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서부터 검찰까지 사건 흐름 이해하기
피해자로서 용기를 내서 내가 당한 일을 알렸는데, 사건이 도대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경찰이나 검찰 어디에서 누가 이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인지 혹시 내 사건이 갈 길을 잃고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찰과 검찰은 항상 바빠 보이고, 그 안에 사건들이 쌓여 있죠. 아무도 내게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다'며 먼저 전화해서 알려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은 답답하다 못해 속이 터질 지경이죠.
그래서 거의 모든 피해자들은 제게 '이거 끝날 때까지 얼마나 걸려요?'라고 물어봅니다. 계속 신경 쓰고 있는 것이 참 피곤한 일이니까요. 수사기관에 알리거나 고소장을 써서 낸 사건이 실제 형사재판까지 갈 때까지 수사기관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그 과정부터 자세히 살펴볼게요!
1. 수사관 배정
먼저, 피해자가 고소장을 써내거나 112를 통해 신고를 해서 인지된 사건은 제대로 된 관할이 들어온 것이 맞는지 확인을 하고 (*관할 설명은 8번 글에 정리해 두었어요), 사건을 배당합니다. 그러니까 사건을 담당할 부서와 담당 수사관을 정한다는 뜻입니다. 여기까지가 통상 일주일 정도 걸리는 듯합니다.
2023년 11월부터 법무부가 개정한 수사준칙(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이 시행되었는데요. 이 수사준칙에 보면 이제 고소장이나 고발장을 접수 거부할 수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고소장을 내면 돌려보내는 일 없이 일단 접수는 다 됩니다. 이후 수사관이 배정된 이후에 정 말이 안 되는 사건 같은 것은 '각하'하던 지 '불입건'을 하던 지 하게 될 것입니다.
2. 피해자를 불러서 조사
피해자가 고소장을 낸 상태라면 '고소보충진술조서'를 받기 위해서 담당 수사관이 피해자에게 연락을 합니다. 경찰서에 나오라고요. 그러면 피해자는 고소장에 쓴 내용을 바탕으로 이렇게 저렇게 물어보는 담당 수사관의 질문에 더 자세한 답변을 하러 경찰서에 나갑니다. 그냥 신고만 한 사건이라도 입건(쉽게 말해 사건으로 열렸다는 뜻)된 이후에는 신고자를 불러서 조사를 합니다. 신고자가 경찰서에 나가서 무슨 상황이었는지 다시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부터 많이 늦어졌습니다. 검경수사권조정이 시행되기 전인 2020년 정도까지만 해도 고소장을 접수해서 담당 수사관이 배정된 후 피해자에게 연락해서 추가 진술하러 나오라고 하기까지 일주일에서 길어야 몇 주 정도 걸렸는데요, 검경수사권조정 이후 경찰의 수사부담이 굉장히 커지게 되면서 지금은 훨씬 길게 기다려야 합니다. 8개월까지 기다리는 사건도 보았습니다. 왜 신고인이나 고소인을 안 부르냐고 여러 번 담당 수사관에게 전화로 재촉을 한 사례도 있었고요. 어찌 되었건 피해자 조사는 사건을 이제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겠다 하는 것이니 이걸 건너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3. 피의자를 불러서 조사
피해자나 신고인이 경찰서에 나가서 자기가 겪은 일을 다 진술하고 나면, 담당 수사관은 그 이후 피의자를 불러서 조사합니다. 이때 만들어지는 서류가 '피의자 신문조서'입니다(12번 글 - 범죄자의 진술은 어떻게 증거가 될까? 에서는 피의자 신문조서는 어떻게 휴지조각이 되었는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검경수사권조정 시행 전에는 피해자 조사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피의자 조사가 있었습니다. 담당 수사관도 그렇게 하는 것이 사건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니까요.
그런데 검경수사권조정 이후에는 이 단계도 많이 늦어졌습니다. 피해자를 부른 후에도 피의자를 부르기까지 다시 몇 개월이 걸리는 사건도 있습니다. 피의자가 여러 명이거나 도피 중인 경우에는 더욱 기약 없이 늦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시간이 가면서 증거가 날아가기도 하고 기억이 흐려지기도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이 많아지고 있죠.
4. 송치하거나 불송치하거나
경찰에서 피해자와 피의자를 모두 불러서 조사를 하고 그 과정에서 수집된 증거들을 보건대, 피의자의 유죄가 비교적 명확한 사건들은 검찰에 송치됩니다. 사건 기록을 통째로 넘기면서 이제부터는 검찰이 책임을 지고 이 사건을 종결하라는 것이죠.
한편, 양쪽을 다 불러서 들어봐도 이건 민사사건에 불과하지 형사적으로 처벌될 사건이 아닌 것으로 보이거나, 죄가 될 수 없다거나, 범인이 아니라거나 하는 것들이 밝혀지면 담당 수사관은 그 사건을 불송치하기로 마음먹고 불송치결정서를 씁니다.
불송치결정서를 보면 (1) 피의자의 인적사항과 (2) 죄명, (3) 주문(대표적으로, 피의자 증거 불충분하여 혐의 없다 이렇게 씁니다), 그리고 (4) 피의사실과 불송치이유를 적습니다. 불송치이유를 쓰는 순서도 있습니다. 먼저 고소인의 주장 요지를 쓰고 이어 피의자의 변명 요지, 담당 수사관이 살펴본 증거나 정황들이 적혀있고 그러한 내용들을 종합하여 주문과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런 순서로 불송치이유를 씁니다.
