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퍼Jumper, 순간이동자 1부 (39)

by 장성우 n 살생금지

무실의 층고는 제법 높은 편이었다. 위쪽으로 샹들리에를 달아 두었고, 위로 높게 뻗은 직사각형의 창문에서 내리쬐는 햇살이 아름다운 조명이 되는 공간이었다.


고개를 위로 깨나 들어야 볼 수 있는 천장 바로 아래의 허공에서, 홍인수의 신형이 나타났다. 그는 머릿속으로 집무실 내부의 광경과, 그 안에 있는 상대 부대원들의 위치를 그리고 있었다. 눈을 감고 쏘는 것과 비슷했지만, 머릿속의 데이터가 정확하다면 때로 보고 쏘는 것보다 정확할 때가 있었다.


점퍼들은 능력에 익숙해질수록 머리에 점프 능력의 보조를 하는 연산 장치가 있는 것처럼 느끼곤 한다. 그전까지는 그 작용을 인지하지 못한 채 능력을 사용하다가, 그 과정에 관심을 두고 흐름을 느끼면서 능력이 단순하게 발동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런 중간 과정에 관심을 두고 탐구를 하며, 연습을 하다 보면, 그리고 신체적인 다양한 능력이 충족이 된다면 때로 이런 묘기가 가능하게 된다.


집무실 내부에서 러시아의 특수부대원들이 성긴 모양으로 서 있었다. 여전히 외부에 대한 경계조와 건물 내부 출입문 근처에 서 있는 조가 있었고… 지휘관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지시를 받는 이들이 몇 있었다.


지휘관은 그의 금발을 헝클어뜨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점퍼가 나타났다면 딱히 대책은 없었다. 서방 세계의 입김이 강한 점퍼 조직은, 러시아 역시 연이 닿아는 있었지만 이쪽의 의뢰에 응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조직은 통일된 입장을 늘 표명하니, 전쟁 중에 저쪽의 편을 들어주었다면 이쪽의 응답에는 불응할 것이다.


자국 내에서 나름대로 구축해 온 점퍼 대응법을 살려서 화망을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점퍼가 들어온 순간 모든 작전이 엉클어졌다. 지휘관은 신경질적으로 외부와 통신을 하고, 부대원들을 다독이며 퇴각로를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천장 부근에, 난데없는 인형이 보이는 것을 깨달았다.


특수 부대의 지휘관, ’아야크 블라디미르‘는 비명을 지르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이런 씹.“


두두두두두두. 하고 홍인수가 기계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완전 무장 상태의 부대원들이 단순한 난사로 목숨을 잃지는 않을 테였다. 해봐야 방탄 플레이트가 없는 팔다리 등 구동 부위에 얻어맞고 피나 좀 흘리겠지. 사지를 잃어버릴 위험은 있었으나, 심각한 부상이 된다고 해도 그가 있는 이상 죽는 일은 없을 테였다. 전투가 끝나면 병원에 데려다줄 테니까.


점퍼로서 얻는 능력을 활용하다 보면 가상의 맵을 머릿속에 자주 그리게 된다. 홍인수는 자신의 좌표와 방향을 생각하며 허공에서 기관단총을 갈겼다. 두두두두두두! 하는 격발음, 총성과 함께 그의 몸이 뒤로 조금 밀렸다. 순식간에 그의 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 초 근처의 시간 동안이었다.


홍인수는 시야가 회복되며 대통령 집무실의 전경이 눈으로 보일 때 즈음엔, 이미 다른 도약을 시동하고 있었다.


후욱, 하고 그의 모습이 공중에서 사라진다. 갑자기 위에서부터 날아온 총탄에 부대원들은 무방비로 당했다. 대응 사격을 할 새도 없었다. 운이 좋아 방탄 재킷에 맞은 이들은 부상이 없었고, 다른 이들은 피를 흘린다.


홍인수는 이번에는, 사각형 집무실에서 창가 쪽 모서리 천장에 나타났다.


후욱, 하는 익숙한 소리는 점퍼들을 잘 아는 이들에겐 공포스러운 전조음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이는 난전 속에서 인식하지조차 못하지만. 지휘관은 나름대로 점퍼를 상대해 온 경력이 많은 인간이었다. 그는 미칠 것 같은 긴장감 속에서 집무실 내부 전체를 시야에 담았다. 순간 반응이 적보다 늦으면 총에 맞는다. 빠르면 간신히 반격이 가능하다.


반격을 하고도 상대가 맞는 건 확신할 수 없다. 숙련된 점퍼들은 그야말로 맞출 수 없는 속도로 근거리에서 연속 이동을 해댄다. 그리고 지금 그가 상대하는 홍인수는 여태껏 봐 왔던 이들 중 가장 베테랑 점퍼이자, 전투 요원이었다.


”으악!“


부대원들이 꼴사나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거나, 뒤로 물러섰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패닉에 빠지지 않은 것만 해도 장한 일이었다. 아무리 용맹한 사내라도, 갑작스럽게 총에 맞으면 비명을 지르게 된다. 그건 인간적인 인내심으로 버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두두두두두두!


