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2017, 폴 버호벤)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연민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슬픔이 비집고 들어올 공간 역시 없다. 미셸(이자벨 위페르)이 패트릭(로랑 라피트)을 보며 했던 말처럼 이 영화는 뒤틀려있다.
영화는 미셸이 강간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성폭행의 피해자인 미셸은 오히려 평온해 보인다. 아무렇지 않게 옷을 버리고 샤워를 한 뒤, 아들을 위한 배달음식을 시킨다. 공포에 떨거나 울지도 않는다. 그녀는 동정을 갈구하지 않는다. 단지 친구들과의 저녁식사에서 잠깐 이야기하고 말 정도로 치부해버린다. 일반적인 피해자들과는 전혀 다르다. 그렇게 미셸은 자신의 불행을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영화의 시작이 앞으로 일어날 일의 신호탄을 쏘듯, 영화의 서사는 예측이 소용이 없다. 영화 <엘르>는 관객이 생각할 수 있는 서사의 흐름을 무참히 깨부순다. 엘르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성폭행당한 자신을 동정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였기에 남을 대하는 방식도 그러하다. 죄책감 없이 절친이자 공동대표인 안나(앤 콘시니)의 남편과 잠자리를 한다. 그녀의 변명은 그냥 남자랑 자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 변명에도 안나에 대한 미안함은 없다.
이웃들을 무참히 찔러 죽인 살인마의 딸이라는 설정 역시 미셸을 독특한 캐릭터로 끌고 나간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그녀에게 욕을 하고 돌을 던진다. 과거에도 피해자였고 지금도 피해자인 그녀의 트라우마를 들춰보는 시각에도 그녀를 위한 위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연민이나 동정 대신 그녀의 생명력 넘치는 캐릭터를 조명한다. 그렇게 미셸은 구원 대신 스스로 깨부숴 나간다. 교도소에서 숨을 거둬 관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귀에 저주를 퍼붓는 것처럼 말이다. 사회적으로 매장된 사람이라도 핏줄로 얽힌 아버지의 죽음이라면 마음이 복잡해질 만도 하지만 미셸은 망설임이 없다.
미셸의 이런 행동들은 분명 정상적이지 않아 보인다. 일반적이지 않기에 비범해 보인다. 관객이 기대하는 캐릭터에서 어김없이 빗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하는 선택들은 관객들에게는 꽤나 혼란스럽다. 그렇게 영화는 관객들을 홀리면서 독특한 서스펜스를 완성해 나간다.
그럼에도 미셸은 제 자리를 찾아간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엘르>가 보여주는 서스펜스는 그렇게 파격적으로 시작해서 파격적으로 끝을 맺는다. <엘르>에서 관객이 정신을 차리는 순간은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