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원 펠로우ㅣ장애인권법센터 대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혁신가 레이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십과 함께하는 사회 혁신가를 소개합니다. 모두의 당연한 일상을 위해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 이들이 앞당기고 있는 내일의 당연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인권 변호사인 김예원 펠로우는 장애인권법센터의 대표이자 유일한 직원입니다. 장애인·여성·아동·이주민 등 소수자를 위한 범죄피해 지원 활동을 합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안전할 수 있는 법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부지런히 달리는 김예원 펠로우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장애인권법센터라는 1인 법률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예원 변호사입니다. 교통사고처럼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범죄 피해 앞에 유독 취약한 사람들을 무료로 변호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제가 굉장히 숭고한 일 하는 것처럼 봐주시는 분도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저는 뭐가 잘못되면 잘못됐다고 말을 하고, 왜 잘못되었는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을 것 같은지 얘기를 해야 되는 성격이거든요. 약자들이 어려움의 처한 상황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성격상 꼭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랍니다.
거창한 숙명이나 소명은 없어요.
마음에 사랑이 부족한 제가
직업적으로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공익 변호사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아요.
Q. 변호사로서 공익 활동에 몸 담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을까요?
저는 의료 사고로 한쪽 눈을 잃은 장애인 당사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약자들을 위한 법률활동을 한다고 생각하시는데, 사실 그렇지는 않아요. 학창 시절, 저는 목소리 크고 공부 잘하고 힘센 학생이었거든요. 일상에서 장애가 부각되기보다는 많이 나대고 친구들과도 잘 지냈어요. 장애인에 대한 개념은 저조차도 매우 피상적이었습니다. 누군가 먹여주고 씻겨줘야 하고, 무능력하고 뭔가 배제되어있는 게 당연한… 그런 사람들로 제 머릿속에 있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변호사가 되어 일을 하면서, 사건의 당사자들을 만나면서 느낀 바가 컸습니다. 큰 법무법인에서 운영하는 재단 법인의 공익 전담 변호사로 일을 시작했는데, 적성에 맞는다고 느꼈어요.
장애인 불법 시설 피해자를 구출하는 현장에 간 적이 있었어요. 사람의 손가락마다 '장', '애', '인' 글자를 새겨두고 감금·학대를 일삼은 끔찍한 사건이었는데요. 현장에 다녀온 뒤로, 다른 사람들은 그 장면이 꿈에 나와서 괴로웠다고 하는데 저는 꿈에서 그 사람을 혼쭐을 내주고 있더라고요. 법을 통해 약자를 구하고, 가해자에게 벌주는 일은 제 본성이 원하는 일인 것 같아요. 다양한 관점을 가진 조직과 기관, 관련된 사람들이 연대해서 약자를 돕는 경험에서 행복을 느끼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공익법률활동을 쭉 이어가고 있습니다.
Q. 말씀하신 대로 큰 로펌에서도 공익 사건을 맡을 수가 있는데요. 1인 법률사무소를 만드는 건 다른 차원의 결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현장을 좋아하는 변호사예요. 로펌에 있으면서 장애인, 난민, 이주민, 북한 이탈 주민, 아동 등 소수자와 약자의 소송을 두루 경험했는데요. 당사자 분들을 회사 회의실에서 만나는 일이 많아서 아쉬웠어요. 밖으로 나가 진짜 현장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서울시장애인인권센터로 옮겨서, 전화를 받고 출동해서 조사하는 일을 3년 정도 했어요. 현장에 많이 갈 수 있어 좋았지만 관할 구역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서울시 기관이다 보니 서울시 안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서만 지원을 할 수 있었어요. 개별 사안을 제도 개선으로 확장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고요.
더 행복하고 보람 있게 일할 방법은 없을까 한참을 고민했는데요. 사실 답은 나와 있었어요. 한 가지만 포기하면 되더라고요. 돈 벌 생각을 안 하면 됩니다. 내가 사무실을 차리면 하고 싶은 일을 다 맡을 수 있더라고요. 장애인권법센터를 세운 지금은 관할 구역의 한계 없이, 분야에 상관없이 다양한 일을 맡고 있어요. 환경, 정보, 인권, 더 깊이는 장애나 사회적 소수자 인권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다 경험할 수 있는 거예요. 정부 부처도 기존에는 보건복지부 위주로 일했다면, 지금은 국방부, 산자부 할 것 없이 만나게 됐어요. 각 부처 안에서 바꿔야 될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장애인권법센터는 저에게 폭발적인 성장, 관점 확장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Q. 장애인권법센터의 활동은 다른 공익 법률 활동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제가 맡은 의뢰인은 주로 장애인이나 어린이 등, 취약한 상황에 있는 범죄 피해자입니다. 이들에게 어떠한 수임료도 받지 않고 사건 지원을 해요. 장애인권법센터는 비영리단체가 아니라, 평범한 변호사 사무실이에요. 이렇게 전면 무료로 법률 지원을 하는 변호사 사무실은 장애인권법센터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법률 사무소이기 때문에 일반 대중의 후원도 받지 않습니다. 피해자를 만나고, 소송비용 등 사건에 수행에 드는 활동비를 확보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강의나 집필,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단순한 사건 지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지원하고, 사건에서 파생하는 법 제도의 문제를 개선하는 활동도 함께 합니다. 약자 대상 범죄에는 패턴이 있어요. 성폭력 사건을 예로 들면, 일단 장애 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은 가해자들이 공통적으로 “장애인인 것 몰랐다”라고 변명을 합니다. 심지어 복지카드를 자기가 압수해놓고도 몰랐다고 거짓말을 해요. 이렇게 같은 사건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걸 막으려면, 수도꼭지를 잠가야 해요. 법을 고친다든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법은 아예 새롭게 만들어 본다든가.