귀 따가운 총성이 다시 울려 퍼졌다. 집무실 내부에서는 먼 거리에서 들려오는 교전 소리만이 들리던 곳이었다. 기관단총의 발사음이 내부를 가득 채운다. 홍인수는 FPS에서 조준 보정이라도 받은 것처럼 무식하게 갈겨댔고, 그 총알들이 절묘하게 맞았다. 전탄 명중은 아니었으나 대부분이 상대의 몸뚱이에 박혀 들어갔다는 점에서 놀라운 묘기였다.


지휘관은 홍인수를 채 찾아서 발견하기도 전에, 이미 총성이 들리고 총알이 박혀 든 상태였다. 그의 주변을 둘러싸듯 모여 있던 이들이 총알에 나가떨어졌다. 기관단총의 위력은 강력하다. 근거리 교전에서 연발로 맞으면 아무리 방탄 플레이트를 받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제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었다.


”흩어져!“


공중에서 나타나 총알을 뿌리는 사내가 있고, 부대원들이 악몽처럼 나가 떨어지는 상황 속에서 지휘관이 지휘를 내렸다. 그 말에 부대원들 중 움직일 수 있는 자들이 사방으로 움직였다. 최대한 집무실 내에서 넓게 포진한다. 홍인수는 천장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기 전에 이미 사라졌다. 지휘관은 참담한 심정을 느꼈다.


이번에 그가 상대하는 녀석은 괴물같은 놈이었다. 그가 알기로 점퍼들은 점프 능력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과 다를 게 없었다. 이렇게 난잡하게 움직이면서, 총을 쏘고 그걸 또 상대에게 맞추고 있다는 건 온전히 상대방의 능력이라는 이야기다.


자신한테 점프 능력을 주고 총을 쥐어 주어도 똑같이 해낼 자신은 없었다.


지휘관이 지휘를 내렸다.


”잘 들어! 상대는 점퍼다! 순간이동 능력자야! 언제 어디에서 나타날지 모르니 전방위 주시하다가 나타나면 한 번에 갈겨! 총을 맞으면 똑같이 죽….“


지휘의 중간에 지휘관은 섬뜩한 감각을 느꼈다. 터억, 하고 그의 어깨에 누군가 손을 얹었다. 지금 그의 입장에서는 몸속을 파고드는 총알보다 더 느끼고 싶지 않은 감각이었다. 그는, 러시아군의 소령으로서 가끔 점퍼가 참여하는 특수 작전에 백업을 선 적이 있었다. 러시아군 내에서는 나름대로 점퍼에 대한 견식이 있는 편이었고


후욱,


하고 시야가 암전되는 느낌 역시 겪어 본 적이 있었다.


그가 다음 순간에 보게 된 건 알고 싶지 않은 풍경이었다. 아야크는 상상력이나, 머리 회전이 좋은 편이었다. 적대적으로 움직이는 점퍼가 자신의 몸에 손을 얹는다면 어떻게 될지 순식간에 추측할 수 있었다.


반사적으로 단체 도약의 거절을 부랴부랴 해보려고 했지만, 그는 성공 확률이 높은 편이 아니었다. 나름대로의 요령이 필요한 일이었고, 해내지 못하는 이들은 부던히 애를 써도 잘 성공하지 못한다.


아야크는 눈보다 불어오는 바람과 냄새, 소리 따위로 현재의 위치를 먼저 알 수 있었다. 도약 이후에 생기는 시각적인 텀은 단체 도약에 참여하는 이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는 1초가 채 지나기 전 시각을 찾았을 때,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상이 펼쳐진 걸 확인했다.


아래로 까마득한 대양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하늘을 날고, 아니 떨어지고 있었고.


”어어억.“


몸이 떨어지는 기분은 영 좋은 것이 아니었다. 다양한 군사 훈련을 받은 그였지만 이런 순간의 체감은 견디기 어려웠다. 어지간한 것도 아니고, 낙하산도 없이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특수 부대의 지휘관이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다고 욕할 이도 없으리라. 그런 이가 있다면 아야크는 그 인간을 가장 먼저 낙하산 없이 헬기에서 밀어버릴 성격이었다.


점프의 전후에는 관성이 없다. 그는 허공에서 천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낙하 훈련 따위는 질리도록 받아봤지만, 이토록 끝없는 추락은 정신적인 데미지가 더욱 심했다. 죽음을 기다리기까지 한참이 걸린다.


그런 아야크의 뒤에는, 사이가 좋은 형제처럼 팔로 몸을 휘감아 안고 있는 홍인수가 있었다. 그는 아야크의 얼굴을 천천히 살피더니 이야기했다.


”거, 보니까 생각이 나는 것도 같습니다? 4년 전에 러시아 테러리스트 작전에서 있었던 아야크 소령 아닙니까?“


자연스럽게 영어로 말을 걸지만 아야크는 알아들었다. 다만 고개를 끄덕이고 차분히 대화를 할 정신은 없었다. 그가 간절하게 소리쳤다.


