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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올가 Jun 30. 2021

오랜만에 오르는 푸릇푸릇한 도봉산

매일매일 올라도 다른 산


최근에는 의도치 않게 주말이나 공휴일에 산을 오르게 되었다. 산에 오르면서 정말 많은 젊은이들이 산을 오르는 것을 보게 된다. 주변에 지나가는 분들도 젊은이들이 산을 오르는 걸 보니 기분이 좋다고들 말씀하신다.


대한민국은 약 2천5백만 명의 등산 인구가 있어서 외국에 비해 등산길 정비가 잘 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유럽에 있는 알프스 같은 경우도 풀이 무성하게 자라 길을 덮여 길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


이렇듯 한국인은 산을 사랑하는 민족이다. 이것은 지형상 곳곳에 산이 가까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은 오랜만에 눈여겨보고 있던 도봉산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오전 7시 반부터 산을 올랐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아마도 이 더운 여름 날씨에 일찍 산행하고 내려가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 같다.


부쩍 더워진 날씨에 물병을 여러 개 챙기고, 오랜만에 소풍 같은 분위기를 내보려고 어제 부리나케 시금치를 삶아 김밥을 쌌다. 짐은 무겁지만 잔뜩 먹을 것을 들고 오르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땀이 쏟아지지만 지나가며 자일을 타기 위해 무거운 로프를 들고 가는 이들을 보니 내가 든 무게는 그리 무거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지난번에 봄이 싱그럽게 느껴졌던 도봉산은 어디에 간 것인지 너무나도 푸릇푸릇한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준다. 추울 때 산을 오를 때는 적당한 햇빛이 필요했지만 나무의 그늘 사이를 지나가다 보니 금방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역시 땀을 흘리며 산을 오르는 건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최근 며칠간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고 취준생으로서 자존감이 많이 하락했다. 괜히 나는 사회에서 거부당한 존재 같기도 하고 면접에 줄줄이 탈락하는 나의 무능함을 탓하기도 했다. 그때 밤 잠을 뒤척이며 생각한 것은 몸을 움직이고 산에 가서 땀을 흘리며 자연을 느끼자라는 것이었다. 몸을 움직여 산 입구까지 걸어가는 과정이 어려운 것이지 그 이후부터 산과 등산객 무리에 나를 집어넣는 순간부터 저절로 산에 오르게 된다.


나는 아직도 초보 산꾼이고, 알고 싶은 산들도 많지만 아직 시내에 있는 산들의 모든 코스를 정복하기에도 부족한 등린이다. 그럼에도 3개월 전 시작한 등산은 나의 자존감을 세워주고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


오늘은 도봉탐방지원센터에서 석굴암을 지나 신선대로 올랐다. 석굴암은 이런 곳에 절을 지었나 할 만큼 생뚱맞은 곳에 위치해 있다. 지나가는 선생님께 절에서도 신선대로 이어지는 길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된다고 해서 절에 들였다가 산을 오른다. 이런 샛길이 있다는 게 더 신기할 정도이다. 샛길을 지나니 자일을 타는 암릉길과 연결된다. 의도치 않게 자일을 타는 많은 산꾼들을 마주한다. 저 높은 암릉을 밧줄과 자신의 손에 의지해 타는 그들이 정말 대단하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많아서 시도해 볼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암릉 구간을 지나 물어물어 다시 본길에 합류했다. 이곳에서 신선대까지 오르는 길이 끝날 것 같은데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 길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꽤나 힘든 구간이다. 오르는 이들도 '악'소리가 난다며 현실을 부정하곤 한다. 신선대 근처에 다다르자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여기까지 올랐으니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이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나는 가파르게 오르는 신선대에서 기다릴 수 없어서 계단을 타고 자운봉으로 넘어가 도시락을 먹었다. 도봉산에 사는 고양이들이 지나가며 밥을 달라고 하지만 생태계를 위해 주진 않는다. 자운봉에서 앞에 보이는 거대한 암릉을 보며 밥을 먹고 있으니 내가 신선이 된 것 같다. 시원한 바람과 뜨거운 햇빛이 번갈아 비추어 만들어 준 적당한 온도가 참 기분이 좋다.

신선대를 오르는 수많은 이들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다. 이제 내려가야지 하고 길을 살펴본다. 자운봉에서 마당바위까지 이어진 길을 빠르게 내려간다. 하산길은 항상 가볍기는 하지만 도봉산은 계단이 많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도봉산은 생각보다 북한산 백운대 보다 버거운 구간들이 있다. 마당바위에 수많은 인파를 보니 새삼스럽게 대한민국의 등산 인구수가 헤아려진다.


마당바위에서 잠시 앉아 커피와 간식을 먹었다. 하산하기 전 마지막 쉬는 구간 이리라. 구석에서 가만히 앉아 간식을 먹고 당 충전한 몸으로 마지막 힘을 내본다. 옆으로 지나갈 때마다 보이는 문사동 계곡이 괜스레 시원하다.


초여름에 만난 도봉산은 어찌나 푸릇푸릇하던지 정말 어른들 말처럼 매일매일 산은 다르다.. 그러기에 매번 산을 오를 때마다 새로운 기분으로 마주할 수 있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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