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에 넘어가기 전에 피해자가 챙겨야 하는 것들
분명히 가해자가 범죄를 저질렀는데 수사과정에서 망하는 사건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문제일 수도 있고, 잘못 설계된 제도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요. 이런 느낌은 감지하여 뭔가 좀 불안하다고 느끼는 피해자가 있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피해자 입장에서 수사관이 본인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섭섭한 그 정도의 차원이 아니라, 실체적 진실이 왜곡되는 것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 피해자는 '형사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숨죽이고 사건의 흐름을 지켜봐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특히 수사 과정에서 사건이 틀어지는 것 같다고 느낄 때 피해자가 할 수 있는 대처법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고소인은 불송치결정에 대해서 꼭 "이의신청" 하세요
수사 단계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 제도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반적인 흐름은 이렇습니다. 먼저, 피해자가 고소를 하죠. 수사기관에 자기가 당한 범죄를 알리는 일인데요. 그 이후 고소인 조사를 하고 피의자를 부릅니다. 사건의 윤곽이 그 과정에서 어느 정도 잡히면, 증거를 수집하는 수사가 진행됩니다. CCTV도 확보하고 주변에 목격자가 있으면 목격자 진술도 들어보고 신용카드를 어디서 썼는지 지하철을 어떻게 타고 이동했는지 등을 수사를 통해서 밝혀냅니다.
경찰이 보기에 피의자가 유죄로 보일 경우에는 사건이 검찰에 송치됩니다. 다만,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2021년부터는 모든 사건이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되는 것이 아니라 혐의가 없다고 보이는 사건은 경찰에서 수사를 종결할 권한이 생겼습니다. 그냥 불송치로 사건이 끝나는 것이죠. 피해자 입장에서는 이게 납득이 안 될 경우, 가장 중요한 도구가 바로 '이의신청'입니다. 경찰의 불송치결정에 대하여 피해자가 이의=신청을 하면 이 사건은 무조건 검찰로 송치됩니다. 이렇게 넘어가는 사건을 '이의송치 사건'이라고 합니다.
검경수사권 조정 전에는 모든 사건이 경찰을 거쳐 검찰에 자동으로 다 송치가 되었는데 (이른바 '전건송치') 이걸 이렇게 바꾸면서 제대로 수사가 안 되고 덮이거나 하는 사건이 있으면 어떡하냐고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검경수사권조정을 추진하던 정부와 국회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 다 똑똑해서 알아서 이의신청 할 것이다.' 했어요. 그런데 시행되고 첫 해가 지나서 들여다보니 불송치된 사건 중에 겨우 5.6%만 이의 신청을 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나머지 95% 가까운 사건들은 그냥 불송치로 끝난 것이죠.
이런 구조가 적게 배우고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지적이 해결되기도 전에 2022년 4월 달에 민주당이 이른바 검수완박이라는 입법을 통과시키면서 그나마 있던 '고발인의 이의신청권'마저 없애버렸어요.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고발인만 있는 사건 (장애인 학대 사건, 환경 범죄 선거 범죄, 내부 비리 제보 사건 등)은 경찰의 불송치로 끝나고 이를 다시 뒤집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졌습니다. 특히 취약한 피해자에게 가혹하고 사회 정의에도 부합하지 않아서 고발인의 이의신청권 복원해야 된다는 지적이 많음에도 아직도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불송치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은 현재로서는 고소인만 할 수 있습니다. 이의 신청은 기한 제한이 없고, 불송치결정을 내린 경찰서에 하는 겁니다.
2. 검찰에 넘어간 사건은 적극적으로 검찰의 직접 수사를 요청하세요
이의신청을 통해 검찰로 송치된 사건이니 앞으로 잘 진행될 것이라 마음을 놓는 것은 오산입니다. 수사권조정으로 형사소송법이 바뀌면서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없어지고, 검찰은 경찰에 '보완수사요구'만 할 수 있게 되었거든요.
