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이라는 파라다이스

나의 오랜 친구, 불안, 우울과 공존하기

by 달보드레

내 삶은 지금 안정되어 있는가? 끼니 거를 일 없이 삼시 세끼 제때 챙겨 먹고, 매서운 바람 피해 몸 누일 따뜻한 집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있으니 안정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 혹은 사회의 암묵적 기준에 따르면 엄연히 경제 활동을 통해 1인분의 몫을 하고 있어야 할 나이임에도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안정되어 있지 않은 것인가? 좋아하는 공간에서 글을 읽고 쓸 때만큼은 잠시나마 안정감을 느끼니 나는 안정감 있는 사람인가? 혹은 덮쳐오는 감정의 밀물에 홀로 우는 새벽이 많으니 안정감과는 먼 사람인가?

생각하기에 따라 모두 정답이 될 수 있다. 안정감의 척도는 객관적인 외부 상황이 아닌, 현재의 상황을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이기 때문이다. 안정감에 대한 기준은 모두가 다르기에 같은 조건이라도 누군가는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고 누군가는 불안하다고 느낄 수 있다. 외적인 조건들이 내면의 안정감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편안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8년 전, 우리를 '제주 앓이'에 빠지게 만들었던 한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아름다운 제주를 배경으로 한 <효리네 민박>이다. 새벽 요가를 끝내고 이효리와 함께 집으로 향하던 차 안에서 아이유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평정'에 대한 집착을 놓고 싶다고.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웃고 싶다고. 그 이야기를 털어놓는 순간, 그의 어깨 위 홀로 짊어져왔을 숱한 짐들이 선명히 보이는 것만 같아 아팠다. 일희일비하려는 자신을 타이르고, 감정을 온전히 느끼는 것을 억압했던 것은 어쩌면 그의 생존 방식이자 살아내기 위한 고요한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팬들의 셀 수 없는 사랑, 그리고 그와 함께 따라오는 이유 없는 미움과 시기, 무거운 책임과 부담감을 버텨내기 위해서는 평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므로.

반면 <효리네 민박>에 함께 출연한 이상순은 어떤가. 늘 잔잔하고 평온하다. 배가 아플 정도로 배꼽 잡고 깔깔거리며 웃는 모습도, 나라 잃은 사람처럼 목 놓아 오열하는 모습도 그에게선 찾기 어렵다. 그저 묵묵히 집안을 쓸고 닦고, 개들을 산책시키고, 먼 거리에 있는 마트에 가 저녁거리를 사 오고, 스무 번이 넘는 아내의 부름에도 짜증 한 번 내지 않는다. 최근 유튜브에 출연해서도 어릴 적부터 무던했다고 인정한 바 있다. 마치 모태 안정남 같다. 스스로가 편안하니 보는 사람의 마음도 덩달아 편안해진다.

누군가는 타고나길 안정감이라는 감정을 쉽게 느끼는 성향이고, 누군가는 안정에 닿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나는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내게 평안을 가져다주는 나름의 활동들을 찾아 읽고, 쓰고, 나누고 있지만 그토록 바라는 안정에 도달하기란 쉽지 않다. 내게 안정감이란 평생의 숙원과도 같다. 만성적인 불안과 공허감에 시달려온 내게 ‘안정’이란 닿을 수 없는 파라다이스 같은 존재이므로. 그러나 돈도 사랑도 그러하듯 안정감이라는 것도 닿으려 애쓰고 집착할수록 내게서 멀어진다. 쥐고 있는 목줄을 적당히 풀어줄 줄 알아야 한다.

이제는 우울도, 불안도, 외로움도 없는 불가능한 ‘무’의 상태를 바라기보다는 안정에 대한 나만의 정의를 바꿔보고 싶다. 내게 ‘안정’이란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을 허용해주는 것, 내가 이 자리에 이 모습으로 있어도 괜찮다는 안심, 외부 자극들에 나를 절벽 끝으로 내몰지 않는 평온한 상태이다. 불안한 나도, 우울한 나도, 나만 아는 못난 나도 모두 나다. 평생 함께해 이제는 당연하게 느껴지는 우울과 불안이 어쩌면 삶에 안정감을 더해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 감정에 취약한 기질을 타고난 내게, 그것들이 갑자기 작별을 고하고 사라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안정감이 무너지는 순간이 아닐까. 불안 속에서 안정감을 찾으며, 이런저런 나를 돌봐주고 아껴주고 싶다. 안정감이라는 숙제의 결과물만 보며 달리는 게 아닌, 안정감으로 향하는 과정 속의 면면을 살필 줄 아는 내가 되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