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받을 게 3천이 넘는데 ‘금’ 팔지 말라는 남편

금값이 오르던 날, 우리는 팔지 않았다

by 오즈의 마법사

이 글은 개인 가정사, 특히 남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글입니다. 짝꿍인 남편에게 동의를 얻어 올림을 알려드립니다.



남편은 화물 운송업에 종사한다. 이 일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십여 년이 넘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차를 살 돈이 없어 오빠들에게 빌린 돈으로 중고 화물차를 마련했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여기저기 성한 곳이 없듯, 차도 마찬가지다. 닦고 조이고 기름을 쳐도 세월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때가 있다. 달마다 몇십만 원씩 수리비를 들였지만, 남편의 차는 이제 회생이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여름이면 에어컨이 안 나와 불볕더위와 싸우느라 옷을 수돗물에 적셔 입어야 했던 게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올겨울에는 히터마저 나오지 않아 추위와 맞서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목부터 코까지 워머로 꽁꽁 싸매고 내복 위에는 발 토시를 발목부터 무릎까지 끌어당긴 후 바지를 입었다. 평상시엔 끼지도 않던 겨울 장갑까지 꺼내어 끼며 겨울을 나고 있다.


결국, 남편은 태어난 지 22년이 된 2004년식 ‘지니’와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되었다. (‘지니’는 남편이 부르는 화물차의 애칭) 그동안 정도 들었고 무일푼이었던 살림살이를 일으켜준 ‘지니’의 노고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본인 건강도 생각해야 할 때였다. 남편과 ‘지니’의 눈물 나는 이별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막상 새 차를 구매하려고 보니 비용이 만만찮았다.


“당신 적금 들어 놓은 거 있지? 얼마 정도 돼?”

“2월과 4월에 만기 되는 적금 합하면 천만 원 정도 될 거야.”


매월 남편에게 받는 생활비와 용돈을 쪼개고 쪼개 만든 나의 비상금이다. 남편이 모아둔 적금과 펀드를 합치면 2천만 원, 둘이 합해도 3천만 원뿐이었다. 차 금액은 8천만 원인데 턱없이 부족했다. 다행히 아들이 이자 없이 2천만 원을 빌려준다고 해서 남은 금액만 대출받기로 했다.


1월 초, 뉴스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다.


“오늘 금 시세가 사상 최고치입니다. 한 돈에 100만 원이 훌쩍 넘습니다.”

‘맞다! 금, 우리 집에도 있었지.’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한 지 5년이 지났다. 그때 집에 현금은 없어도 금붙이는 몇 개 있어서 꽁꽁 싸서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던 게 생각났다. 바로 어머님 유품인 금반지 석 돈과 직장 다닐 때 하고 다니던 목걸이, 귀고리 그리고 반지였다. 직장에 나갈 일이 없던 터라 몇 년 동안 잊고 지냈지만 한 시절 나의 옷처럼 내 몸을, 내 삶을 반짝이게 했던 귀금속들이다.


“자기야, 지금 금값이 100만 원도 넘는다는데 우리도 금 팔아서 자기 차 사는 데 보태볼까?”

“우리 집에 금이 있어?”


아들이 결혼할 무렵 우리 집은 사업에서 쫄딱 망해 무일푼일 때였다. 상견례에서 양가의 합의와 아이들의 배려로 혼수 없이 식만 간소하게 치르기로 했다. 예비며느리가 마음이 불편했던지 할머님(내 시어머님)께는 꼭 선물을 해 드리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어머니, OO 이가 선물해 드리고 싶다는데 갖고 싶은 거 없으세요?”

“그러면 쌍가락지나 하나 해주면 좋겠다.”


내가 결혼할 때도 어머님께 금반지를 해 드렸는데 손부에게도 금반지를 받고 싶다는 어머님. 2016년 당시 금 한 돈은 20만 원 안팎이었다. 어머님의 손가락 굵기에 맞게 금반지를 맞춰서 내가 보관을 하게 되었다. 어머님은 손주의 결혼식 날을 몇 달 앞두고 병원에 입원하셨다. 부산에 사셨던 어머니는 맏이가 사는 대구에서 늘 치료를 하셨다. 금반지를 찾은 날, 어머니를 만나러 병원으로 달려갔다.


“어머니, 반지 예쁘죠? 한번 끼워보세요.”

“나중에 끼워 볼란다. 네가 갖고 있어라.”


어머니는 손주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하실 만큼 급속도로 병색이 나빠지셨다. 내 아들이 결혼하고 두 달이 지나 결국 어머니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말았다. 금반지도 손가락에 한 번 끼워보지 못한 채로.


장롱을 열고 여기저기 찾아보아도 금붙이 가방은 잘 보이지 않았다. 5년이 넘도록 정리는 하지 않고 삐뚤빼뚤 쌓여만 갔던 물건들이 많아서 더 찾기가 어려웠다. 장롱 맨 안쪽에 언제 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목걸이와 귀고리 세트, 그리고 반지 여러 개가 보석함에 담겨 있었다. 어머니의 유품인 금반지는 곽에 덮인 채로 주인을 기다리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내 보석함 상자에는 화이트골드부터 18K, 24K가 수두룩했다.



1000010369(2).jpg 어머님의 유품, 쌍가락지



“이걸 모두 팔면 천만 원도 훨씬 넘겠는데 자기 차 사는 데 보태면 되겠다.”

“우리 집에 이런 것도 있었네.”


남편은 어머님 반지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눈빛은 반짝였다. 대출할 금액이 줄어드는 것이니 안도하는 마음이 나처럼 있었겠지. 당장 동네 근처 금 거래소를 검색하였다. 마침 가까이 두어 개가 있었다. 다음 날 찾아가 보려고 보석함에 들어있는 귀금속은 모두 한군데로 모아놓았다.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말했다.


“금 팔지 말고 기다려 봐.”

“왜? 지금 많이 올랐을 때 팔면 대출금도 줄어들고 좋잖아.”

“앞으로 더 오를 수도 있고, 어머니 반지는 그냥 가지고 있는 게 좋겠어.”


그 일이 있은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도 금 거래소에 가지 못했다. 남편 말처럼 앞으로 더 오르면 그때 팔아도 좋을 것이고, 지금보다 내려가도 크게 손해 볼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어머님 반지까지 급히 처분하지 않아도, 남편의 새 차는 어떻게든 길 위에 오를 것이다.


스물두 해를 버텨 온 ‘지니’를 떠나보내는 서운한 마음 한쪽에, 어머님을 기억할 수 있는 반지 하나쯤은 유품으로 남겨 두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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