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세계

글이 창조되는 세계란

by 달보드레

글이 잘 써지는 세계에 대해 떠올린다. 나는 어떨 때 물 만난 물고기처럼 글이 잘 써지지?


내게는 두 개의 세계가 있다. 첫 번째 세계는 카페다. 단, 그저 그런 평범한 카페여서는 안 된다. 나는 공간이 주는 힘을 믿는 편이다. 그래서 무언가 나를 불편하게 하는 요소가 있거나, 안정감이 들지 않는 공간에서는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하다. 따라서 나와 결이 맞고, 들어서면서부터 마음이 편안해야 한다. 어느 정도 분위기도 좋아야 한다. 주로 바깥을 볼 수 있는 통창, 혹은 푸릇푸릇한 나뭇잎 뷰를 선호한다. 거기다 내게 영감을 주는 소품들이 있고, 달콤하고 예쁜 디저트가 있으면 금상첨화다. 그곳에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공간. 아, 커피 한 잔은 빠질 수 없다. 언제나처럼 “아이스 바닐라 라떼 연하게 한 잔 주세요.”라는 문장을 내뱉고, 왠지 마음이 가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러다 꼭 한 번 후회한다. 아, 저 자리에 앉을 걸 그랬나? 해가 더 잘 들어올 것 같은데… 하지만 소심 보스인 나는,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대는 모습이 유별나 보일까 봐 결국 처음에 선택한 자리에서 주섬주섬 가방에서 짐을 꺼낸다.



매일 글을 쓰다 보니 뒷목과 어깨가 뻐근하다. 눈도 살짝 뻑뻑하다. 피곤한 몸으로 태블릿을 켜고, 그 앞에 키보드를 놓는다. 새하얀 빈 화면을 보며 한참 생각한다. 오늘은 무슨 글을 써볼까? 생각의 조각들을 기록해 둔 메모장을 뒤지기도 하고,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사람 구경을 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번뜩 오늘의 주제가 떠오른다. 물론 아무리 기다려도 떠오르지 않는 날도 있지만. 키워드가 떠오른 뒤부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이 춤을 춘다. 그러다 생각의 길이 막힐 땐 한참을 천장만 멍하니 바라본다. 그러다 또 아하! 막혔던 길이 뚫리면 타닥타닥 타자를 치는 손가락은 점점 더 경쾌한 리듬을 탄다. 분명 집에 가서 침대에 다이빙하고 싶단 생각이 들 만큼 피곤했는데, 어느덧 팽팽 돌아가는 두뇌와 연체동물처럼 유연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의 합주에 짜릿한 쾌감이 인다.



두 번째 세계는 ‘즐거운 나의 집’이다. 내가 글이 가장 잘 써지는 상태는 마음이 고요하고 평안할 때다. 너무 들뜨지도, 너무 가라앉지도 않은 평온하고 잔잔한 상태. 기분이 너무 들떠 있을 땐 평소라면 유심히 들여다볼 것들을 무심히 지나치게 되고, 너무 가라앉아 있을 땐 심연에 빠져 몸부림치느라 생각의 꼬리가 어둠을 닮은 한 방향으로만 나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집은 뭐니 뭐니 해도 내가 가장 나일 수 있고, 편안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해가 떠 있는 동안엔 거의 밖에 있기 때문에 집에서 글을 쓰는 시간대는 대부분 캄캄한 밤이다. 나는 이 시간을 정말 사랑한다. 고요한 밤에, 블루투스 스피커 또는 LP 플레이어로 애정하는 노래를 틀어 놓고, 내 마음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하루의 끝, 누군가는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존재하는 것 같은 이 시간이 나는 참 좋다. 세상에 나 홀로인 듯한 느낌. 이 느낌은 때로 혼자 심해에 가라앉는 듯한 잔인한 기분을 내게 주지만,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는 듯한 평온과 안정감을 주기도 한다. 온종일 시끌벅적한 외부로 향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며 스스로에게 향한다. 비로소 바쁜 하루 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나의 마음 가장 깊은 곳과 닿는다.



그래서 몇 년째 올빼미족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나 보다. 올빼미족인 내가 꼭 만들고 싶은 글쓰기 루틴은 아침에 일어나 차 한 잔을 태우고, 가장 맑은 정신으로 매일 30분간 글을 쓰는 것이다. 따뜻한 차가 나의 몸과 마음을 데워 준다. 따끈하게 데워진 마음으로 새로운 하루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따듯한 글을 쓴다. 아침에 일어나기보다 밤을 지새우고 아침에 잠드는 게 더 쉬운 나로서는 번번이 실패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라도 꼭 만들고 싶은 습관이다. 그렇게 건강한 아침을 쌓아가고, 건강해진 몸과 마음으로 다정하고 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