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나는 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세상엔 책 외에 재미난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고, 사르르 사르르 종이를 넘기는 일보단,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스크롤을 휘리릭 휘리릭 내리는 일이 더 익숙했다.
어릴 땐 책 읽는 걸 참 좋아하던 나였는데, 사춘기 이후부터는 1년에 겨우 책 한두 권, 그것도 과제와 관련된 책들만 읽었더랬다.
그러나, 늘 글을 읽고, 쓰고, 사유하는 사람들을 동경했다. 하루의 시작이든, 끝이든 하루에 15분이라도 책을 읽고, 내 마음을 유영하며 감정과 생각들을 일기장에 녹여내고, 내게 건강하고 정성스런 한 끼를 대접하며 몸도 마음도 맑고 건강한 이의 삶. 내가 오래도록 동경하고 염원하던 삶의 형태였다.
그들을 부러움 섞인 눈빛으로 바라만 보다가,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에 한 발짝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작은 용기를 냈다.
서점에 가도 한두 쪽 훑어보다 금세 책을 내려놓고 나오곤 했던 내가, 오랜만에 서점에 가 책 냄새에 파묻혀도 보고, 책을 고르는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기도 하고, 마음이 가는 책 한 권을 골랐다.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내 의지로 골라 완독한 책은 그 유명한 <불편한 편의점>이었다. 그저 어여쁜 표지에 이끌려 고른 책이었다. 잠시 동화 속 세상에 한 발 들여놓은 것만 같은 표지에, 편의점에 들른 손님들의 다양한 삶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나로 하여금 그 책을 집어 들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엄청난 감명을 받았다거나, 삶을 뒤흔들 만한 문장을 발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글을 읽는 행위 자체의 매력을 또렷이 알게 해 준 책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글을 읽는 동안만큼은 자유롭다고 느낀다. 나의 하루를 집어삼켰던 고민, 내게 씌워진 세상의 굴레들, 한 밤 자고 나면 찾아올 내일에 대한 걱정들… 흰 종이와 대비되는 검은 글씨를 읽을 때는 이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몰입’. 그것이 내가 발견한 읽기의 가장 커다란 매력이다. 정신을 흐트러뜨리는 온갖 자극이 가득한 세상에서 하나의 점으로 정신을 모으는 일. 산만해진 내 마음을 가다듬고 보살피는 일. 온종일 바깥세상에서 살아내느라 향하지 못했던 내부로, 또 내부로 향하는 일.
속이 시끄러운 날엔 울며 겨자 먹기로 책을 향해 손을 뻗는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들리는 사르륵 소리, 코도 마음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책 특유의 냄새, 오늘의 내 마음을 고스란히 옮겨둔 것 같은 한 문장까지.
뭘 해도 나아지지 않던 기분이 차츰 고요해지기 시작한다. 맛있는 음식도, 즐겨보던 유튜브도,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오직 종이 위 활자만이 나의 마음을 읽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