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 독서일기
사피엔스 앞 페이지 스무 장을 읽다가 벌써 글을 세 개나 썼다.
방학을 맞아 딸아이가 집에 왔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돌아온 얼굴에는 공부와 친구 사이, 열심과 낭만 사이,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자취방과 학교를 오가며 사 먹는 음식과 통제 없는 자유 속에서 조금 오른 볼살마저 아직은 아기 같아서 귀엽기 그지없다.
이 모든 말은 결국 “사랑스럽다”로 퉁치게 된다.
하루 종일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침대 위에 널브러진 이불처럼 그렇게 누워만 있었다.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책들은 고3 때 필독서였던 모양이다.
종이는 아직도 새책처럼 날이 서 있다.
“어떤 게 재미있어?”
묻자 이것저것 골라주다가 사피엔스를 권한다.
명색이 엄마인데…
이 벽돌책을?
허걱. 내려놓을 수도 없고 유쾌한 척 집어 든다.
“이걸? 이게? 재미있었어? 정말?”
사회계약설보다 재미있단다.
알겠어, 하고 호기롭게 식탁 앞에 앉았다.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덕분에 40페이지를 읽는 동안 글을 세 개나 썼다.
책이 싫어서 글로 도망친 건지,
책이 좋아서 영감을 받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결국 책을 통해 나를 더 깊이 알아가고
그 흔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사람인 것 같다.
지금은 스쳐가는 이 시간들을
언젠가 딸과 다시 넘겨보기 위해서.
최근 그림 취미에 푹 빠져 소홀했던 글을 다시 쓰고 나니 기분이 꽤 좋았다.
그래서 더욱 타인을 위한 서평보다는 독서 일기를 남기는 편이다.
사피엔스, 어디 두고 보자.
아들이 “그 책 뭐야?” 하고 묻길래
엄청 재미있는 책이라며 괜히 호들갑을 떨었다.
결국 40페이지에서 아들 방으로 가버린 벽돌.
곧 화석이 될 것 같다.
책은 잊혀도,
함께 보낸 시간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