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장녀의 삶을 건너온 한 맏딸의 이야기

블라썸도윤 작가의 <달이 뜨면 바다가 운다오>를 읽고

by 오즈의 마법사

속언에 ‘맏딸은 살림 밑천이다’라는 말이 있다. 농경사회였던 시대에 맏딸이 가사, 돌봄, 노동을 통해 가정 경제를 실질적으로 지탱했던 현실에서 비롯된 말이다. 당시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는 중요한 말이지만, 오늘날에는 시대적 맥락을 고려해 달리 해석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현대 사회에는 K-장녀라는 타이틀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장녀가 떠안아 온 보이지 않는 책임과 감정 노동을 자각적으로 이름 붙인 표현이다. 예나 지금이나 장녀라는 위치가 한국에서는 유난히 무겁다는 인식은 세월이 변해도 그대로인 것 같다.


이번에 소개할 블라썸도윤 이도윤 작가의 <달이 뜨면 바다가 운다오>가 바로 K-장녀, 맏딸의 애환을 그린 책이다. 블라썸도윤 작가는 2025 인천 지하철 시 공모전에 당선한 시인이다. 이 책은 2024년 ‘읽고 걷고 쓰다’라는 인천 중앙 도서관의 추진 목적에 투고하여 출간되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이 책은 결국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다’는 말로 귀결된다.


<달이 뜨면 바다가 운다오>는 2부로 나뉘어, 총 45편의 자전적 에세이가 들어 있다.


세 번째의 스무 살을 넘기면서 밀물과 썰물의 안김과 차냄이 밀도 있는 유적처럼 제 가슴에 담겨있는 한 바구니의 새옹지마 같은 일상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속에 있던 고름을 팍 터뜨리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이제는 내 중심을 흔들지 말고 남은 인생을 헛되게 보내지 않도록 반가운 인사가 되게끔 살려고 합니다.

(‘작가의 말’ 중, P6)


부모님이 아프면 일가방 맨 채로 허겁지겁 달려와서 병원을 모시고 다녔다. 다 내 몫이다. 저녁에 다시 와서 죽을 해 드리고 물수건을 바꿔드리며 주물러 드렸다. 부모님 집 가까이 둘째 딸이 살며 낮잠 자고 있어도.

(‘다섯 손가락 깨물면 다 아파’ 중, P17)


글쓴이는 1남 3녀 중 맏이였다. 때 되면 비싼 과일을 부모님께 사다 드렸고 아프면 병원에 모시고 갔다. 일하면서도 고군분투하며 챙겼는데도 고맙다는 따스한 말 한마디 듣지 못했다고 한다. 맏이도 다 감정이 있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을 것이다. 칭찬은커녕 지청구를 들어도 대꾸 한번 못했다는 작가의 글 앞에서 맏이의 서글픔이 그대로 전해졌다.


왜 나는 하대를 받지. 살아생전에 내 엄마가 자식들 간의 교통정리를 좀 해 주셨으면. 고쳐지기 힘든 성격의 유형을 어려서부터 잘 잡아주셨더라면. 동네 어르신들께는 참 잘하시는 내 엄니가 왜 내겐 차가운 말로 지적으로 냉정하셨을까. (‘인사치레 2’ 중, P81)


나는 베이비붐 세대 언저리이다. 장남·장녀 역할을 강조하고, 부모 부양은 당연한 의무라 여기며 개인보다 집안과 조직 우선으로 하는 세대에서 자라났다. 그래서인지 어른들은 의무를 강요했고 칭찬은 늘 뒷전이었다. 저자도 가족들에게 얼마나 인정을 받고 싶었으면 그런 생각을 다 하였겠는가.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특히 자녀가 있는 어른이라면 작은 칭찬 한마디, 잘하고 있다는 고마운 말 한마디 해주면 좋겠다. 설령, 그게 인사치레라도 말이다.


돈을 버는 것은 버겁고 냉철하다. 특히 누나의 입장에서 동생 회사의 업무를 나서서 책임지고 있다는 것은 무지 고되다. 인내의 한계다. 농작물 짓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극한 직업이지만……. (‘쉼 없이 겪다’ 중, P149)


가족끼리 동업하는 것은 한 사람이 참지 않으면 불화가 생기는 법이다. 나 역시 가족들과 동업을 하며 마음고생을 하였다. 우울증이 올 정도로 괴롭고 하루하루 버티기 힘든 시간이었다. 작가도 친정엄마의 권유로 동생의 사업장에 나가 일을 하게 되었다. 인천 공항 물류 회사 일은 밤낮없이 일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었다고 고백한다. 빼빼 마른 몸이 더 마를 지경으로 긴 시간을 일했지만,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다는 글에서도 맏이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업무폰 안의 몇백 명의 연락처와 내 짧은 일기와 많은 사진을 다 삭제한 후 뒤처리를 인계해 주고 공항 철도를 그만 타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떠야 해’ 중, P181)


