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애쓴 보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에 그런 게 있는 줄 몰랐다.
나는 노력하면 관계가 더 나아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내 노력으로도 닿지 않는 마음이 있었다.
30대 중반, 두 아이가 유아기였던 시절이었다.
부모님은 멀리 계셨고, 아이들은 쑥쑥 자라는데 훈육과 내 감정 사이에서 늘 혼란스러웠다.
그때 우연히 ‘상담’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아이의 손을 잡고 심리검사를 받으러 갔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더 자세히 써 보고 싶은데, 오늘은 상황만 간단히 적어보려 한다.)
그날 동네 엄마 열다섯 명쯤이 함께 검사를 받았는데, 센터에서 “오천 원만 내면 발달단계에 맞는 심리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홍보를 했던 날이었다.
큰아이가 다섯 살이었고, 검사 결과 ‘유사 자폐’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 결과는 내게 큰 충격이었다.
그날부터 내 상담이 시작됐다.
아이를 위해 시작한 상담은 곧 나 자신을 향한 상담이 되었다.
내 사회성, 사랑 방식, 말투, 눈빛, 습관… 모든 게 아이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어두운 면을 닮아 있다는 사실이 아프게 다가왔다.
그리고, 미친 듯이 상담을 받았다.
놀랍게도, 내가 변하자 아이도 변했다.
그 변화가 눈에 보이니까 상담이 점점 즐거워졌다.
물론 상처와 과거를 마주하는 과정은 매 순간 고통스러웠지만, 아이의 삶이 변하는 걸 보니 그 고통조차 감사했다.
그때 처음으로 ‘치유가 이렇게 기쁠 수 있구나’를 느꼈다.
상담을 통해 알게 된 엄마들과 함께 집단 상담을 받으며 성장 집단을 이루었다.
그 안에서 동갑인 한 여성을 만났다.
대부분의 멤버들이 나보다 언니였기 때문에, ‘동갑’이라는 단어가 주는 친밀함이 유난히 반가웠다.
2. 닿지 않는 애씀
나는 친구를 사귀는 데 서툴렀다.
인생이 그랬다. 누군가 말을 걸어야 말을 했고
듣기만 하거나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커피도 마시고, 안부도 묻고, 좋은 걸 함께 나누며 그렇게 마음을 열었다.
밤늦게까지 통화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말했다.
“요즘 힘든 일이 있어서 당분간 연락을 못 할 것 같아.”
그 한마디를 끝으로 연락은 끊겼다.
전화도, 답장도, 눈인사도 사라졌다.
모임에서도 나를 피하는 게 느껴졌다.
이유를 몰랐다.
그저 슬펐다.
나는 무슨 잘못을 한 걸까.
몇 날을 고민에 휩싸였다.
사실, 나에게 ‘친구’는 큰 의미였다.
결혼 후 타지에서, 부모님도 친구도 없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 외로움 속에서 처음으로 ‘친구가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그 관계가 끊어졌다.
삶이 휘청거렸다.
며칠 동안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때 한 언니가 조심스레 말했다.
“너, 노력하지 않아도 돼.
아무리 노력해도 그 친구는 널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덧붙였다.
“이건 험담이 아니라, 그냥 네가 너무 안쓰러워서 하는 말이야.
그 친구는 지금 상담에서도 네 얘기를 할 만큼,
너랑 있으면 힘들대. 사람들이 너만 좋아한다고 느껴서 괴롭대.”
그 말을 듣는 순간, 세상이 멈춘 듯했다.
나는 그런 의도가 없었다. 게다가 사실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느꼈다.
그 친구는 어릴 적부터 아들을 우대하는 집안에서 자라며, 오빠와 늘 비교당했다고 했다.
나에게도 말한 적이 있고. 집단상담에서도 크게 다루었던 부분이라 그녀의 삶을 지배하는 큰 이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예쁜 말보다는 상처 섞인 말에 익숙한 삶이었다.
그런데 나에게서 ‘오빠의 그림자’를 봤던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종종 나에게 '넌 좋겠다.'라는 말을 몇 번 했던게 떠올랐다. 첫 부러움의 시작은 아주 작은 칭찬이었다. 조용하면서도 차분하게 말을 참 잘한다고 했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칭찬보다는 부럽다는 말이 늘었던것 같다.
그제야 이해가 됐다.
그녀의 삶도, 그녀의 마음도, 내 상황도...
아무리 노력해도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주 크게 경험하고 내 안에 들어와 각인되었다.
그건 내 몫이 아니었다.
그 사람의 몫이었다.
이유 없는 미움은 그 사람의 그림자 속에 숨어 있다.
그림자를 마주할 용기가 없으면, 미움은 계속된다. 아마도 그 친구는 나에 대한 미움을 멈추기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몸부림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걱정과 불안은 약간의 아쉬움을 안은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나 스스로도 아마도 '내가 뭘 잘못했지?'라며 자기 검열에 크게 갇혀있다가 풀려난 느낌이었으니까.
그 뒤로도 누군가가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는 경험이 몇 번 더 있었다. 그 때마다 이 일이 떠올랐다. 처음에 누명쓴 듯흥분했지만 화난 감정을 그냥 그렇게 그 자리에 두었다. 그리고 서서히 작아져갔다.
너무 애쓰지 않기도 했다.
나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몹시도 부러워하거나 이유 없이 미워할때면
내 안의 결핍과 상처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남에게 향했던 애씀을, 이제는 나를 보듬는 데 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