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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애인권법센터 Nov 10. 2023

15. 장애인이 법정에 나가야 한다면?

-장애인 사법지원 쉽게 알아보기

지난 글에서 '증인지원'이라는 것을 알려드린 후, 증인뿐 아니라 재판에 참여하는 사람 중 장애인이 있는 경우에 그 사람은 어떻게 재판을 참석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재판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하는 궁금하다고 연락 주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형사재판에서 장애인이 받을 수 있는 재판지원은 무엇이 있는지 정리해 보았어요. 


우리나라에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라는 법이 있습니다. 정식 이름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인데요, 2007년에 생긴 법이고 2008년부터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6조에는 사법·행정절차 및 서비스 제공에 있어서의 차별금지에 관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의 사법·행정절차 및 서비스 제공에 있어서 장애인을 차별하지 말라는 내용(제1항) 외에, 사법·행정절차 및 서비스를 장애인이 장애인 아닌 사람과 실질적으로 동등한 수준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이를 위하여 정당한 편의를 제공할 의무(제4항)도 적어두고 있습니다. 


또한 사법·행정절차 및 서비스에 참여하기 위하여 장애인 스스로 인식하고 작성할 수 있는 각종 서식의 제작 및 제공 등 정당한 편의제공을 요구하는 경우 이에 응할 의무(제5항)가 있다는 것과 


사건관계인에 대하여 의사소통·표현에 장애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형사사법 절차에서 도움을 받고자 신청하면 필요한 조치를 마련할 사법기관의 의무(제6항) 같은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6조 제8항의 위임에 따라 만들어진 같은 법 시행령 제17조 제1항은 장애인이 사법·행정절차 및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그에 참여하기 위하여 요구할 경우 제공하여야 할 정당한 편의로 “보조인력, 점자자료, 인쇄물음성출력기기, 수화통역, 대독(代讀), 음성지원시스템, 컴퓨터 등”을 적어두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것들은 모두 예!시!이기 때문에 장애 유형·정도 및 구체적 상황과 필요에 따라 제공되는 정당한 편의는 이래저래 많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장애인처별금지법 외에도 민사소송법이나 형사소송법, 장애인복지법 등 여러 법들에서 재판을 받는 장애인을 위한 지원 규정들이 있는데요, 이 글에서 그 복잡한 법조문들을 일일이 보는 것보다는 여러 법에서 쓰여 있는 것을 바탕으로 실제로 재판에 참여하고 있는 장애인들이 어떤 사법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그중 핵심적인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단도직입적으로, 재판부에 신청하는 서식을 살펴보도록 할게요. 



이 서식은 민사재판이건 형사재판이건 행정재판이건 가리지 않고 우리나라 어느 법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재판에 다 쓸 수 있는 서식이에요. 대한민국 법원 웹사이트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건에서 누가 무슨 사법지원을 받길 원하는지 적는 서식인데요. 민사소송의 원고와 피고, 형사소송의 피고인은 물론이고 재판에 증언하러 나가는 증인까지도 모두 적어서 낼 수 있습니다. 무슨 지원 내용이 있을까요?


□  활동(이동) 보조인력 □ 의사소통 보조인력 □ 휠체어 □ 확대경(확대독서기) □ 화면낭독프로그램이 설치된 컴퓨터 □ 화면낭독프로그램 이용 가능 전자파일 □ 인쇄물음성변환출력기 □ 수어통역 □ 문자통역 □ 보청기 또는 음성증폭기 (※ 그 밖에 필요한 조치가 있으면 기재할 수 있습니다.)


재판이 열리는 곳에 무사히 도착하고 또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활동이나 이동보조인력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장애 특성상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의사소통 보조인력이 필요하기도 하죠. 휠체어로 이동지원을 받을 수도 있고, 법정에서 컴퓨터 화면을 봐야 하는데 시각장애가 있는 경우에 화면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이 깔려 있는 컴퓨터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화면낭독 프로그램이 소리 내서 읽을 수 있는 글자 파일(그림파일이면 대체텍스트가 필요함)이 있어야 제대로 작동이 될 수 있겠죠.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통역이나 문자통역도 미리 신청하면 재판에서 도움 받을 수 있습니다. 보청기나 음성증폭기 역시 듣는 기능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 요긴하겠죠. 


그리고 중요한 내용이 하나 더 있습니다. "여기 쓰여 있는 것 이외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직접 적어달라"는 문장인데요. 사람마다 필요한 정당한 편의의 내용이 다들 다르기 때문에 여기 적혀있지 않은 지원이 필요하다면 마음 편히 적을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대리한 사건 중에 예전에 청각장애인이 많이 참석하는 재판이 있었는데요, 그 재판부에 미리 신청을 했더니 수어통역사와 문자통역화면이 동시에 제공된 적이 있었어요. 청각장애인이라고 다 수어를 쓰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수어를 안 쓰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큰 화면에 지금 무슨 이야기들이 오고 가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속기사가 글자를 쳐서 띄워주는 장면이었어요. 


또 다른 어떤 재판에서는 지체장애인들이 많이 참석했었는데요, 재판부에서 이러한 점을 감안해서 방청석의 의자를 몇 개 빼 두었고 휠체어들이 많이 법정에 들어올 수 있도록 장소를 조정해 준 경우가 있었어요

재판부마다 사건이 많이 쌓여 있어서 재판날이 되면 사건들이 정말 휙휙 지나가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미리 장애인에게 필요한 정당한 편의를 '장애인 사법지원 신청서'를 통해 재판부에 알려주세요. 재판 그 자체만으로 긴장할 수 있는데 현장에서 필요한 지원을 받으면 조금 더 긴장이 누그러지고 재판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간혹 이 정당한 편의 제공을 거부하는 재판부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르면 원고나 피고처럼 재판에 나가는 사람이 재판부에 미리 정당한 편의를 신청했는데도 별다른 이유도 없이 (법에는 '정당한 이유'라고 되어 있어요 - 아무 핑계나 요기 해당된다고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걸 거절하면 그건 '차별'로 인정됩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 차별을 조사할 권한이 있고, 조사 결과 장애인 차별이 맞으면 '시정권고'를 할 수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시정권고를 무시하고 계속 차별을 하면 법무부가 '시정명령'을 하기도 합니다. 이 시정명령을 어기면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맞을 수 있어요. 


재판부가 가지고 있는 사건의 양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법정에 가시기 전에 장애인 사법지원 신청이 필요하신 분은 재판일이 다가오기 전에 넉넉한 시간을 두고 신청을 해두세요. 법원에서 그 신청을 판단하고 준비하는 데에도 시간이 좀 필요하거든요. 미리 준비해서 필요한 도움을 꼭 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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