”빌어먹을! 마스터! 너였구나! 살려줘!“


아야크 역시 홍인수의 말에 그를 완벽히 기억해냈다. 점퍼는 충격적인 기억이었다. 스쳐 지나가듯한 모습이 아니라 그의 목소리를 듣고 바로 옆에서 모습을 보자 알아볼 수 있었다. 홍인수가 쓴 헬멧은 비교적 얇고, 안면을 가리는 부분이 투명한 재질이었다.


홍인수는 자유롭게 자유 낙하를 하면서 말한다. 헬멧 너머라 평소보다는 목소리를 키워야 했다. 고오오오, 하고 바람이 강렬하게 귓가에 쓸리는 소리가 났다. 그들은 어느새 전방으로 미끄러지듯 유영하며 추락했다. 알지 못하고 본다면, 평범하게 스카이다이빙 중인 모습처럼도 보였다.


”아니, 그런 말은 댁 내 대통령에게나 가서 하시고…. 나한테 왜이럽니까. 전장에서 만난 사이끼리.“


순식간에 가속도가 붙은 그들은 질주하듯 아래로 떨어졌다. 지구가 그들을 끌어당기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대양의 한 가운데 추락할 테였다. 이 정도의 높이라면, 어떤 곳에 떨어진다고 해도 그대로 즉사였다.


”빌어먹을! 자네 조직은 불살이 원칙일텐데! 제발! 알고 있는 걸 모두 털어놓지!“


러시아군의 엘리트 소령이라고 하기에는 변변찮은 대사였다. 다만 홍인수의 마음에는 들었다. 점퍼 조직의 원칙이 불살은 아니었다. 가급적이면 생명을 존중하자, 는 정도였지. 정말로 급한 상황에서 적군의 목숨을 일일이 보장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목숨 역시 보전하기에 바빴기에.


그리고, 또한 점퍼 조직이 전 세계 방대한 범위의 국가 수뇌들에게 연이 닿아 있으며 비교적 중립적인 조직이라는 걸 알고 있는 아야크는 빠르게 협상안을 제시했다. 점퍼 조직이 딱히 러시아의 국익에 반하는 적성 조직은 아니었다. 도리어 상황만 바뀌면 언제든지 손을 잡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제 3의 세력같은 것이었지.


이렇게 무력하고, 꼴사납게 죽는 것보다는 점퍼 조직과의 협상을 통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의 목표에 합당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는 전제를 소령은 빠르게 세웠다. 37세의 나이, 아직 자신의 인생을 끝내기에는 가야할 길이 많은 시기였다.


”어차피 소령에게 많은 걸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전쟁의 대세에 영향을 줄 수도 없을 테고…. 직접 러시아 대통령을 겨누면 그건 세계적 협약에 위배 되는 일이기도 하고….“


홍인수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가속도가 붙은 시점에서 어지간한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빠르게 추락하는 와중에 거센 바람 소리가 그들의 귀를 막는다.


점퍼들이 마음을 먹고 노린다면, 그들은 ’암살‘이라는 방법을 핵무기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공식적인 석상 등에 나타나는 순간 언제든 요인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국의 수뇌들은 점퍼 조직과 협약을 맺었다. 적대적 관계가 되더라도, 각국의 수장들을 향한 직접적 순간이동 암살은 금하기로.


점퍼들은 수가 적었고, 그들의 두 손으로 들 수 있는 짐은 한계가 있었다. 세계적 대세를 만들어가기에는 무리가 있는 조직이었으며, 그저 중요한 기로에서 평화적 선택의 도우미가 되는 정도로 자신들의 역할을 제한해야 했다.


뭐 물론, 단순한 협약이었고 어떤 미친 국가의 수장이 핵폭탄을 발사하고 세계 대전을 일으키려 한다는 정보가 접수된다면 곧바로 날아가서 납치를 해 올 것이기는 했다.


”순순히 협조한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잠깐 주무시고 계시죠.“


홍인수는 그 말을 끝으로 얼마간 같이 추락했다. 아야크는 제대로 듣지는 못했으나 홍인수가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는 기색은 알아챘다. 땅 위에서 보면 그야말로 점으로나 보일까 알 수 없는 고도에서, 그들은 얼마간 추락인지 비행인지 알 수 없는 것을 하다가 사라진다.


후욱, 하고 홍인수가 다시 도약했다. 푸르른 하늘의 어느 자리에서 모습을 감춘다.




아야크를 허공에서 조금 괴롭히고, 진을 빼둔 뒤에 기지로 이동했다. 그는 기지의 점프 포인트가 되는 밀실에 그를 두고 소지하는 마취제를 뿌려 기절시켰다. 밀실에 위치한 벨을 누르면, 기지 내에서 대기하던 대기조원들이 달려온다. 그들에게 비점퍼 구속을 부탁하고, 다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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