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보단 반가움이었던 누군가의 다정
얼마 전 혼자 8시간을 보내야 했던 적이 있었다. 병원 예약은 정오, 저녁 일정은 8시. 그 사이 붕 뜬 시간을 혼자 채워야 했다. 전처럼 근처에서 자취를 했다면 고민 없이 집으로 달려갔을 텐데, 이사를 마친 지금은 그럴 수도 없었다. 병원 진료가 끝나고, 우선은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지리를 꿰고 있는 동네까지는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가야 했는데 그러기엔 귀찮았다. 먹이를 찾아헤매는 하이에나처럼 병원 근처 혼밥 하기 괜찮아 보이는 식당들을 매의 눈으로 스캔하기 시작했다. 평소 즐겨 먹는 포케나 서브웨이보다는 밥이 먹고 싶어 맛있고 저렴한 도시락 가게로 낙점!... 할까 했지만 몇 없는 좌석은 이미 식사하는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고픈 배를 움켜쥐고 터덜터덜 걷다 보니 꼬마김밥 집 앞에 다다랐고, 홀린 듯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용 가능한 좌석이 딱 두 자리뿐이었는데, 다행히도 방금 막 누가 먹고 나갔는지 미처 치우지 못한 그릇들이 놓여 있었다. 국물 떡볶이와 꼬마김밥 두 줄을 주문하고 자리에 멀뚱히 앉아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들어와 내 뒷자리에 앉았다. 마침 홀에 손님이 나뿐이라 뻘쭘했는데 다행이었다. 곧이어 주문했던 음식이 나오고 본격적으로 먹방을 시작했다. 배가 많이 고팠던 터라 격정적으로 떡볶이를 먹었는데, 아뿔싸! 떡볶이 국물이 사방으로 튀어버렸다. 하필 눈송이처럼 새하얀 니트라 옷에 튄 빨간 국물이 더욱 튀어 보였다.
허둥지둥 물티슈를 찾자 뒤에서 쫄면을 먹고 계시던 아주머니가 가져가서 쓰라며 물티슈 한 통을 무심히 건네주셨다. 오늘의 일정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하루 종일 떡볶이 국물이 튄 옷을 입고 다니긴 싫어 속으로 ‘제발, 제발!’을 연발하며 박박 닦았더니 그 모습이 부엌에 계셨던 사장님 눈에까지 닿았나 보다. 노련한 사장님은 1초 만에 상황을 파악하시고는 물티슈에 주방 세제를 잔뜩 묻혀 가지고 나오셨다. 그러더니 옷에 묻은 양념을 직접 닦아주시는 게 아닌가. 처음 보는 사람이 내 옷을 닦아주고 있는데 당황스럽거나 싫지 않았다. 오히려 나날이 개인주의가 심화되는 이 시대에 오랜만에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어 따스했다. 그래, 이게 사람 사는 거였지. 그간 친구들과 다녔던 수많은 맛집과 카페, 핫플에서는 느낄 수 없던 정이었다.
가끔 지금 우리 세대가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면 세상이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보곤 한다. 지금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버스나 지하철, 시장에서 처음 보는 이들과도 스스럼없이 대화를 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서로 묻고 또 알려주신다. 그런데 조금만 나이대가 내려와도 많은 이들은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면 경계 태세에 돌입한다. 혹 불순한 의도를 품고 있진 않을지 의심 어린 눈초리를 보내고, ‘도를 아십니까’와 같은 포교 활동일까 싶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쌩하고 가버린다. 주위의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잘 알지 못하는 일에 괜히 나섰다가 창피를 당할까, 혹은 위험한 일을 당할까 봐 폰에 고개를 박고 모른 척한다. 문명이 발전하는 만큼 그것을 악용하는 수법도 나날이 발전해 서로를 믿지 못하게끔 만드는 세상이지만, 한편으로는 낯선 사람들과도 서슴없이 얘기를 주고받고, 누군가의 호의를 의심하지 않아도 됐던 예전이 그립다.
그래서 며칠 전 그 찰나의 순간이 이리도 기억에 남나 보다. 낯선 이지만 오래 알던 이 같기도 하고, 갑작스러운 친절이 불편하기보단 반가웠던 그 순간이. 앞으로 개인주의와 무관심은 점점 더 깊어지겠지만 최소한 서로의 눈을 마주하며 오늘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작은 다정 한 꼬집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