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의 일상공감 시작

by nemo

어떤 글을 시작할까?

그곳의 분위기, 사전 준비, 틀, 흐름.

이런 ‘미리 보기’를 철저히 했던 삶을 탈피한 지 3년 언저리가 된다.

코로나 후유증으로 1년 환자 생활, 백수 생활로 일상이 무너지면서 모든 것이 의미 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료 선생님들은 자격증 과정 준비에 몇 년을 수련과 공부를 쉬지 않는다.
나도 그랬다.
수십 개에 달하는 자격증도 이력서에 다 쓰지도 못할 만큼, 열심히 지나온 시간들이 허무하게 녹아내렸다.

이제 책임감 말고, 의무감 말고, 큰딸 말고, 나.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해보자.

그렇게 출판사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마저도, 내 책이 아닌 다른 사람의 책을 출간해주는 출판사다.
목마름이 계속된다. 지금도 그렇다.
이제는 물 한 모금, 내 목을 축이는 것으로 시작하려고 지금 브런치에 손을 올렸다.

그 시작과 끝이 어떨지 나도 모른다. 그냥 시작해본다.


이 세상 모든 것에 나의 마음이 투영되고, 그 투영된 것이 나의 해석으로 들어와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는 사실을 상담 공부하면서 깨달았다.
내가 깨달은 이 원리는 시험 공부만 했다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심리 상담을 받은 지 1년 남짓 지나던 무렵, 갑자기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꿈이 떠올랐다.
방과후 선생님도 선생님이니까,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바로 시작했다.
학생일 때, 성실하고 부지런해야 성적을 받을 수 있는 영어, 수학은 늘 어렵게 느껴졌지만 국어는 특별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늘 상위권이었던 경험이 있어, 독서지도 자격증 과정 문턱이 높지 않아 보였다.


3년 정도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내가 했던 독특한 행동이 있었는데,

아참, 최근 내 사무실에 전 직장 동료 선생님이 놀러 왔다가 나에게 해준 말이 있다.

“쌤~ ADHD 맞아. 우리 딸이랑 증상이 똑같거든. 난 쌤 처음 만났을 때 한눈에 알아봤는데?”

평생을 차분하고 얌전하니 참하다는 둥 하는 말들을 들어온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말이었지만, 금세 수긍하게 된 건 상담 공부하면서 스스로 ‘나 ADHD인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하다가, 종종 하다가, 자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글이 다소 산만하더라도 이해받고 싶은 마음에 고백처럼 흘리는 말)


그 행동이 뭐냐면, 상담사가 하는 말 중에 좋은 말이 있으면 언젠가부터 메모를 했었다.
거기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하는 것이라 독특하다 말할 수 없겠는데,
나는 그걸 큰 종이에 쓰거나 프린트해서 그 말이 필요한 곳에 붙였다.
그 말을 써야 하는 상황이 오면 보고 읽으며 그 말을 입에 붙였다.

“아, 그랬군요.”
“그럴 수 있죠.”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도대체 내가 살아오면서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나?
한글에 이런 말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사실 심리 상담을 받으면서 경험한 공감과 수용, 벅차오르는 이해받음의 경험은 마치 중독처럼 상담을 끊지 못하게 할 만큼 마음이 정말 좋았다.
상처를 직면할 때는 온몸에 몸살이 올 정도로 힘들었지만, 고비를 넘기고 나면 몸과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경험을 잊을 수가 없었다.

요즘 유행하는 러닝하는 사람들, 즉 러너들의 말처럼 극심한 고통의 시간을 넘기면 몸이 가벼워지면서 사뿐히 달려지는 경험을 하는 것에 비유하면 이해가 될까?


그렇게 열심히 상담사의 말들을 받아 적고, 입에 붙이는 연습을 한 이유는
내가 상담사가 되려고 준비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그럴 계획도 없었다.

어린아이가 처음 ‘엄마’라는 말을 밖으로 내뱉기까지
수천 번을 귀로 듣고 마음으로 연습하고, 목 안쪽에서 올랐다 들어가고 했을까?
그런 공감과 수용의 말들은 나에게 그러했다.

들어본 적도 없고, 내가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해본 적도 당연히 없었다.

말수 적고 조용한 엄마의 정서적 느낌은 아이들이 느끼겠지만,
언어로 귀에 들려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 경험하고 나니, 아이들에게 정말 정말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상담을 받고 자아도 성장하고 내 삶에 조금씩 힘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좋은 것을 갖고 싶은 ‘욕구’라는 것이 나에게 생겼다.
그 첫 번째 욕구는 ‘자신이 이해받는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언어들’을 갖고 싶다는 것이었다.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아이와 대화 중에 내가 벽에 붙은 글을 보고 말을 하는 모습을 보며

“엄마, 뭐 봐? 왜 저거 봐?”

“응, 엄마가 너랑 대화할 때, 네 마음도 잘 알고, 엄마 마음도 잘 표현하려고 공부를 했는데, 집에 오면 기억나지 않아서 벽에 붙여봤어.”

아이는 아주 짧게 머뭇하더니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때는 대화에 집중하고, 또 연습에 집중하느라
엄마의 이런 모습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알아볼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도 기억하는 나만의 느낌은, 아이 마음속에 ‘끄덕끄덕’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존경받는 상담 박사님처럼 세련된 언어는 아니지만, 노력 그 자체로 존중받는 경험을 가져간 게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으로 뿌듯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서 ‘좋은 언어’ 욕심을 내다 보니,
곳곳의 내 삶이 참 많이 달라졌다.

여차저차 상담사가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상담을 이토록 부담스러워하고 방어하고 어려워하는지를
상담사가 되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급한 어려움만 지나면 금세 상담을 중단했다.
진짜 상처 가까이만 가도 상담을 중단했다.


독서논술 수업을 병행하면서 심리 상담 공부를 하다 보니
사람들은 내가 보이는 대로 세상을 보고,
내가 경험한 대로 세상을 해석한다는 뻔한 사실들이 이론적으로 내 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백설공주 이야기로 독서논술 수업을 할 때였다.
한 아이가 일곱 난쟁이가 너무너무 불쌍하다며 펑펑 울었다.
사랑하는 백설공주를 떠나보낸 것이 더없이 슬펐던 것이다.
그러곤 왕자가 가장 나쁜 놈이라며 죽이고 싶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독립 장으로 따로 써야겠다.)


하나의 책을 읽으면서 저마다의 해석이 다르고, 등장인물에 투영되는 감정이 제각각인 것이 너무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래서 버겁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마음의 상처와 고민들과의 직면 그 사이에,
그림책을 끼워 넣어 완충 작용을 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지난주에 『흥부놀부』 이야기로 그림책 심리를 진행하고 정말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그 이야기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