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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애인권법센터 Mar 21. 2023

5. 피해자에게 어떻게 불리해졌나(하)

- 사건이 늘어지고 망가져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문제

지난 글에 대한 다양한 반응이 있었습니다. 전혀 몰랐다는 분도 있었고, 어렴풋이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현실에서의 문제가 심각할 줄은 몰랐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많은 물음은 어쩌다가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지게 된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검찰개혁의 방향 안에 '경찰의 수사종결권'은 없었습니다. 원래는 검찰이 콕 찝어서 직접 착수하는 검찰의 '1차 수사 개시'를 줄이고, 검찰제도가 탄생한 이유이자 가장 효율적인 수사권 통제 방법인 '수사지휘'를 잘 하도록 검찰의 역할을 다듬어나가는 것이 검찰개혁의 방향이었죠. 여당과 야당이 모두 동의하고 심지어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까지 동의했던 이 검찰개혁(검찰의 1차 수사개시 폐지 + 검찰 수사지휘와 보완수사 강화)이 입법단계 막판에 갑자기 틀어집니다. 검찰에게 일부 범죄들(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참사범죄)에 대한 1차 수사 개시권한을 남겨두는 방향으로요. 이에 대한 경찰측의 반발이 생각보다 거세자, 이를 달랠 수단으로 갑자기 경찰에게 수사종결권을 줌과 동시에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는 졸속 합의가 탄생하게 된 것이죠. 그 이후 국회는 내용이고 뭐고 더 시간 끌것 없다는 식으로 패스트트랙을 이용해 이 설익은 법을 급하게 통과시킵니다. 그리고는 앞으로는 알아서 다 잘 될 것이다 이러면서 자축하기 바빴죠.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지게 되고,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폐지되고, 여기에다가 2022년 검수완박 입법(고발인의 불송치결정 이의신청권을 폐지한 것)이 더해지면서 실무는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사건이 경찰 단계에서 덮힐 가능성이 커지고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정말 죄가 없는 것인지 다시 들여다볼 방법이 크게 줄었다는 것은 지난 글에서 자세히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럼 왜 이렇게 피해자에게 불리한 제도의 변화가 별 고민없이 통과되고 시행될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이 일련의 제도의 변화로 인해 수사의 책임자가 불분명해졌기 때문입니다. 제도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지적할 공권력 주체들이 증발했다는 뜻이죠.


2021년 검경수사권조정이 시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경찰이 수사한 모든 사건은 혐의가 있어보이든 없어보이든 일단 검찰에 전부 '송치'되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검찰의 책임입니다. 검경수사권 조정 전에는 경찰이든 검찰이든 어디에나 알릴 수 있었기 때문에(지금은 거의 모든 사건을 경찰에다가만 알릴 수 있습니다), 검찰로 신고나 고소가 들어온 사건은 경찰에서 실제 수사실행을 하고 있더라도 검찰 책임이었죠. 검찰이 수사지휘서를 붙여 경찰로 사건을 수사해달라고 보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었으니까요.


검찰이 '사건의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검찰이 목숨줄을 쥐고 흔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다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결과가 불공정하거나 부정의할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검찰에 오롯이 물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검찰이 사건의 책임을 지던 시절에는 수사지휘나 직접보완수사를 통해서 검찰이 최대한 증거를 끌어 모아서 그 이후 피의자를 기소하든 불기소 하든 자기의 책임으로 사건을 끝내야 했습니다.


물론 수사실행은 경찰이 많이 합니다. 수사인력의 숫자만 보면 검찰수사관보다는 경찰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죠. 그래서 검찰은 사건을 파악하고 보완 수사가 필요한 부분을 특정하고 기한을 정해서 경찰에 수사지휘를 보냈습니다. 이렇게 수사지휘로 사건이 경찰로 다시 간다고 해서 한번 생성된 검찰의 사건 번호가 바뀌지 않습니다. 계속 그 검사의 책임으로 남아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수사권조정 전에는 경찰이 수시지휘 기한을 넘기면 검사가 사건처리 실적에서 피해를 보는 구조가 살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건이 지연되거나 늘어지기 어렵고, 공범이나 추가 범죄가 줄줄이 사탕으로 나와도 그걸 놓치면 책임을 져야 했기에 모두 한 사건으로 병합되어 처리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검찰이 열심히 일을 안 할수가 없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검경수사권조정이 시행된 이후인 2021년부터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사라졌습니다.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지게 되면서 검찰은 경찰이 불송치결정한 사건은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핑계를 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사지휘를 할 권한도 하루 아침에 없어졌기 때문에 검찰은 경찰이 보내온 수사기록을 보다가 뭔가 추가적인 수사가 필요하면 수사지휘가 아닌 '보완수사요구'만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의혹제기 또는 부탁 정도이죠. 경찰 입장에서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실무상 중요한 문제가 생깁니다. 검찰이 경찰에 보완수사요구를 하면 그 사건은 더 이상 검찰청 사건이 아닙니다. 아예 검찰 사건번호가 날라가 버립니다. 그래서 경찰에서 보완수사요구를 받고 몇 개월이 지나도록 보완수사내용을 안 보내주더라도 검찰이 피해보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처리해야 할 사건이 많을 경우, 에라 모르겠다 경찰에 보완수사요구를 파바박 날리는 신공을 펼치면, 더 이상 그 사건들은 그 검사실에서 처리해야 되는 사건이 아닌 게 되는 것이죠.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가지게 되었으니 그럼 경찰의 책임이 아니냐구요? 경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 사건은 본인들이 송치냐 불송치냐를 결정해서 검찰에 보내버린 사건이기 때문에 이제는 검찰이 책임져야 한다고 하는 것이죠. 이렇게 서로 경찰과 검찰이 서로 상대방 책임이라고 떠넘기는 사이 가해자들은 증거인멸하고 도주하고 피해자에게 추가적인 피해를 가하고, 반면 피해자들은 기다리다가 진이 빠지고 애간장이 녹는 경우를 참 많이 보았습니다.


이미 법은 이렇게 바뀌어버렸고, 범죄 피해는 매일같이 계속 일어납니다. 그러면 피해자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말 우리나라 형사사법체계 믿고 고소해도 되는걸까요?


이 체계를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우리나라에서 범죄자를 처벌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오직 수사기관을 통한 기소밖에는 없습니다(국가소추주의). 개인이 자신에게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바로 형사재판에 끌고갈 수 없어요. 그래서 피해자가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미우나 고우나 지금의 이 제도 안에서 고소장을 접수하고 그저 수사가 잘 진행되기만을 두 손 모아 빌고 빌어야 할 뿐입니다.



가뜩이나 용기를 내는 것도 어려운데 기껏 고소를 했더니 바뀐 법제도 때문에 더 힘들고 어렵다 하는 피해자분들을 위해, 다음 글에서부터는 각 단계마다 마주하는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고 그 상황들을 헤쳐나가는 꿀팁들을 풀어보겠습니다.



** 이 글을 쉽게 설명한 영상 보러가기!



장애인권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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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펠로우 3기 김예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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