이렇게 불송치 결정된 사건은 사건 '기록' 등본(쉽게 말해 복사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만 검찰에 '송부'합니다. 그러니까 사건 종결은 경찰이 했지만 검찰이 기록을 한번 보라는 차원에서 사건 기록만 보내는 것이죠. 여기서 책임이 좀 애매해집니다. 일단 경찰이 종결한 사건을 검찰이 기록을 읽으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여기면 검찰은 경찰에 기록을 보내며 보완수사요구를 할 수 있는데요. 경찰 입장에서는 이미 종결했다고 생각하는 불송치 사건을 검찰이 기록만 보고 뭘 더 보완하라고 하니 딱히 뭐 보완할 것이 있을 것 같지도 않은 것이죠. 여기에서 책임이 불분명해지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검경수사권조정 전에 검찰이 수사지휘권을 가지고 있을 때에는 피의자의 혐의가 있는 것 같은 사건이나 없는 것 같은 사건이나 모두 검찰에 송치되었기 때문에 그다음부터는 검찰 책임이었습니다. 거기서 수사지휘를 해서 경찰 수사력을 활용해 사건을 조금 더 파본다던가, 검찰청 자체의 수사관을 활용해 증거를 더 보강한다거나 하면서 사건 실체를 더 파악한 후 검사가 책임을 지고 자기 이름으로 기소를 하거나 불기소를 하는 시스템이었죠.
검경수사권조정으로 검찰의 수사지휘가 없어지면서 지금은 혐의가 있는 것 같은 사건만 검찰에 송치되고 혐의가 없는 것 같으면 경찰이 불송치결정을 내립니다. 그런데 그 불송치 결정이 된 사건기록은 검찰청에 송부되어 검사가 보고 보완수사요구를 할 수 있습니다. 검찰 입장에서는 자기 책임도 아닌 사건이고, 경찰 입장에서는 이미 끝난 사건인데 제대로 보완이 될 가능성이 예전 시스템보다 적죠. 그래서 이 과정에서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이 보완수사요구에 대한 내용은 문제점도 많고 최근에 규정들도 많이 바뀌었기에 따로 정리해서 알려드릴게요.
5. 어디에 어떻게 연락하면 될까요?
사건이 경찰단계에 있다면 담당 수사관에게 물어보는 것이 제일 빠르고 정확합니다. 사건이 배당되고 피해자 조사를 하기 위해서 경찰에서 맨 처음 연락을 해 옵니다. 그 연락을 받자마자 무슨 팀의 어떤 사람이 그 사건을 맡고 있는지 꼭 적어두세요. 그런데 담당 수사관과 연락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한 수사관이 들고 있는 사건이 너무 많은 것과 대체로 경찰서 수사관들은 3교대 또는 4교대를 하며 일하기 때문에 자리에 잘 없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래서 일단 사건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서 담당수사관에게 내면서 사건 처리에 대한 내용을 여기에 문자로 알려달라고 신청을 하면 통상적인 처리에 대한 내용을 문자메시지로 통지해 주는 경우가 최근 많이 늘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없거나 도착한 통지가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경우라면 경찰서에 사건 담당 수사관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면 됩니다. 그 수사관이 자리에 없는 경우 언제 돌아오는지 물어보세요. 예를 들어 화요일 오후에 전화했는데 누군가가 전화를 받아서 '그 수사관은 목요일 오전 9시에 출근합니다'라고 말을 해 주면 알람을 맞추든 메모를 하든 기억해 두었다가 목요일 오전 9시가 넘어서 전화합니다. 그러면 전화통화에 성공할 확률이 높습니다.
이렇게 경찰서에 사건을 낸 이후에 어떻게 사건이 진행되는 것인지 설명해 보았는데요, 안타깝게도 검경수사권조정 이후에는 이 일들에 소요시간을 예측하는 것 자체가 너무 큰 스트레스인 상황이 되어버렸어요. 경찰에서 사건을 다 처리하기에 너무나 많은 사건이 적체되어 있기 때문에 접수도 오래 걸리고, 배당도 오래 걸리고, 이후 피해자와 피의자를 불러 조사하는 것도 정말 오래 걸리는 상황입니다.
송치만 된다고 끝이 아닙니다. 불송치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을 해서 송치가 될 수도 있고, 혐의가 있다고 송치되었지만 검찰에서 혐의가 없다고 봐서 불기소결정할 수도 있고, 그 불기소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는 피해자는 그 결정을 항고할 수도 있습니다. 그 항고가 혹시나 받아들여져서 재수사가 이루어지는 사건들은 수사기관에서만 3, 4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일수록 마인드컨트롤, 마음가짐이 참 중요한데요. 제가 강조해서 말씀드리는 것은 사건이 시작되면 언젠가는 끝난다는 마음으로 맡겨두고 일상을 살아가는 데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계속 그 사건에만 집중하다 보면 일상의 소중함을 놓치며 살아가기 쉽거든요. 사건 처리가 늦어지는 것은 피해자 입장에서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 피의자 입장에서도 괴롭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나만 힘들고 괴롭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문제제기한 것이 언젠가는 처리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일상을 살아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