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에세이
간절곶.
멀리서 보면 길쭉하니, 대나무 장대(간짓대)같은 곶이라고 하여 간절곶이라 이름이 붙었는 듯 하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일출을 보게되는 동쪽 끄트머리, 툭 튀어나온 땅의 장소다.
매 해, 새해가 되어 가장 ‘새로운 해日’를 보겠다고 관광객들이 물밀듯 밀려 들어와 간절곶의 자리를 꽉 채운다.
이전, 아주 오래전. 조선도 건너 뛰고, 고려를 건너 뛰어, 삼국 시대 즈음에는 울주의 여러 지역들이 바다였다고도 하는데. 그 때의 풍광은 또 지금과 무척이나 달랐으리라.
그럼에도 이 반도에서 가장 튀어나와 동쪽으로 제 몸뚱이를 비틀어 손을 흔들고 있는 땅의 지형은, 가장 이른 햇살을 받았으리라. 여전히 말이다.
사람들은 간절곶에 서서 무슨 소원들을 빌었을까.
제각기, 다른 삶의 모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말이다.
구한말, 대한제국, 일강기, 잠깐의 통합과 전쟁, 분단기의 어디 즈음일지 모를 지금에 이르기까지.
아니, 한 번에 이야기하기에는 너무도 먼 그 옛날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러 사람들은 곶에 나와 낚시를 하건, 배를 띄우건. 그저 멍하니 경치를 구경하건 했으리라.
그 때의 사람들과 지금의 사람들의 마음은 다른가?
시대가 달라졌고 삶이 달라졌다. 한반도는 이전부터 워낙, 유독 많은 침략을 당해 어려운 시기를 많이 보낸 땅이고. 그 위의 시련을 견딘 민족을 품고 있다.
울주가 어느 부족국가의 땅이었을 때부터, 신라에 복속되었을 때. 그리고 고려의 땅이 되었을 때. 조선의 땅이었을 때. 한국의 땅이었을 때.
여러 시간들을 파도와 함께 맞아온 간절곶의 모양은 여전히 뾰족하다.
참으로 많은 세월과 파도를 맞았음에도, 제 몸을 동쪽으로 비틀어 자기 주장을 하고 있는 모난 녀석의 모양은 여전한 것이다.
간절곶이란 이름에 딱 어울리는 땅의 끄트머리.
그처럼 우리 민족은, 이 땅 위에서 참으로 자기 주장을 하며 살아왔다. 그래도-,
살아보겠노라고.
한반도 내에서 서로 시련이 되고 전쟁을 했을 때도. 혹은 왜란이 일어나 왜적들이 극성을 부리고 무수한 피가 흘렀을 때도.
또-,
지금은 분단이 되어버린 저 위의 같은 민족과, 그 너머 공산주의자들이 쳐들어왔을 때도.
참 많은 전쟁과 시련을 겪었고,
어느 어미는 간절곶에 앉아 해를 처다보며 간절히 빌었으리라.
어미의 바람이라곤 아이의 생生에 관한 것일 수밖에 없을테니.
우리가 모두 어느 어미의 자식이고, 자손이듯.
그러한 어미의 바람으로 인해 이 땅의 민족들은 이어져왔고-,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가장 천하고 처량한 신세의 인물부터 가장 고귀하고 부유한 처지의 인물까지, 그건 다르지 않으리라.
어느 어미의 간절한 바람으로 살았다.
바람을 수없이 맞으며, 해풍에 제 몸이 말라감에도 신경 쓰지 않고, 간절히 해를 바라며 내일을 향해 빌었던 어떤 어미의 간절한 소망과 소원으로. 그렇게 한민족의 피는, 역사는 이어져왔다.
그저 빛 좋은 개살구마냥 쓰잘데기 없는 사상에 물들어, 사탕발림에 넘어가 전쟁을 일으킨 어느 멍청한 사내들의 때도 있었겠지만.
간절하게 내일을 향해 빌었던 어미의 소망을 결국 끊어내지 못하고, 이 땅은 지켜졌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여전하게 동편으로 팔을 내밀고 있는 간절곶의 모양마냥, 하늘을 향해 팔을 쳐들고 간절히 빌었던 부모들의 기도가 하늘에 닿아서, 이 땅의 아이들이 여전하게 뛰논다.