수사지휘권이 있던 시절(수사권조정 전)에는 수사지휘서를 붙여서 경찰에 사건을 내려보내도 그 책임은 검찰이 지고 있었기에 제대로 된 수사를 촘촘히 요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수사지휘권이 없어지면서 경찰에 사건을 하면 검찰은 그 사건에 대한 책임에서 해방입니다. 그런데 막상 검사가 보내온 보완수사요구를 처리할 시간이 경찰에게 부족합니다. 새로운 사건도 쏟아져 들어오는 중이라 검찰에서 보완하라고 보내오는 사건을 빨리 처리하는 것이 무지 어려운 구조가 된 것이지요. 보완수사요구로 다시 경찰에 간 사건이 세월아 네월아 하는 경우, 몇 번의 보완수사요구로 사건이 검찰과 경찰을 왔다 갔다 하는 경우 등 그렇게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가는 사건이 많아져서 최근 몇 년 간, 수사지연은 곪아가는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이 수사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는 법이 바뀌어야 하지만 형사소송법을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니, 법무부에서는 검경협의체의 논의를 거쳐서 [사법 경찰관의 상호 협력과 일반적 수사준칙에 대한 규정]이라는 대통령령을 바꿨습니다. 원래 검사는 송치받은 사건이라도 직접 수사를 하기보다는 경찰에 보완수사요구를 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적혀 있었는데, 이것을 바꿔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보완수사 요구를 보내지 말고 검사가 직접 수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2023년 10월부터 시행되었어요.
바뀐 대통령령에 따르면 검찰이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후 들여다보고 1개월 이내에 보완수사요구를 경찰에 보내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 1개월이 넘어갔다면 그 이후에는 검찰에서 수사해서 사건을 보완하도록 했습니다. 여기서 '송치 사건이 넘어온 날'이란 검찰청에 사건이 넘어왔다고 도장 딱 찍힌 날을 말하겠죠. 검찰만 시간제한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경찰도 보완수사요구를 받은 지 3개월 안에 보완수사를 해서 사건을 다시 검찰에 보내야 하도록 바뀌었습니다.
이 수사준칙을 통해서 피해자가 검사에게 "사건을 경찰한테 보내지 말고 검사님이 좀 직접 수사해 주세요."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생겼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종이에 써서 직접 수사해 달라고 우회에서 한번 부탁을 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검사님 이 사건이 경찰에서 수사할 때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어서 바쁘시겠지만 검사님이 좀 직접 이 사건을 좀 수사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편지를 써 보는 것이죠. 피해자의 변호사로 일할 경우에는 의견서로 내기도 합니다. 경찰에서 검찰로 사건을 보냈으니 가급적 검찰에서 직접 피해자를 불러서 조사를 해 주시거나 어떤 증거를 직접 확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는 것이죠.
큰 기대에는 큰 실망이 따라올 수 있습니다. 사건이 검찰에 넘어갔고 하면 뭔가 새로운 긍정적인 상황이 막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가 들지만, 사실 검찰에서 결론이 바뀌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현직 검사들이 양복을 입고 범행 현장에 직접 가본다거나 현장에 출동해서 목격자에게 상황을 물어본다거나 하는 장면이 종종 나오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은 없습니다. 검사들이 게으르거나 오만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한 검찰청이 있으면 그 검찰청을 관할하는 경찰서가 7~10개는 됩니다. 한 경찰서마다 사건이 미어터지는 상황인데 그 사건들이 검찰청 한 곳으로 몰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사건들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진행하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실제 경찰의 숫자가 검찰수사관의 숫자보다 훨씬 더 많기도 하구요.
그래서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이후라면 달라진 수사준칙을 언급하면서 "경찰에서 잘 소통되지 못한 점, 추가로 보완될 수 있는 점" 등을 지접 수사해 달라고 부탁해 보세요. 답답한 마음에 자주 전화해도 되냐고 묻는 분들도 계신데요, 마음은 백번 이해하지만 가급적 써서 내시는 것이 좋습니다. (*10번 글에 수사기관에 뭔가를 써서 내는 방법을 정리해 두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버겁게만 느껴진다면 '피해자 국선변호사'의 도움을 꼭 받으세요. 피해자의 변호사는 피해자를 포괄적으로 대리해서 피해자의 주장을 잘 정리해서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으니까요. 달라진 수사준칙을 통해 피해자가 챙길 수 있는 것, 이의신청에 이어서+검찰의 직접 수사를 부탁하는 일! 잊지 말고 꼭 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