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에세이
https://www.youtube.com/watch?v=JioveUou7xE
아스라이 멀어지는
산복 도로의 운치.
그대가 내게 왔듯
나 역시 그대에게 한 걸음 다가가네.
계단의 오르내림에 따라 달리 보이는 부산 도시의 경치는
옛적 이곳까지 떠밀려왔던 사람들의 숨과 향취가 느껴지는 듯도 하네.
우리나라는 많은 아픔이 있어, 전란의 진통을 시대마다 간직하고 살아간다네.
우리네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고스란히 간직한 상처, 피와 전쟁의 기억은 오늘날 나의 삶이 되었지.
우리는 아픔으로 피흘린 어느 사내의 벗, 어느 사내의 자손이라네, 모두.
전쟁을 잊고 사는가, 그대여.
지난 날 조상들의 진혼가를 잊고 살았는가, 시민이여.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란의 기억은 우리를 이토록 달음박질 하게 하여, 저 먼 옛날 시골부터… 이 번쩍이는 도시까지 오게 했다네.
우리는 죽기 싫어 달렸지.
그대는 아비의 손에 등떠밀려 살았고,
어미의 품에 안겨 울던 날과, 잔소리에 갇혀 자랐고.
이제는 다시 누군가의 터가 되어 그들을 위해 살아간다지.
한국 문학의 정서는, 정취는 어디로부터 왔고 무엇을 말할런가.
이 땅에 살아온 양민들의 애환 외에 그 재료가 많진 않으리.
누군가의 슬픔으로 적어낸 글은
누군가의 위로가 되었고.
당신은 오늘 한 계단을 오르며 숨을 뱉고
다시금 살 용기를 얻었을까.
계단을 오르며 글귀를 볼 그대는 걸음처럼, 삶도 마음도 굳건히 하여 내일을 살아가겠는가.
아, 시민이여.
아, 산복도로로 향하는 길을 걷는 등산로의 발이여.
구부정한 어깨를 펴던, 그대로 굽어 걷던. 우리네 인생은 당신 발 밑에 놓인 오르막길마냥 흔들림이 없고, 당당한 실체라네.
그대는 당신 앞에 놓인 고난의 길을 어찌 걸어 올라가는가.
당신 앞의 굳건한 실체마냥, 당신은 그 길을 걸을 발과 힘을 가지고 있다네.
우리네 삶이 우리를 위협할수록, 정념과 정기는 끊이지 않고 힘을 발한다지.
고난 앞에 선 사내여. 혹은 여인이여.
혹은 노인이여, 혹은 아이들이여.
옛것과 지금날의 것을 잇는 도로와 계단처럼,
부지런히 번성해 온 이 도시의 선배들을 기억하는가.
그들처럼 우리는 우리의 오늘을 살아, 내일로의 길을 가얄텐데.
구부정한 등에 숨을 오르락 내리락,
뱉어가며 오른 168계단이 당신에겐 어떤 의미였고
삶의 어떤 하루 조금이었소.
왜란이던 중대륙의 난이던. 급변하던 산업화 세기의 난이던.
혹은 동족잔상의, 이념과 끔찍한 사상의 난이던.
새로운 정보화 물결의 난이던.
우리는 많은 곡절을 지났고-, 그것들을 견뎠고.
마침내 그대의 구부정한.
혹은 바른 등처럼 모든 시간을 지나 저 위에 서게 되겠지.
시대와 함께 걷는가.
당신의 숨은 어디에 뱉어져 무엇을 남겼는가.
유독 달뜬 숨을 뱉게 되는 계단길에서 당신은 이 때 어떤 상념으로 제 2의 도시를 바라보는가.
여행자이던, 향민이던.
우린 먼 옛날 이곳까지 밀렸고,
이곳에서 일어났었지.
간절하게 무릎꿇은 이들은 하늘을 바랐고.
기적처럼 구원의 군대가 나타나 길을 열었다네.
당시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당신을 생각한 어떤 간구자의 무릎과 기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오.
당신을 위해 피흘린 어느 선배의 처절함이, 분명 있었을 테요.
총칼을 쥐고서 울었던 이들도 있을 테고. 기꺼이 앞으로 달려나갔던 용감한 전사도 있을 테요.
각자의 역할은 달랐으되,
한반도 이 땅 위에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한 각 씨족들의 눈물겨운 분투가
오늘 날 이런 대도시를 이루었다오.
그대는 아비의 아비의 아비의, 피흘림과 무릎꿇음과, 분투와 서러움과 눈물짓던 표정을 알아줄테요.
자식을 놓지 못해 차라리 같이 죽어버리려 하던 어느 어미의 애달픈 심정을 헤아려 기억해 줄테요.
다음 세대로의 눈물들이 이어져 이 긴 산복도로를 깎았고, 산을 눌렀고, 도시를 세웠소.
어느 작업자의 고단함이 계단을 만들었고, 돌을 깨뜨렸고.
그도 누군가의 아비였을테지.
찻길 위를 달리는 운전자들의 시선이 그 모든 세월을 지나 온 도시를 바라볼테요.
계단 위를 서서 걷는 보행자들의 시야가 그 도시의 윗단을 담을테요.
무엇 하나 그냥 지어진 것이 없는 세계世界에 태어나, 무엇 하나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백육십팔 고비를 지나,
당신은 당신의 이름 석자를 시대에 새기거나, 혹은 사라지거나 할테지요.
이름도 없이 사라진 이들의 눈물이 산을 깎아 도로와 단층을 이루어냈듯
내일의 누군가를 위해 흘릴 당신의 삶, 눈물과
계단을 오르락거려 가빠진 짙은 숨과 지친 어깨가
피로한 발과 여정을 결심한 당신의 걸음이,
모두 허투루 쓰이지 않고 이 땅 위에 퇴적될 것이오.
선배의 눈물과 피나 땀을 기억하는 그대의
삶의 모든 고단함을 위로하니, 지쳤거들랑 잠시 쉬었다 가시오. 혹은 여유가 되고 안전하거들랑 경치를 구경하다 가시오, 가끔.
이곳은 많은 사람들의 삶과 온갖 진액이 흘러 겹겹이 쌓인, 단단하게 선 우리네 땅 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