일례로, 성폭력으로 임신 정황이 있는 지적 장애 여성을 지원한 일이 있었는데요. 이 경우,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수사와 재판에서의 대응 지원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피해자가 임신 유지를 원할 경우 의료지원 연계, 출산 이후 머물 곳과 지원금 연계, 아이 입양 혹은 출생신고를 통한 시설 입소 지원 등을 종합적으로 진행해야 했죠. 또, 해당 사건에서 피의자가 도주하여 사건 진행이 매우 지연되었는데, 사건 지연을 묵인하는 수사 지침이 부당하다고 문제를 제기하여 수배와 체포 과정을 포함한 신속한 수사가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즉, 피해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이라면, 변호사로서 뿐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전반적인 지원체계를 연결하며 활동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받지 않는 것은
도저히 적은 금액도 낼 수 없는 분들,
생존의 위기까지 있는 분들 위주로 지원을 하니까
당연한 선택입니다.
Q. 김예원 님이 그동안 만들어낸 변화가 궁금합니다.
제가 한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 장애인이라 1종 보통 운전면허에 응시할 자격이 없었어요. 양쪽 눈이 다 보이지만 시력이 나쁜 사람보다, 오히려 정확하게 볼 수도 있는데도요. 이 제도로 직업을 잃는 중도 시각 장애인이 많은 것을 확인한 후, 7년 동안 장애인단체와 연대 투쟁하여 도로교통법 시행령을 개정하였습니다. 그 결과 현재는 한 눈 시각장애인이라도 1종 보통 운전면허에 응시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습니다.
양천 입양 아동 학대 사망 사건 이후, 국회에서 인기 영합적인 악법이 다수 발의되었어요. 두 달간 무려 50여 건이나 있었죠. 이 모든 개정법안을 하나하나 철저히 분석하고 정리한 의견서를 심의 국회의원들에게 지속해서 전달하고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아동 인권에 역행하고 가해자에게 유리한 악법들의 제정을 막고 오히려 필요한 법, ‘아동 학대 살해죄’ 같은 법이 입법되도록 활동하였습니다.
'내가 진짜 대단한 일 하나'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스스로에게 늘 “겉멋 들지 말자”라고 말해요.
그것을 제가 계속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Q. 세상에 꼭 전하고 싶은 가치가 있나요?
범죄는 기본적으로 저 사람이 나보다 낮다고 여길 때 발생합니다. 가해자가 내가 가진 주류성을 너무 믿기 때문에 발생하는 측면이 있어요. 약자 대상 범죄는 특히나, 힘의 권력관계를 악용해서 발생하는 일들이 많잖아요. 누구나 가진 소수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아무리 기득권이고 잘난 사람 같아 보여도, 그 사람 안에 사회적 소수성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자기 안에도 어떤 면에서는 소수성이 있다는 걸 직면하면 상대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 모두의 문제라는 걸 깨달을 수 있어요.
‘당신이 무시하는 저 사람도 당신과 똑같은 사람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게 모든 사람에게 다 각인되면 좋겠어요. 그럼 누구나 자기 인생을 찾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
Q. 김예원 님이 꿈꾸는 일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살다 보면 누구나 범죄 피해에 노출될 수 있지만, 법은 항상 소수자와 약자에 더 가혹합니다. 발달장애가 있든, 나이가 많든 어리든 상관없이 누구라도 쉽게 그 상황을 헤쳐나가고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그러려면 약자의 어떤 권리에 대한 법안을 만들 때,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그 부분에 대해서 원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해요. 입법자들은 그런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속돼서 일해야 하고요.
자기 참여권을 누리기 어려운 아동, 또는 장애인처럼 자기 소수성을 숨기고 사는 데 급급한 사람들이 자기와 관련된 정책이나 제도나 입법에 목소리를 크게 내는, 그 목소리들이 잘 담길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및 본문 정리 : 백수진
일러스트 : 애슝 (@ae_shoong)
김예원 님과 함께하는 카카오임팩트 펠로우십이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