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고, 입사하고, 퇴근합니다.

진짜 나를 찾아가는 치유성장 이야기

by nemo


1. 출생 직후 입사

《작은 책방》이라는 이야기책을 읽었다. 집 안 가득 책이 쌓여 있고, 그 안에서 한 어린 소녀가 책에 빠져드는 장면을 상상했다.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풍경 같았다. 나와는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책이 공간을 차지해도 괜찮은 집, 아이가 오래 앉아 있어도 아무도 부르지 않는 집. 그 장면이 이상하게도 부럽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우리 집은 부모님 두 분 다 양가 7남매의 장남, 장녀였다. 객지 생활이었고, 양쪽 본가의 어린 동생들을 도와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집의 장녀였다. 불안정한 살림에 잦은 이사, 집 안에는 마땅한 책장 하나 없었다. 책을 읽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 놓고 읽은 기억은 없다.


일곱 살 무렵, 아빠는 외국에 나가 있었고 엄마와 우리 삼 남매가 올망졸망 살던 때가 있었다. 낮은 담벼락이 둘러진 마당에는 밭이랑이 서너 개 있었고, 방은 두 칸이었다. 우리는 한 방에만 연탄을 때고 살았다. 다른 한 방에 딸린 작은 부엌을 개조해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열었다. ‘점방’이었다.


글을 쓰다 보니 기억이 흘러간다. 나는 늘 할 일이 많았다. 태어나자마자 입사한 기분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연년생 동생은 미숙아로 태어났고, 엄마 품은 늘 동생 차지였다. 어지간해서는 엄마 품을 가질 수 없었다. 죽을 만큼 아프지 않고서는. 그런데도 나는 어린아이였다.


뭐를 가지러 갔다가도 그 자리에 있는 어떤 것에 마음이 붙들리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임무에 부리나케 달려가면 기어이 혼나고야 말았다. 한 번은 방에 쭈그리고 누워 있다가 개미가 설탕을 물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 동화 속에 들어간 것처럼, 나는 그 개미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한 줄로 이어진 개미들을 따라가 보았다. 설탕병 주변에 까맣게 붙은 개미들. 오늘 밤은 잔치를 하려나 싶었다. 장판 테두리를 지나 나무 문틈을 넘고, 벽을 타고 오르던 개미들은 벽돌 사이 작은 구멍으로 사라졌다. 그 뒤편에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담장 아래 둥글게 흙을 말아 올린 개미집 입구는 경이로웠다. 몸이 작아져 개미와 친구가 되는 상상을 했다.


어디서 멈추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스프레이가 분사되었고 소금이 뿌려졌다. 내가 울었던 기억만 또렷하다.


그 뒤로 그런 일들은 서서히 사라졌다. 나의 호기심도 함께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착한 어린이가 되었다. 동네 어른들의 칭찬이 자자했고, 엄마는 그런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언니 반만 닮아라.”
그 말은 동생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을지도 모른다. 나는 ‘잘함’의 부담을 어깨에 메고 장녀로 자라났다.


이런 일들이 무수히 쌓였겠지. 그렇게 내가 되었겠지.
그러면서 나에게 되묻게 된다. 개미를 따라가던 내가 진짜 나인지, 참하고 얌전하며 책임을 다하던 내가 진짜 나인지.


2. 여백을 허락하는

내가 궁금한 것에 시간을 쓰는 일은 늘 불안했고, 이유 모를 죄책감이 따라붙었다. 결국 나는 호기심을 접고 착한 아이의 모습을 유지하는 데 급급한 채 살아온 것만 같다. 전자가 진짜라면, 후자로 살아온 세월은 참 길었다.


부모를 대신해 동생을 돌보던 시간들, 맏이가 본을 보여야 한다는 행동의 제약,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집착. 그 시간들은 나를 책임과 의무라는 이름으로 묶어두었다.


마흔을 지나 오십을 앞둔 지금에서야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시도해 본다. 이것을 단순히 때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헌신만 하는 삶이 억울해 마음을 돌보는 치료의 시간도 있었고, 그 시간을 딛고 도전하다 넘어졌던 성장의 시간도 있었다.


그 역할들로부터 조금씩 졸업하면서, 이제야 비로소 ‘내 것’에 마음을 둘 수 있게 된 것 같다.


요즘은 책을 사도 된다. 읽다가 덮어도 된다. 누가 부르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궁금한 문장 앞에서 오래 머물러도 된다.


《작은 책방》을 읽으며 마음이 저릿했던 이유를 이제는 안다. 집 안 가득 책이 있다는 것은 아이가 마음껏 시간을 써도 괜찮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심부름으로 이름이 불리지 않아도 되고, 읽고 있는 책을 누가 빼앗지 않아도 되고, 동생의 밥을 먼저 챙기지 않아도 되는 시간. 어린이가 어린이로 머물 수 있는 시간.


마음껏 책을 읽을 권리는, 긴 시간을 나를 위해 써도 괜찮다는 허락이었다.


아이가 어른처럼 크면 안 되는 것이었다.

늦었지만, 이제는 아이처럼 살아보고 싶다. 책임보다 호기심을 먼저 존중하며, 내가 궁금한 것에 오래 머무는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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