 넉넉한 품이 그리워지면 물소리 바람소리 풍경소리 넉넉한 영국사엘 다녀오곤 했다.

연말에 들렀을 때 주지스님께서 해돋이 행사가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갑진년이라는 올해, 첫 태양은 영국사에서 맞이해보리라.

새벽에 길을 나서 영국사 주차장에 도착하니까 어둠이 가득하다. 7시가 조금 안되긴 했지만

어라, 주차된 차량이 2대 밖에 없다.

쎄하다.

행사가 취소된 걸까? 사찰 식구들끼리 간단하게 하는 행사인 건지...

대웅전에 인사 드리고 올라갈 시간이 될 것 같긴 한데 잠시 망설이다 망탑봉까지의 거리와 시간을 가늠하긴 어려워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천 년의 겨울을 지낸 은행나무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인사를 드렸다. 길게 늘어진 가지가 땅에 다시금 뿌리를 내려 곁에 선 줄기마저 위용이 당당하다. 새벽 안개가 감싸고 있는 상서로운 기운을 담고자 휴대폰을 꺼내 몇 컷을 찍었다.

경배하는 마음보다 지인들에게 이 멋진 풍경을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서둘러 일주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대장님의 '여기 미끄러우니까 조심해'라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만 '꽈당'하며 넘어졌다.


둔탁하게 껴입은 옷 속의 허리나 엉덩이는 괜찮았지만, 왼쪽 손목이 비정상적으로 아프다. 이대로 망탑봉까지 향해야 하나,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한 해의 시작을 병원에서 시간보낼 수 없지 않은가. 팔을 세워 손목을 받쳐보니 견딜만큼의 고통이다.

걸어보자. 가보자. 정확한 상태를 몰라 안절부절하는 대장님에게 짐이 될 순 없지.


거침없던 발걸음은 한발 한발 땀이밸 정도로 느려졌지만 내겐 오른손이 있고 세심한 대장님이 앞장 서 있다. 어둠을 뚫고 산길을 더듬어 한 20분을 올랐을까. 망탑봉에는 인기척이 없다.


상어바위, 굽은 소나무, 망탑봉, 잿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만 서 있다. 식은땀이 흐른다.


마음을 바라보았다. 선머슴같이 살아온 50여 년이긴 하지만 이토록 아프게 넘어져보긴 처음이다. 예기치 않은 일들은 언제고 생겨나기 마련이라, 오른손이 아니길 얼마나 다행인가. 얼마전 엄마는 오른손목이 부러져 입원하셨는데 모녀간에 이 무슨 일이던가. 혹시 내가 쓴 글귀의 기운 때문인가. 그렇다면 남은 생은 어떤 태도로 어떻게 말하고 쓰며 살 것인가. 바람대로 이루어가진 못할지라도 마음을 먹어 보자. 비추어보면 위태로운 길에 섰을 때라야 맹목적일 수 있었지. 이러한 전투력으로 한 해를 또 잘 살아봐야지, 다래야! 식은땀과 고통으로 차가워진 몸이 데워진다

저절로 두손 모아 고개가 숙여진다.


값진 한 해의 시작,

태양을 보진 못했다. 마음에 품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