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뭉툭하지만 더욱 단단한
어느덧 2026년을 맞이한 지도 한 달이 되어가고 있다. 매년 새해가 되면 처음 맞이하는 새해인 양 신년 계획을 짜고 목표를 세운다. 하지만 일주일쯤 지나면 올해도 작년과 별다를 것 없는 하루들이 이어진다. 아, 가장 크게 바뀐 건 집. 혼자 지내던 자취방을 정리하고 얼마 전부터 본가로 들어와 살고 있다. 작년부터 이어져 온 우울감과 나를 향한 미움에 마음이 많이 낡아버렸다고 자주 느끼던 터라, 오히려 가족들의 품 안에서 조금 더 단단해질 올해의 나를 기대하는 중이다.
매년 느끼지만, 시간은 야속하리만치 재바르다. 어릴 적엔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줄만 알았던 나이에 당도했다. 빛나는 청춘이라 불리는 나이들을 지나왔고, 어쩌면 누군가는 지금도 청춘인데 무슨 소리냐고 타박할지 모르지만, 나는 과연 지금까지의 삶에 젊음이 아닌 ‘청춘’이라 불릴만한 순간들이 존재했었는지 모르겠다. 나의 20대는 쉴 새 없는 학업과 자기비난, 열등감이 마구 뒤섞인 시간이었다. 대학교, 학점은행제, 대학원 입시, 대학원 생활, 그리고 또 다른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 그 시간이 결코 아깝거나 후회되는 건 아니지만, 계속되는 학업은 나를 더욱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 당시의 나에게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지금의 나는 충분하지 않기에 끊임없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야 하는 일처럼 느껴졌고,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사회에서 자기 몫을 할 때 배워온 걸 발휘할 기회 없이 오랜 기간 준비하고 쌓아만 가는 일은 나를 더욱 불안하고 조급하게 했다.
지금에서야 돌이켜보면 그토록 열심히 공부하고 달린 건, 진심으로 그 길을 걷길 원하거나 길 끝에 서 있을 훗날의 내가 기대되어서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내게 자신이 없으니, 뭘 해도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준비하고 쌓아야만 했다. 이것마저 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런 쓸모도, 자질도 없는 사람 같았기에. 나를 바라볼 때는 볼록거울을, 타인을 바라볼 때는 확대경을 사용했다. 한없이 작아지고 쪼그라들었지만, 그런 모습을 들키기 싫어 타인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는 척 가면을 썼다. 그 가면은 점점 두꺼워졌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니 마치 발이 허공에 붕 떠 있는 것처럼 불안정했고 마음 둘 곳도, 뿌리내릴 곳도 없다고 느꼈다.
그렇게 더욱 눈앞의 것들에 몰입했고 목표도, 방향도 없이 치열하게 달렸다. 이 길이 정녕 내가 가고 싶은 길이 맞는지, 그것을 향해 달리며 나는 과연 행복한지, 마음속에 떠오르는 질문들을 덮어둔 채 앞만 보는 경주마처럼 무작정 달렸다. 그렇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고 숨차게 나아가다 결국엔 탈이 났다. 제때 꺼내놓고 치료하지 못한 상처들이 왈칵 터져버리니 이전처럼 되돌아가기가 어려웠다. 좀처럼 아물지 않는 흉에 힘들 때도 있지만, 잠시 걸려버린 브레이크 덕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지금에서야 나는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그 길을 따라 읽고 쓰며 깨달은 점은, 배움과 성장은 내게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20대 내내 계속되는 학업과 자기비난으로 인해 힘들었지만, 내가 그만두고 싶은 건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과 자기비난이지 ‘배움’이 아니었다. 여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나가다 보면 나보다 더 앞서 있는 누군가와 비교하며 작아지곤 하지만, 그럼에도 차근차근 성장해나가는 배움의 맛이 좋다. 삶이란 새 연필에서 몽당연필이 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닳고 닳아 뭉툭하지만, 더욱 단단하고 밀도 있는. 깎임과 닳음마저 영광스러운 훈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겉보기에 화려하진 않지만 연륜이 묻어 있는 몽당연필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