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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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mo

1. 왜 나는 드라마 앞에서 무너질까

아, 욕이 나왔다. 열등감과 피해의식으로 골골거리던 내 인생이 싫어서였다. 드라마 한 편을 보다가도 감정이입이 되어 끝까지 보지 못하고 울다 멈추기를 반복한다. 현실과 화면의 경계도 분간하지 못한 채 마음이 먼저 파도쳐 집을 삼키듯 번진다. 온 마음이 젖은 채 가라앉는다.

대한민국을 흔들었다는 드라마, ‘관식이 신드롬’이라 불리던 작품도 보다 말다를 반복하며 제자리걸음이다. 밥 알이 목구멍에 걸린 채 눈물인지 콧물인지 뒤엉켜 밥도 드라마도 제대로 넘기지 못한다. 왜 나는 이렇게 많은 것을 느끼는 걸까.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으며 폭싹 속았수다를 틀었다. 이십 분이면 먹을 밥이 한 시간 반이 되었다. 대학생 주인공이 결국 유학을 결정하고 일본행 비행기 안에서 울음을 참지 못하는 장면이었다. 부모는 삶을 쪼개 학비를 보태고, 이사를 위해 트럭에 짐을 싣는다. 그 장면 앞에서 내 눈도 함께 벌겋게 달아올랐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이내 눈물샘이 터졌다.

'아, 씨!' (왜 자꾸 눈물 나는거야.)


2. 끝내 울지 못했던 스무 살

그 장면은 내 스무 살을 여기로 데려왔다.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고도 등록금을 내지 못했던 날의 아픔. IMF의 폭풍 속에서 우리 집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진학을 포기하고 취직을 택했지만, 내 월급 통장은 압류가 걸려 출금조차 되지 않았다. 신입사원에 실적 하나 없는 은행 직원이었던 나는 대출 조건도 되지 않았다. 지점장님 책상 앞에서 도둑처럼 고개를 숙이고 서 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정수리로 쏟아지던 말들을 견딘 끝에 마이너스 통장 하나를 만들 수 있었다.

아버지의 밀린 의료보험료를 내고, 말소된 주민등록번호를 살려내느라 전화를 돌리던 시간들. ‘이럴 때 왜 내가 직계장손인가’라는 원망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울 시간이 없었다. 지하로 떨어진 잔고를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데 몇 번의 봄이 지나갔다. 그 사이 내 삶의 봄은 오지 않았다.

그래도 드라마 속 그이는 유학을 갔다. 선택할 수 있었고, 엄마가 있었다. 견디기 힘들 만큼 부러웠다.
왜, 난.
이 원망의 응어리는 여전히 내 안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3.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는 말이 화가 나는 이유

조금 전에 내이름의 연구실에 앉아 햄버거를 주문해서 먹었다. 분명 먹고살 만해졌다. 그럼에도 그 시절의 슬픔은 아직 가슴을 아리게 한다. 그래서인지 자기계발서에서 흔히 보는 “과거에 얽매이지 말라”는 문장이 유독 날 선 칼처럼 느껴진다.

누구는 얽매이고 싶어서 얽매이나. 잊고 싶지 않아서 붙잡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꾸 떠오르고, 자꾸 생각나고, 자꾸 아픈 걸 어쩌란 말인가.


애도하지 못한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의 신경계는 생존을 우선한다. 버텨야 할 때는 감정을 접어 둔다. 감정을 몰라서 울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때의 살아남아야 하는 절박함이 슬픔위에 올라 삶을 군림했다. 감정은 고개도 들지 못했다.

슬픔을 느끼는 것은 미뤄질 수 있다. 그러나 소멸되지는 않는다.



4. 조금씩,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이제는 그때만큼 절박하지 않다. 감정을 무조건 뒤로 미루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산다. 그런데도 어느 날은 나도 모르게 감정을 차단한 채 하루를 버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속상한 일이 있어 조금 울면 괜찮아질 것 같은데, 몸이 굳은 듯 아무 반응이 없다. 분명 슬픈데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그럴 때면 일부러 슬픈 영화를 본다. 이야기의 힘을 빌려 감정을 깨운다. 눈물이 흐르면 그제야 오래된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순간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슬픔은 오늘의 것인가, 아니면 오래전 끝내 울지 못했던 스무 살의 것인가. 가만히 머물러 있으면, 그때 남겨 둔 감정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아직 슬프다고.


그래, 많이 힘들었지.
이제는 슬퍼해도 된다.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울어도 된다.


애도는 제때 하지 못했다고 해서 기회를 잃지 않는다.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심리상담에서는 이런 과정을 ‘감정접촉’ 혹은 ‘감정소통’이라 부른다. 억눌린 감정을 안전하게 다시 만나고, 현재의 자원으로 감당해 내는 과정이다. 그렇게 하면 과거의 내가 조금씩 회복되고, 지금의 나도 함께 단단해진다.


감정소통은 한 번에 다 하지 않아도 된다. 조금씩 나누어 느끼고, 조금씩 나누어 울어도 된다. 그렇게 하고 나면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한 변화가 생긴다. 어제보다 덜 흔들린다. 상처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상처에 끌려다니는 시간은 줄어든다.


재구성은 과거를 지우는 일이 아니다. 그 의미를 다시 쓰는 일이다.
나는 더 이상 “왜, 난”에 머물러 두지 않으려 한다.
지난날을 보듬으며, 지금의 삶을 더 단단히 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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