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22년 차, 이번 명절은 유난히 길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보낸 수많은 명절처럼, 올해도 시댁에 들렀다가 친정을 가는 일정이 변함이 없겠지… 하는 생각에, 뭔가 부담되고 무료하게 느껴졌다.
명절이 다가오면 고향 갈 생각에 늘 설레면서도, 동시에 막막하다.
이동 거리만 해도 인천에서 통영까지, 남한을 거의 관통하는 거리다.
두 아이가 영유아 시절일 땐 8시간 넘게 차 안에서 고생한 적도 있다.
음식 준비보다 동선 계획이 더 머리를 아프게 했다.
이유식, 분유, 비상약, 장난감, 애착 인형까지 챙겨야 했다.
가방은 한가득, 차 안은 꽉 찼다.
그렇게 일주일을 집을 비우는 게 늘 명절의 풍경이었다.
이제 큰아이는 성인이 되었고, 둘째는 고등학생이다.
이번 명절엔 둘째만 함께했다.
큰아이는 학교 프로젝트가 있다며 남았다.
명절 전후로 이어지는 대체휴일까지, 이번 연휴는 꽤 길었다.
서로 말은 없었지만 남편과 나는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긴 시간 운전하는 사람도, 그 옆자리 앉은 사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엔 좀 쉬고 싶다.’
터져 나오는 탄식을 삼킨 채, 우리는 그 마음을 다른 말로 포장했다.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래, 당신도 하고 싶은 대로 해.”
그 말들을 핑퐁처럼 주고받았다.
하지만 사실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였다.
‘아무 데도 안 가고 싶다.’
여행이라도 가고 싶다고 몇 번 말했지만, 현실은 늘 가족이었다.
부모님의 기다림을 생각하면 매번 마음이 약해진다.
결국 우리는 타협했다.
명절 전, 2박 3일로 친정을 다녀오고, 명절 전날엔 시댁에 가서 추석을 쇠기로 했다.
추석 당일 밤에는 길게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남은 휴일은 ‘쉼의 시간’으로 남겨두었다.
아들도 그 계획에 흔쾌히 동의했다.
명절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시어머니께서 싸주신 전과 갈비, 양념게장이 아이스팩 위에 층층이 쌓여 있었다.
“안전 운전해. 잘 가.”
“수고 많으셨어요. 건강하세요.”
서로 인사를 주고받으며 우리는 출발했다.
순전히 내 느낌일지도 모르지만, 방문할 때보다 돌아올 때가 기분이 조금 더 좋은 듯 느껴졌다.
골목을 빠져나와 국도를 지나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큰 프로젝트를 끝낸 듯한 해방감이 밀려왔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내일부터 나 찾지 마.”
그 말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래, 서로 안 찾는 걸로 하자.”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찾지 않기로 합의했다.
아들은 어떨까.
내가 아들이라면, 부모님이 나를 안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다.
식사는 했는지, 귀가 시간은 괜찮은지…
그 걱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도 다음 날, 남편은 아이처럼 일찍 일어나 운동을 나갔다.
나는 실컷 늦잠을 잤다.
이불속에서 미적거리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을 누렸다.
잠시 후 아들 방 문을 두드리니 아직 자고 있었다.
“밥 먹어.”
“엄마, 알아서 먹을게. 신경 쓰지 마.”
그 말이 왜 그렇게 반가운지, 속으로 ‘야호!’ 하고 외쳤다.
오랜만에 완전한 자유가 찾아왔다.
명절의 즐거움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라면,
이번 명절의 즐거움은 ‘나만의 시간, 나만의 자유’였다.
남편도, 아들도, 나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유로웠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밥을 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해방되었다.
삼일 동안 밥을 하지 않아도 되는 기쁨 —
그건 내 인생에 내려진 작은 축복이었다.
명절의 끝,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잠시 잊기로 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다시 나로 돌아왔다.
우리에게는, 그리고 나에게는 자유의 시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