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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애인권법센터 Mar 13. 2024

19. 가해자 기소 후 합의냐 엄벌이냐

-가해자 기소 후 피해자가 알아야 할 법정 (하)

형사사건이 재판에 넘어오게 되면, 다른 말로 공판이 열리게 되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뭐가 제일 중요할까요? 크게 보면 3가지입니다. (1) 합의, (2) 엄벌 탄원, (3) 증언을 말합니다. 



먼저 합의를 살펴볼까요? 합의는 꼭 공판 단계에서만 하는 건 아니에요. 수사가 진행되는 중에서도 합의가 가능해요. 합의는 쉽게 말하면 "내가 너한테 이만큼 잘못을 했고, 내가 인정해. 너한테 용서받고 싶어"라고 하면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돈을 줍니다. 그러면 피해자는 종이에 합의서를 써 줍니다. "그래 내가 이 돈 받은 거 맞고 네가 처벌받는 거 원하지 않아."라고 하는 내용으로 종이를 써 줘요. 그런 합의가 안 이루어진 상태에서 기소가 돼서 재판을 받는 중에 피고인이 합의를 하자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 피해자는 고민이 됩니다. 마치 이거를 합의를 해 주면 돈 뜯어내려고 저 사람을 뭐 고소한 거 같다는 분도 만났습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는 없어요. 왜냐면 그 범죄를 인해서 내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 가해자로부터 피해를 입은 게 맞잖아요. 가해자가 처벌을 받음으로써 뭔가 회복이 되기도 하지만 가해자가 나한테 금전적으로 배상을 함으로써 치유가 되기도 하거든요. 


합의는 하기 싫고 따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겠다는 분도 있습니다. 물론 좋은 생각이에요. 그렇지만 그 둘의 차이점을 이해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합의의 좋은 점은 우선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민사소송을 제기하려면 원고(민사소송을 법원에 내는 사람)의 이름 주소, 주민번호와 같은 개인정보가 담긴 소장이 피고에게 송달되어야 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피해자의 신상이 가해자에게 노출될 수 있어요. 두 번째 좋은 점은 저절로 집행이 된다는 점입니다. 민사소송은 이기더라도 피고 명의로 된 재산이 없으면 판결문은 휴짓조각이 되기 쉬워요. 집행을 통해 받아낼 돈이 없으니 말이죠. 하지만, 형사 사건에 합의를 할 때는 돈이 입금이 된 이후에 합의서를 써 주잖아요. 그러니까 자동으로 집행 문제가 해결이 되기도 하고요. 합의를 할 때는 민사소송 손해 배상 승소액 수준 보다 조금 더 높은 금액으로 합의를 하는 게 통상적입니다. 


합의를 할 때는 피해자의 의사가 가장 중요합니다. 합의를 한다는 것은 "저 사람이 나한테 한 일을 내가 이 돈을 받고 용서할 거냐 말 거냐"예요. 그래서 피해자 몰래 부모가 합의하면 재판에서도 제대로 된 합의로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결코 바람직하지도 않고요. 변호사의 도움을 받으시면 안전하게 합의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직접 합의 자리에 나가 도장을 찍고 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가 많으니까요. 저 같은 경우도 피해자의 대리를 할 경우에는 피해자가 직접 합의 과정에 나오지 않도록 보호를 하고요, 피해자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미리 가지고 있다가 위임장과 함께 합의서를 재판부에 냅니다. 아동이나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나 그 보호자에게 합의를 해 달라고 하면서 폭행을 하거나 협박을 하면 징역형입니다. 합의강요죄가 있습니다. 


합의금은 얼마로 해야 할까요? 참 애매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무슨 표로 정리된 것이 아니거든요. 실제로는 피해자가 합의 의사가 있다고 하면 피고인 측에서 금액을 제시하고 서로 조정을 하면서 금액이 맞으면 합의서를 씁니다. 그렇다고 시장에서 물건값 깎듯이 흥정을 하는 것은 아니고 피해자의 마음이 제일 중요하겠죠. 

