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쟁이 Oct 31. 2021

마음을 넓게 가지면 보일 수도 있다

기적(2021, 이장훈)

<기적>은 배려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작은 마을의 모습은 어떠할까. 한적한 시골 경치와 길게 이어진 철도길은 그 시대를 살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마을을 벗어나려면 철도길을 따라서 가야 한다. 기차가 오면 알아서 피해야 하는 것은 본인들 몫이다. 준경(박정민)은 마을 사람들의 길잡이 역학을 해준다. 그리고 기억에도 없는 누나 친구의 딸을 유치원에 보내주기도 한다.  


같은 마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은 서로를 신뢰한다. 대가는 당연히 없다. 간혹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용돈을 쥐어주는 것은 제외하고 말이다. 마을은 그렇게 서로 연대하고 돌봐주며 살아간다.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모습이 곧 한국의 1980년대의 전반적인 시대상이었을 것이다. <기적>에서는 이처럼 지금과는 다른 무척이나 생경한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낸다. 대합실 주전자의 물을 마시 데 누가 썼을지도 모를 주전자의 뚜껑을 쓰는 것처럼 말이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그 다름에 있다. 지금의 사회는 나는 있고 남은 없다. 그런데 영화 <기적>에서는 나보다는 남이 앞선다. 준경은 누나를 위해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누나 역시 준경이 먼저 세상 밖으로 나가길 기다려 준다. 서로를 위해서 참고 인내해준다. 라희(윤아)의 꿈 역시 준경의 뮤즈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영화의 캐릭터들에게는 이기심이 없다. 오히려 왜 그렇게까지라는 말이 계속해서 머리에 맴돈다.


영화의 주인공 준경은 천재임에도 그것을 활용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런 그가 천재 과학자의 꿈을 이어나가는 데에는 조력자들이 있다. 준경의 뮤즈인 라희와 물리 선생님(정문성)이다. 그들은 준경의 꿈을 위해 조건 없이 도와준다. 여기에도 대가는 없다. 그저 여자 친구라서, 그리고 어른이라서 준경의 꿈을 돕고 응원해준다. 


준경은 그렇게 관심과 배려를 통해 성장해나간다. 한 명의 인재가 국가를 대표하는 인재로 성장하는데 투입된 것은 국가의 지원도 아니고 단지 응원과 배려였던 것이다. 양원역 역시 국가의 도움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가 스스로 건립했다. 국가는 단지 간이역 설립 허가만 내줬을 뿐이다. 서로의 도움만 있다면 국가가 하는 일과 같은 커다란 일을 이뤄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한없이 착하다. 그래서 지금 세태와는 너무나 다르다. 누군가를 위한다는 말은 지금은 희생의 코드로 읽힌다. 예전에는 너무나 당연했던 배려와 공감들은 이제는 오지랖과 같은 부정적인 말로 대체되어 쓰이기도 한다.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기적>을 바라보는 관객은 그 낯설음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한다. 아들을 위해 규정을 어겨가며 기차를 세우는 아버지의 모습과 도덕적인 책임을 대신 짊어지는 직장동료의 모습에서 공감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라희가 준경의 가방을 뒤져 준경의 편지를 훔쳐 읽는 것도 마냥 귀엽게 보이지 않는다. 지금의 감성으로서는 당시의 인간적인(?) 면들이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영화의 메시지 전달은 성공할 수 있다. 관객이 느끼는 공감의 괴리는 영화가 선택한 장르인 판타지 드라마로 극복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마음을 넓게 가지자. 그럼 이 영화는 억지스러운 신파가 아니라 공감과 연민, 배려의 코드를 극대화시킨 착한 판타지 영화가 될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연민이 없다는 것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