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21시 30분은 어떤 의미인가? 누군가는 퇴근 후 운동을 하고 집에 들어오는 시간일 수도, 누군가의 방은 환하게 밝아져있을 수도, 누군가는 막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겠지.
그렇지만 나에게 21시 30분이란 잠에 드는 시간이다. 아니, 잠에 들어야만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놓치면 쉬이 잠에 들지 못한다. 지금도 22시 10분이라 잠에 들지 못해 노트북 앞에 앉아있다. 생각이 많은 나에게 해가 지는 것은 까만 도화지를 펼쳐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공상이 언제나 좋은 주제일 수는 없다. 애석하게도 두려운 생각이 주를 이룬다.
사랑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끝났을 때, 나는 이 위험한 감정을 차단하자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21시 30분에 침대에 누워 자기 시작했다. 잠이 오지 않으면 약을 먹으며 22시 전에는 잠에 드리라 되뇌었다. 살기위해 삶에서 밤을 없애는 선택은 탁월했다. 내 삶에는 볕만 있으리라 읆조리며. 해가 뜨는 6시 30분에 일어나 해를 쬐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사랑이 무뎌질 때까지 반복하니 습관이 되버렸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는가. 두 달만 해도 습관은 형성된다고.
그런데 지금은 그 습관이 나를 쫓아온다. 왜 운동을 하는 습관은 쉽게 버려지는데 살기 위해 생긴 습관은 잘 버려지지 않을까. 운동도 살기 위한 건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살기위해 실행했던게 습관이 되고 날 쫓아오며 강박이 되었다. 그렇게 난 지킬앤하이드처럼 양극단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야근을 해서 쓰러지는 날이 아닌 여유와 시간이 결합할 때, 그렇게 21시 30분을 넘겨버렸을 때, 나는 주체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
일은 열심히 하고 있다. 일에 대한 만족도도 높다. 동료들에게도 항상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고 이제는 조금씩 성취감도 얻으며 하나라도 더 얻고자 하는 마음도 크다. 그런데 일은 아무리 열심히해도 허탈한 마음은 채울 수 없는 것같다. 성취감은 끝내주더라도, 내가 지향하는 삶은 아닌 느낌이다. 나의 행복은 무엇일까? 매번 행복에 배신당하는 나는, 이제 기대하기가 무섭다.
사실 들여다보면 트라우마 하나도 극복 못하고 있는 내가 우스우면서도 안쓰럽다.
그것이 21시 30분을 넘기면 고통스러운 이유일 것이다.
공황이 생겼다. 혹시라도 출근길 중간에 섬망이 생겨 출근이 지연 될까봐 평소보다 일찍 출발하는 일이 늘었다.
의욕이 없다. 일찍 잠에 들고 일찍 일어나려했던 마음도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는, 잠으로 도피하려는 성향이 강해졌다.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늘었다. 핸드폰 조차 보지 않으며 천장만 바라보는, 눈만 감고 있는 시간이 늘었다.
최소한으로 움직인다. 일어나서 회사에 가고, 퇴근하고 씻고 눕고, 다시 회사에 간다.
이 모든게 잘못됐다는 생각은 드는데, 의지가 없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히말라야를 등반한 자체가 소소한 자랑이었다. 그런데 이젠 그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다.
살아야지 하면서도 뭐하러 사나, 생각도 들고, 죽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는 건 보기 싫어서 억지로 살아간다. 최근에 집에서 밥을 먹다가 포크를 든 채로 쓰러졌다. 그렇게 15분 뒤에 혼자 빈 방에서 포크를 들고 깨어났을 때의 머쓱함이란, 이젠 쓰러짐 자체가 일상이 되었다는 걸 받아들이기 싫을 뿐이다.
그렇게 올해 목표는 잠에 드는 시간을 온전히 늘리는게 되었다. 아무런 부작용 없이. 남들 처럼 하루가 아까워서 24시에 잘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