지금의 시대는 참으로 평화롭다. 위로는 언짢은 이웃을 두고 있고, 다시 그 위로 더욱 부담스런 대국을 이웃으로 삼고 있을지라도.
한반도에 피와 총칼, 총탄, 포탄이 흐르던 전쟁의 시기보다는 훨씬 평화롭다.
그것을 위해 피를 흘린 자들의 시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해가 뜨고 지듯, 우리는 평생 그렇게 살아왔다.
오늘 하루가 언제나와 같은 하루가 되기 위해, 무수한 자들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 죽었고.
그 죽음 위에 지금의 삶이 있다.
지금의 하루가 ‘아무런 일도 없는’ 무탈한 하루가 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테다.
간절한 어미의 바람만큼이나, 가족의 생명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앞으로 걸어갔던 어느 아비의 소망도 참으로 셈할 수 없는 깊이를 가졌었으리라.
그 마음들의 깊이는 어찌나 ‘간절’했는지, 간절곶에서 보면 뚱, 하니 튀어오르는 저 태양과도 닮아 있으리라.
곶에서 주욱, 펼쳐지는 드넓은 바다와도 같으리라.
시야를 가득 채운 끝없는 하늘과도 비슷한 면이 있으리라.
그대는 누군가를 위해 울어본 적이 있는가?
간절하게 하늘에 대고 빌어본 적이 있는가.
지금 시대의 수많은 관광객들은, 평화롭게 차를 타고, 휴게소에 들러 먹거리를 즐기고. 새 해가 되면, 혹은 언제든 날이 좋고 때가 맞으면 간절곶에 와 일출을 바라본다.
해안가의 풍광을 즐기리라.
지금의 삶은 그 언젠가의 삶과 비교하여 어떤 무게감을 가지고 있을까.
이토록 목가적인, 안락한 시대에 살고 있다지만.
그래도 어느 어미의 바람은 이전에 못지 않으리라. 그래도 어떤 아비의 소망은 전쟁터에 나가 직접 총칼을 들고 싸우던 때와 비교해, 조금도 가볍지 않으리라.
평범해 보이는 사내, 노인, 어린이도 나라를 위해 간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전쟁이 눈으로 보이게 벌어지지 않더라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무수한 인간들은 역시 언제나 다름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제대로 살아내기 위하야’.
‘더욱 좋은 삶’을 누군가에게 물려주기 위하야.
하늘 아래 한점 부끄럼 없는 삶을 살고자 했던 어느 시인의 바람대로, 지금 시대의 사람들 역시 여전한 전쟁 속에 살아가고 있으리라.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마음을 먹고, 독살스러울 정도로 목표를 향해 매진해야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작금의 삶이리라.
그저 아무런 생각도 없이 태양을 바라보고 싶어서-. 일출, 바다, 곶의 모양을 바라보기 위하야 차를 끌고 오는 이들도 참으로 많이 있으리라.
그들의 여유, 삶의 빈틈, 생각의 빈 자리는 그만큼이나 치열하게 살아냈던 흔적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간절곶은 간절한 사람들이 찾는다.
한반도에서 가장 동쪽 끝으로 치우쳐져 있다는, 툭 튀어나와 자기주장을 하고 있는 땅에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이 과연 소원이 없겠는가.
말하지 않을뿐, 이 땅에서 ‘가장’ 유별난 곳으로 찾아올 정도로 중요한 마음의 소원들이 있으리라.
간절곶의 이름 유래는 ‘간절함’과는 상관이 없다지만. 세상에 절묘한 우연이라는 것도 있는 법이다, 늘.
손을 뻗쳐 들고, 하늘을 향해 들던, 어느 편을 향해 휘둘러대건. 그렇게 눈에 띌 정도로 발꿈치 들고 애타게 부르짖을, 삶의 고민들이 다들 있어서 간절곶을 찾았으리라.
이 땅, 한반도에서 가장 한 쪽으로 튀어나와 있는 ‘땅’과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바람’이 바다 너머, ‘하늘’에 닿기까지 간절해야 하리라.
하늘은-.
사람을 지은 신께서는.
가끔 가혹한 질문을 하신다.
정확히는 가혹해 보이는 질문들이다.
세상이 그대에게 묻는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네가 정말 바라는, 그 간절한 정의의 소원 하나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겠느냐고.
네가 바라는, 그 정말 단 하나의 소원이 그만한 ‘가치’가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보이라고.
세상에 어떤 것도 그냥 되는 일이 없다.
