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스런 시간

잊고 살았던 사치, 소망하는 미로

by 박시은

1분기가 끝났다. 지난 금요일은 회사에서 1분기 성과를 적어서 내는 데드라인이었다.

참으로 다사다난 했던 1분기였다. 25년의 연장선 같았다. 참 많은 도움을 받았다. 묵묵히 응원하는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 언제나 내 상태를 체크하는 부모님.


응어리를 풀었다. 글쎄, 완벽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분노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니 한결 가벼워졌다. 이 주제를 당사자들에게 꺼내는게 정말 많이 무서웠다. 그런데 사람이 한계에 다다르니 될대로 되라라는 심정으로, 내가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다라는 심정이 되더라. 그렇게 털어놓은 덩어리는 생각보다 나를 생각하는 그들의 덩어리기도 했다. 동정일까 사랑일까 잘은 모르겠지만 사랑일거라 믿고 싶은대로 믿기로 했다. 그들로 만들어진 짐이지만 이걸 이야기하는 건 잘 지내고 있는 그들에게 큰 부담일 것이기에, 이걸 말하는 내 모습이 이기적으로 느껴지기도하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많은 고민을 했더랜다.

하지만 나를 먼저 생각하라고, 말해줘서 고맙다는 사과하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너무도 쉽게 수면 위로 끌어올려졌다. 숨이 쉬어지더라. 이렇게 쉬운거였다. 실행에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는데 마음 먹기까지 겁이 너무나도 많은 나는 나를 살리기까지 너무 오래걸렸다.


그리고 느꼈다. 나는 태생적으로 화를 가져갈 수 없는 사람인걸. 이런 나를 친구들은 이해 못 하겠지. 질책 많이 당하겠지만 슬픔과 걱정은 짊어져도 화는 짊어질 수 없는 사람인 듯 하다. 아쉽지만 아직 20대의 나의 그릇은 여기까지인듯하다.


살아라, 건강해져라, 그런 사람 아니었잖아.란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를 생각해보았다.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확실한 건 내가 원한 나의 모습은 지금의 내가 아니었다.


출근하는 저마다의 사람을 보면서, 일상을 살아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웃으며 일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정도 짐을 내려놓은 현재, 건강해져서 돌아와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지금이라면 할 수 있겠다는 이상한 자신감이 들었다. 천천히해도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땐 위로가 되었다.


3개월 동안 회복을 핑계로 시간을 사치스럽게 썼다. 매일 누워있다 자는 것의 반복이었다.

사치의 초점을 바꿔볼까 한다. 사치스럽게 매일 뛰고 있다. 남들 잘 때 회사를 가고, 일할 때 뛴다.

사치스럽게 매일 일찍 잔다. 일어나서 사치스런 따뜻한 티 한잔을 마시고 이런 사치를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함을 가진다. 요즘 문득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이런 사치를 누리면서 그것이 당연한 것 마냥 잊고 살았을까?


지금은 '말'들이 움직임의 동력이 되었지만 '스스로'가 동력이 될 때까지 나는 오늘도 신발끈을 묶는다. 통제 불가능한 변수에 당당해질 때까지, 어떠한 파도가 몰려와도 해변으로 헤엄칠 수 있을 때까지, 발이 땅에 닿지 않아도 당황하지 않을 때까지, 내 삶의 주도권을 세상에서 다시 가져올 때까지.


이렇게 또 한번 모르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깊이에서 헤엄쳐 나오는 법을 배운다. 나는 나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매번 새로운 나를 발견하니 자주 길을 잃는다. 앞으로는 어떤 미로가 날 기다리고 있을 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풀이 방법을 배우고 있다는게 안심이 된다. 다음엔 어떤 벽을 마주할까. 어떤 이벤트가 날 기다리고 있을까? 지금은 겁이 앞서지만 이런 의문이 기대로 바뀌는 날이 있을까?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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