십여 년을 동생과 함께 했던 공항 일을 접은 작가는 바로 다음 날부터 영어유치원 청소를 할 만큼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큰 사람이다. 쉴 만도 했을 텐데 바로 다른 일자리를 찾는다는 것은 가정을 이끌어야 하는 가장의 막중한 의무이지 않았을까. 사업을 접고 이 일 저 일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닌 나의 과거가 겹쳐 보여 마음이 더 뭉클해졌다.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겠지. 여태 고생만 했으니.


시간상 잘 다니지 못했던 철학관 원장님을 뵀다. 계기가 되어서 철학 사주를 공부했다. 첨엔 어렵게 다가왔으나 내 지지의 4글자가 나를 끌어당겨서 난 지금 작명까지 하는 철학관을 운영 중이고 핸드폰을 새로 구입하고 연락처를 다시 관리하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떠야 해’ 중, P182)


이제 그의 앞날에도 서광이 비친다. 예순 넘은 나이에 새로운 일을 배워서 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철학관을 운영 중이니 이제 작가의 고생은 끝인 것 같아 한숨이 놓였다. 작가에게 냉정했던 엄마가 별이 된 후 딸 둘이서 상당히 가까워졌고 철학관도 하게 되었다. 책을 원하는 대로 실컷 읽으라고 브런치 작가도 단번에 되게 길을 터 주었다. 이 모두 친정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생긴 일들이다. 작가는 그 모든 고마움을 엄마에게 돌렸다. 엄마의 냉정함에 원한이 맺혔을 텐데도 그리 생각하는 작가가 왠지 대단해 보였다.


네가 두꺼운 의학 서적을 주인님 앞에서 베고 있었더니 네 주인님은 졸업 때 제약회사에 343대 1을 뚫고서 취업이 됐다. 고마워. (‘미스터리한 왕노랑별’ 중, P202)


여기서 말하는 너는 작가와 딸이 키우던 애완견 '승리'를 말한다. 무지개 다리를 건넜지만, 아직도 잊지 못해 가족이라고 생각한단다. 새벽에 일어났을 때 얼굴과 꼬리 없이 옆에서 자다가 벌떡 일어나 장롱 옆으로 가는 승리를 봤다고 그는 말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지만 그래서 미스터리하다고 작가가 말했나 보다.


내가 글을 짓는 것도 아이가 공모전에 나가서 상을 타오는 것도 모두 내 엄니의 유전자 영향이 커서인 듯싶다. 임팩트지. 인천 청년 포털 홈페이지 등의 공모전은 무조건 딸이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어려운 기상청 것도 최우수였어. 뭔가 할 것 같은 우리는 열성이 반짝하고 솟구치면 되더라. 그 운은 3대가 오더라. 잘된 일이다. (‘뭔가 할 것 같은’ 중, P233)


우울증으로 입원까지 했던 딸도, 부모님께 냉대받던 작가도 이제 안정적인 삶을 누리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 그 역시 엄마의 유전자 덕분이라 고마움을 느끼는 숨결이 보드라운 사람이다.


백서방은 든든해. 그리고 한 그릇의 밥도 같이 먹으니까 진짜 가족이야.

(‘백서방, 사랑해!’ 중, P240)


작가의 사위 자랑이 지극하다. 같이 맛집을 찾아다니고 경치 좋은 곳을 손잡고 다니는 장모와 사위 사이가 부럽다. 딸이 있는 가족의 풍경이 부러웠다.


<달이 뜨면 바다가 운다오> 는 출판사의 편집 없이 작가의 글을 그대로 옮겨서 출간한 책이다. 그래서 꾸밈도 없고 기교도 없는 날것의 기록이라 생생하다. 형제 관계가 돈독하지 못한 분이나 맏이의 역할로 사명과 아픔을 고스란히 짊어지신 분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마음의 생채기가 아물고,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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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을 끝으로 그동안 고마운 작가님들께 작으나마 보답을 해 드릴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인데 몇 권을 연달아 쓰다 보니 숙제같은 느낌이 있어서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답니다.그래도 다 하고 나니 속이 후련합니다. ㅎㅎㅎ

블라썸도윤 작가님 책을 많이 사서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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