어떤 일도 대가를 치르지 않고 되는 것이 없다.
울주가 여러 번의 격전을 치르고 이름이 바뀌고, 주인이 바뀌고. 여러 격난亂들을 치를 때마다 몸서리치는 어려움을 겪고, 땅 위에 고통의 기억이 새겨졌듯.
시대와 역사가 그러하듯. 세상의 굴러감이 그러한 것처럼 한 사람의 생애도 그냥 되는 일이 없는 법이다.
사람들은 이곳, 저곳에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나름대로 하기 위해 간절곶을 찾았으리라.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또 동해선 위 열차를 타고서 주욱 달리고 지나는 동안 마음이 변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 위에 앉아 생각을 했으리라 본다.
자기가 있는 땅에서는, 집에서는 도저히 고민이 끊이지 않아서. 도저히 마음이 달아올라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던 이들이 지도를 찾아 여기에 왔으리라.
긴 시간 답을 찾던 이들은 땅의 한 쪽 편 끝에서 과연 답을 얻었을까.
제 나름의 결론이나 내리고 돌아갔으면 다행이리라.
그런 결론조차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 날들이 참으로 많으니까.
이리저리 고민을 해보아도 인간사의 답은 대부분은 그럴싸한 것으로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미 말했듯 그저 주어지는 건 없으므로. 당신의 정의로운 신념과, 소망과, 바람에 대하야. 그 외의 다른 모든 걸 전부 바쳐도 좋겠다는 신념만이 답이 될 것이다.
세상을 지으신 이는 썩 마음이 넉넉하시고, 좋으신 분이기에 그런 이들에게 때로 상반된 두 가지를 모두 주시는 경우가 꽤나 많다.
그렇게 얻고 또 얻어서-.
답을 얻고, 소원을 이루어서.
잡지 못할 것 같던 바람을 잡아서-.
짧은 글귀에 다 차마 적어낼 수 없을만한 간절함을 가졌던 여러 인간들의 생애가 모여 조각품처럼 구조를 이뤄내서-.
간절곶이 선 그 땅을 지켰으리라.
그 너머의 땅을 지켜냈으리라.
그 땅 위의 삶들을 지켰고, 평화를 지켰고, 어린아이를 키웠고, 다음 시대로 밀어 보냈으리라.
보우하시는 이의 바람과 선함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겠지만-.
그것을 간절히 바라고 애타게 찾고 구했던 것 역시 사람의 덕이었으리라. 몫이었으리라. 그렇게 목이 터져라 외쳐대야만 했었으리라.
간절곶을 바라본다.
그 위에 서서 먼 동편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을 붉게 태우며,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올라오는 이글거리는 항성체가 있으리라.
그 이글거림도 사람의 바람만큼 뜨겁지는 않았으리라.
헤아리기 어려운 정도로 긴 시간, 하나님의 허락하심에 따라 간구하게 되었던 모든 아비의, 어미의, 친구의, 부인의, 자식의, 노인의, 어린 것의 소망이 저 불길보다 못하지 않았으리라. 결코.
그것이 역사歷史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이끄셔서 사람이 무릎으로 구해 이곳까지 끌고 온 선조들의 간절함이다.
그 간절함은 특히나, 한반도 동쪽 끄트머리 이 곳에 많이 모였으리라.
가장 먼저 뜨는 해를 구할만큼 애가 닳았던 이들의 서두름이, 유난스러움이 많이도 쌓였으리라.
곶은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간 모양의 땅을 일컫는다.
수많은 세파를 받아도 스러지지 않고 지형을 유지한 곳을 일컫는다.
이 좁은 한반도-.
중원 대륙 동편에 툭, 튀어나와 그토록 오랜 세월 끈질기게 삶을 이뤄냈던 유구한 역사의 민족과도 닮아 있으리라.
이 좁고 지저분한 땅 위에서, 아름다운 삶을 빚어냈던 간절한 성인聖人들의 간구와도 닮아 있으리라. 그 유별나게 튀어나온 남다름은.
그 성인들의 바람을 따라 묵묵하게 걸었던 후배들의 삶도, 곶마냥 수많은 파도를 맞으며 꼿꼿하게 섰었으리라.
