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삶, 시, 예수

산문, 에세이

by 장성우 n 살생금지


시를 적자.

인생은 적으니까.

인생의 질량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매 순간을 기억하는 거고, 글은 고통을 담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적당량의 고통은 때론, 당신에게 좋은 기억력을 선사한다. 잊을 수 없는 순간들. 절대로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을 얻고 싶다면, 적당량의 고통을 얻고, 그보다 훨씬 더 큰 기쁨과 행복감을 느끼면 된다.


그럼 트라우마는 없어지고, 그 순간은 당신의 마음 속에, 뇌 속에 뚜렷이 박혀 사라지지 않는 기억이 되리라.

뭐-. 매저키스트처럼 굴라는 말은 아니다.

그냥, 인생에서 다가오는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종류라면, 그래도 되는 종류라면, 덤덤히 받아들이는 수도 있다는 것뿐.


십자가는 예수님께 고통을 주었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훨씬 뛰어넘는 기쁨이 있었기에-. 부활하셨으리라.

수많은 신학적인 지식과 해석을 생략해버린 말이지만. 아무튼. 예수님은 십자가를 고통스러워하셨지만,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기쁨이 마음에 있으셨다.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히 말이다.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주어져버린 고통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결국 고통과 절망을 뛰어넘는 기쁨을 선택하는 수뿐이다.

그것을 '삶'이라고 한다.


삶을 얼마나 살아보았냐고 그런 말을 건방지게 적는가, 할 수도 있겠다만은.


나는 '하루'를 말한 것 뿐이다.


'하루'를 살 수 있다면. 10일을 살 수 있을 거고. 10을 살 수 있다면 당신이, 100일을, 100년도 살 수 있겠지.


결국 하루가 모여서 평생이 되지 않는가, 하는. 귀납법적인가, 하는 단순한 추론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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