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서랍에서 꺼내 보는 글

글을 쓰다 방황할 때 다시 읽는 글

by nemo



나는 글을 쓸 때 생각을 정리한 뒤 쓰기보다는, 떠오르는 즉시 쉬지 않고 써 내려가는 편이다. 생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그대로 기록한다. 그래서 내 글에는 명확한 결론보다 머뭇거림이 먼저 나오고, 답보다 질문이 오래 남는다. 반복되는 문장들과 정리되지 않은 문장들이 흩어진 느낌이지만, 하고 싶은 말의 방향만큼은 또렷하다.


내 글의 중심에는 늘 하나의 의미가 담겨 있다. 산골짜기를 고요하게 흐르는 글도 있고, 빗물이 되어 길과 도로를 훑으며 하수로 흘러가는 글도 있다. 그러나 그 끝은 늘 고요한 바다를 향해 있다. 말 없는 바다처럼, 긴 설명 없이도 그 자리에 머물며 나라는 우주를 보여주고 싶다.


글을 다듬을 때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에 가까워졌는지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내 단어가 누군가에게 칼이 되지 않을지 조심스러워, 지웠다 쓰기를 반복하며 단어와 씨름하다 하루가 흐르기도 한다. 논리를 고치기보다 자꾸만 마음을 돌아본다. 서투른 문장에서 더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도, 강한 단어 대신 차라리 지루한 반복으로 남겨둔다. 그것이 내 사고의 결인 것 같다.


나는 질문 뒤에 답을 붙이지 않는다. 질문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독자에게 건네는 여백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내 글이 건네고 싶은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내가 아는 말을 수없이 설명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는 데 많은 에너지를 쓴다. 글을 절제하는 일에 생각보다 많은 노력을 들인다. 스스로 답을 찾아가고 싶은 욕구가 살아나기를 바란다. 내가 답을 제시하는 순간, 누군가의 사유를 통제하는 존재가 될까 봐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삶을 바꾸지 못해도 괜찮다. 다만 오늘 밤, 나로 인해 잠시 편안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 아니, 조금은 불안하더라도,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함께 방황하는 시간을 나누고 싶다.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시간을 건넬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보고 있다”고 말한다. 정리된 답을 쓰지 않아도, 정직한 태도는 결국 신뢰가 된다고 믿는다. 사실 내가 조언처럼 적어 내려간 말들 중, 나 스스로 완벽하게 실천하고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래서 글을 쓰다 방황할 때, 더 잘 쓰고 싶어 스스로를 몰아붙일 때, 나는 다시 글로 돌아와 설명하던 흔적들을 통째로 지워버린다. 내가 쓰는 방식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내가 설명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쉽게 설명하고, 또 잘 전달한다. 그래서 강의가 직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글은 다르다. 특히 수필은 더욱 그렇다. 수필에서는 그냥 나를 쓰고 싶다.

그리고 이 글을 남겨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설명해 준 문장들을, 내 말로 다시 정리해 적어 둔 기록이기 때문이다. 나를 오래 알아서가 아니라, 내가 쓴 문장만으로 나를 말해주었기에 오히려 더 또렷하게 느껴졌다. 관계의 기억도, 선입견도 없이 문장 위에 드러난 결을 따라 내 사고의 습관과 머뭇거림을 짚어낸 말들. 가까운 사람들도 잘 모르는 나의 태도가 먼저 설명되어 있었고, 그 문장들을 읽는 순간 나는 처음으로 정확히 읽힌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 존재가 나를 한 줄로 설명한다면, 아마 이런 말이었을 것이다.


완벽을 향해 나아가면서도, 끝내 남는 작은 흔적들까지 사랑하는 사람.


나는 완성을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더 잘 쓰고 싶어 고민하고, 한 문장을 붙들고 오래 머물기도 한다. 그러나 완성의 환상에 스스로를 가두지는 않는다. 사람이 쓰는 글은 본래 미완이고, 삶 역시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완벽을 향해 나아가되, 그 과정에서 남겨지는 작은 흔적들까지 함께 끌어안는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이고, 살아가는 태도이기도 하다.


이 글을 남겨두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언젠가 다시 나를 의심하게 될 때, 내가 어떤 마음으로 쓰고 있었는지 잊지 않기 위해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완벽을 향해 가는 동안 생긴 모든 흔적이 이미 충분히 의미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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