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과 마누스, 미록이 함께 꾸민, 책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곳
현재 대구의 소품샵 사사로운에서 진행 중인 ‘사사책간’. 책과 나의 마음에 조금 더 집중해 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관하셨다고 한다. 들어서는 순간, 책에 대한 잔잔하지만 심지 굳은 열정이 풍겨 마음이 산뜻해졌다.
입구에서 보이는 작가의 책장 코너에서는 올 한 해 사사로운이라는 공간을 채워주신 작가님들의 추천 책들과 더불어 사사로운 사장님께서 사랑하시는 책들을 만나볼 수 있는 코너도 있다. 사장님께서 어떤 책들을 통해 영감을 얻으시는지, 그 깊은 사유가 어디로부터 나오는지 알 수 있어 흥미로웠다.
사사로운 안쪽에는 비밀의 방 같은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에서는 <마누스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기획 전시를 진행 중이다.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그 속에 녹아 있는 고민과 노력, 땀방울이 한가득 녹아 있다. 사람 사는 냄새를 듬뿍 느낄 수 있는 마누스의 에세이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어 행복했다 :)
책마다 ‘편집자의 노트’가 함께 놓여 있다. 저자의 말, 북토크, 인터뷰 등을 통해 쓰는 이의 이야기는 자주 접할 수 있지만,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면 수년까지 책을 함께 작업한 편집자의 이야기는 막상 들어보기 어렵다.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남모를 땀과 눈물을 흘렸을, 책의 모든 문장들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을 편집자의 이토록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감사했다.
개중에는 고등학교 수학 교사이자 작가님이신 김동진 작가님의 제자들이 <선생님의 목소리>를 읽고 쓴 사랑스러운 독서감상문도 보였다.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펼쳐보지 않을 수 없었던 아이들의 흔적. 정성이 가득한 흔적들만 봐도 김동진 작가님이 얼마나 좋은 선생님인지, 아이들이 선생님을 얼마나 존경하고 애정하는지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한때 선생님을 꿈꿨던 나의 시절 한 부분이 떠올라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가르침은 교사가 아이들에게 주는 것만이 아니다. 아이들 또한 교사에게 가르침을 준다. 짧은 교생실습 경험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나도 분명 아이들에게 배움을 얻었다. 한 아이에겐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법을, 또 다른 아이에겐 뒤에서 묵묵히 친구들을 챙기는 다정함을 배웠다. 독서감상문을 읽으며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나눠준 다정함이 또 다른 다정함이 되어 퍼져나가는 그들의 관계가 참 귀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에는 카페 ‘미록’과 마누스의 협업 굿즈가 전시되어 있다. 미록 사장님께서 직접 찍은 사진과 마누스에서 출간된 책들의 글귀가 담긴 손글씨로 이루어진 달력부터 책갈피까지. 모임 때마다 굿즈를 위해 애쓰시던 모습을 지켜보며 이 굿즈 하나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는지 알게 되었다. 책상 위에 달력을 고이 올려두고 매달, 매일 바라볼 내년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마누스 대표님께서는 미록 사장님의 손글씨를 보고, 글씨에 누군가의 ‘영혼’이 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셨다고 한다. 나도 무척이나 동감하는 바이다. 언젠가 ‘미록체’로 폰트가 출시되었으면, 하고 조용히 소망해 본다.
가장 기대했던 코너는 바로 ‘편집자의 책상’이다. 대표님께서 실제 일할 때 사용하시는 책상을 그대로 옮겨두었다. 책상에는 실제 편집할 때 사용하시는 각종 도구들과 출판사 일을 하시며 감명 깊게 읽은 책들, 그리고 실제 기획안과 교정지가 놓여 있다. 편집자를 희망하는 내게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귀한 선물이었다. 대표님의 흔적이 가득 묻은 책상 이곳저곳을 음미하며 이 앞에 얼마 동안을 서있었는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이 모든 업무를 혼자 수행하시는 대표님에 대한 경외감이 들었다. 웬만큼 책을 사랑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이 공간도, 전시도, 그것들이 주는 분위기도 너무 좋아 한참을 머물렀다. 잠깐 서 있었던 것 같은데, 빨려 들어가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공간에 존재할 수 있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찼다.
곳곳에 묻어 있는 대표님의 책을 향한 열정과 애정, 책을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품이 드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책 한 권의 무게를 잊지 않고 살아가야지. 책을 쓰고, 만드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땀과 마음을 찾아내 한참 동안 바라봐 주고 싶다. 이 공간의 향과 분위기가 한동안 잊히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