어느 아비의 바람, 어느 군인, 전사의 투지. 어느 어미의 소망, 그 소망을 받아먹고 자란 어린아이의 강건함이 참으로 닮았으리라. 스러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장 먼저 아침을 맞고자 했던 인간들의 정서가 이 곶에 쌓여 있으리라. 울산, 울주에 켜켜이 쌓여-, 그 고장에 고스란히 담아져 있으리라.
지금 묵묵하게 산업을 일구고, 또 삶을 살아내는 울주의 시민들과 참으로 유관有關하리라. 그 모든 삶의 흔적들은, 이어지는 바람들은.
동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곶.
동해안을 가장 튀어나와 접하고 마중하는, 어느 사람을 반기는 이의 그 유난스럽고 이른 손인사와 같을 간절곶.
아름다운 바다의 수평선이 해와 만나는 자연의 조형을 가장 먼저 구경할 수 있는 관광소.
지구, 육지, 하늘, 행성, 천체의 움직임과 그 절묘한 조화는 어찌 그리 사람의 마음을 울릴런지.
아픔도, 그만큼이나 사랑했기에 얻은 여러 상처들도, 가슴에 맺힌 답답한 고민들도 털어놓고자 육지에서 여러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
울산, 울주는 가장 동편으로 튀어나와 있어 바깥 바다의 세파를 가장 먼저 맞았고-. 왜란을 지독하게 경험하고. 한반도의 방벽이 되어 그 역할을 치열하게 치러낸 곳이었으리라.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뒤엉켜 하늘의 별마냥 이지러지고, 뒤엉겨 형언할 수 없는 빛을 내었을 전쟁터.
어느 노인의 옛 감상이 여전히 그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오래된 관광 명소.
그 모든 이름과 특이점을 가진 간절곶은 참으로 명소가 될만한 자질이 충분한 곳이리라.
간절곶의 생애生涯란,
결국 그 위에 선 사람 역사의 생애生涯를 비유하는 말일 수밖에 없으리.
헤아리기도 어려운 긴 시간 많은 사람들의 생애를 받았을, 또 많은 파도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형체를 유지해 발걸음을 견뎠을. 그 땅엔 여전히 관광객들이 몰린다.
울주군에 있는 이들이나. 울산에 사는 이들이나, 그 바깥에 있는 이들이나. 혹은 어느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도 닿았겠지.
가장 동편에 선 정기正氣가 그 땅에 맺혀 한반도의 어느 한 구석을 굳건히 지탱해왔고,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당신이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일출을 보고 있다면,
그대는 그 모든 삶과 닿아 있는 역사의 후발주자가 되리라.
그대는 혼자가 아니다.
그대의 삶은 친근한, 이 땅에서 치열하게 살아낸, 수많은 피와 땀으로 견뎌낸, 많은 선발주자들의 간절함에 닿아 있으리라.
당신은 현대, 이 시대 어떤 마음과 생각과 ‘간절’함으로 ‘간절’곶에 서 있는가.
어떤 마음으로 가장 동편 끝 자리에 와서 해를 바라보고 소원을 가지는가.
연애사, 직업사, 가정사, 그 외 다양한 인간사의 고민들이 있을 테고.
심지어 혹 삶의 존폐를 두고 고민하고 있는 안타까운 젊은이마저 개중에 섞여 있을지 모르겠다.
당신의 삶을 위해 기도했던,
수많은 이 땅 아비와 어미들의 ‘간절’함을 헤아려보고 돌이키기 바란다. 그런 젊은이라면.
가장 이른 동풍과 동녘을 바라볼 수 있는 그 곳에서,
‘생’에 대한 간절함을 얻고 돌아가길 바란다.
울산, 울주에서 치열하게 삶을 이어나가는 모든 역군들, 가정들, 주민들에게 그 땅의 정기와 역사의 유별스러움이, 한민족의 끈질김이 깃들기를 바란다.
하늘에 계신 주主를 향해 빌었던, 그 간절함이, 정의를 향한 신념이 깃들어 사라지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 땅 가장 동편을 책임지고 있는 그대들의 삶이 헛되지 않다.
울산, 울주는 아름다운 곳이다.
구불구불한 한반도, 이 땅 여러 최극단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의 긴 삶이 모여, 내륙은 안정성을 얻고 늘 간신히 버텨왔다.
동편의 태양, 바다, 바다를 건너오는 동풍이 그러하듯.
세찬 파도에도 견뎌온 간절곶이 그러하듯.
그 땅에 선 그대들의 역사가 앞으로도 수없는 날들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