합의서에 쓰는 내용도 비슷하면서 조금씩 다른데요, 그냥 깔끔하게 피해자는 가해자를 용서하고 합의했다고 적는 합의서도 있지만, 대체로 무슨 내용으로 합의했는지 적습니다. 저는 합의금을 얼마 받았고 어떤 방식으로 받았는지도 필요할 경우 적기도 합니다. 합의가 진정으로 성립되었음을 재판부에도 알릴 필요가 있으니까요. 



두 번째로 엄벌탄원입니다. 합의가 도저히 안 되는 사건도 있어요. 그럴 때는 엄벌 탄원서를 냅니다. 피해자가 사건 담당 판사님에게 편지를 쓰는 거예요. 사실 판사에게 제출되는 피고인들의 반성문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작 피해자는 그 반성문을 볼 수 없습니다. 판사님이 볼 수 있도록 허락을 하기 전에는 말이죠. 문제는 판사님이 자신만 읽는 이 피고인의 반성문을 보고 진짜 피고인이 반성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어릴 때 힘들게 자라면서 나쁜 길로 빠졌다, 술을 먹으면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랬는데 다시는 술을 먹지 않고 있다 등등 변명은 끝도 없습니다. 그럴 때 피해자는 이 사건으로 얼마나 힘든지, 저 사람 왜 강하게 처벌되어야 하는지 적어서 내는 것입니다. 정성스럽게 쓴다고 손글씨로 굳이 쓰시는 분도 있긴 한데 글씨가 예쁘지 않으면 읽기가 힘드니 그냥 컴퓨터로 쓰셔도 돼요. 조금 빳빳한 연한 색깔지에 위아래 양 옆 여백을 넉넉히 설정해서 눈으로 보기 편하게 정리해서 내는 것이 좋습니다. 꾸깃꾸깃 도착하지 않도록 서류봉투에 잘 넣어서 우편으로 제출해도 좋겠죠. 구체적인 경험이 담기면 좋습니다. 그냥 막연히 힘들다고 쓰는 것이 아니라 너무 힘들었기에 직접 겪었던 일을 담는 것이죠.



세 번째는 증언입니다. 14번 글에서 자세히 설명을 했는데요. 미리 증인지원 신청을 해서 증인 지원을 받는 방법을 담았죠. 증인 지원은 뭐가 있었죠? 법정에 들어가기 전이나 법정에서 나온 이후에 증인과 동행하는 것, 재판을 비공개로 하는 것, 피고인이랑 마주치지 않게 하는 것, 신뢰관계인이 옆에 있으면서 증언하는 것 등 다양합니다. 최근에는 여기다가 더해서 영상 증인 신문이 생겼어요 법원 안에 있는 화상 증언실에서 증언하는 것도 있고, 이미 재판 중인 사건이라도 해바라기센터 진술실에서 증언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13번 글에 자세히 있음) 아니면 피해자가 병원에 입원에 있다거나 해서 도저히 법정에 올 수 없을 경우 병원에서 화상 증언하는 제도도 있습니다. 


모든 피해자가 다 법정에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피해자의 진술이 담긴 서류를 피고인이 증거로 쓰길 거부했을 때, 그 소중한 서류를 증거로 되살리는 방법은 피해자가 법정에 증언을 하러 나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피고인 측의 반대신문을 받아야 하는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그게 가장 정확하고 확실한 증거 되살리기 방법이에요. 


미성년자 성범죄 피해자라 할지라도 법정에 나가서 반대 신문을 받아야 되는 게 원칙이에요. 다행히 2023년 6월 말 법이 개정되면서 몇 개의 예외가 생겼습니다. 피해자가 사망했거나, 외국에 나가 귀국이 안될 때, 질병이나 장애가 심할 때, 행방불명되었을 때에는 피해자의 진술이 담긴 영상녹화물 그 자체를 미성년자 성범죄 사건의 증거로 쓸 수 있게 된 것이죠. 



합의하는 과정, 엄벌 탄원서를 적어 내는 과정, 증인으로 법정에 나가서 증언을 하는 과정이 피해자에게 결코 쉽지 않은 것을 알지만, 피해자 국선변호사 제도가 있으니 꼭 필요한 도움을 받아보시길 권해드려요. 재판에 넘어갔다고 마음을 놓지 마시고 끝까지 지켜보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함으로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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