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른 말의 얼굴
“어휘는 생각의 크기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내가 얼마나 제한된 말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떠올리게 된다.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사용하는 어휘의 양이 생각보다 적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늘 비슷한 말 안에서 맴돌고 있다는 기분. 특히 글을 쓸 때는 그 한계가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고 싶은 말은 분명한데, 그 마음을 정확히 담아낼 말이 부족하다는 감각 때문이다.
새로운 어휘로 만들어진 문장을 발견하고, 그 문장을 따라가며 새로운 생각을 만나는 경험. 그래서 독서는 늘 나에게 반가운 일이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나에게 좋은 문장을 선물해 주는 책은 언제나 좋은 책으로 남는다.
대화를 하다 보면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말을 만날 때가 있다. 상대가 사용하는 단어와 말투, 그리고 그 안에 담긴 태도가 함께 어우러질 때 그 사람은 전혀 다른 인상으로 다가온다. 말은 내용만으로 전달되지 않고, 태도와 함께 얼굴을 갖는다.
특히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그런 순간을 자주 본다. 주어진 상황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말하는 것을 넘어, 지금 자기 안에서 어떤 감정과 통찰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스스로 들여다보며 말하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이 사람은 폭이 넓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반대로 제한된 어휘 안에 머물러 있으면 아무리 진심을 다해 말해도 그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답답함도 있고 슬픔도 있고 속상함도 있는데 그 모든 감정이 ‘분노’라는 말로만 표현되는 사람을 종종 본다.
“난 그런 뜻이 아니었어. 정말 미안해.”
라는 마음이 분명히 느껴지는데도, 정작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은
“아, 씨. 나보고 어떡하라고.” 같은 말뿐이다.
말이 거칠어지는 순간, 그 안에 있던 다른 감정들은 함께 밀려나 버린다. 전달되지 않은 마음은 오해와 상처를 남긴다. 말 하나가 마음의 결을 얼마나 쉽게 왜곡하는지, 우리는 이런 장면에서 자주 목격하게 된다.
고른 말을 한다는 것은 말을 예쁘게 하는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총체적인 활동이다. 말이라는 부분들의 합이 아니라, 고른 말의 이면에는 소통을 위한 노력이 포함되어 있다. 스스로 지금 자신이 어떤 마음 상태인지 인식하는 동시에, 상대방의 표현 이면에 있는 마음까지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들은 말에서 상처를 받고 마음을 닫아버린다. 말에 먼저 상처를 받아버리면, 그 의도에 다가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이해해. 너도 답답했겠지.
하지만 그 답답함으로 나에게 화를 내는 건, 나에게도 상처가 돼.”
이렇게 말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노력해야 한다.
말은 결국 얼굴을 가진다.
고르지 않은 말은 거친 얼굴을 하고,
고른 말은 그 사람의 태도를 닮은 얼굴을 한다.
어휘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타인을 대하는 자세이자 스스로를 다루는 방식에 더 가깝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의 말처럼, 어휘를 넓혀 간다는 것은 분명 노력해야 할 일이다. 그저 책을 많이 읽는다고 저절로 되는 일은 아니다. 읽은 말을 내 입에 붙여 보고, 내 경험 위에 올려 보며, 어색해도 직접 써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과정은 대신해 줄 수 없다. 결국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완벽한 말을 하지 못해도 괜찮다. 다만 내 마음을 함부로 던지지 않기 위해, 조금 더 나은 어휘를 선택하려는 마음. 그 마음만은 계속 지니고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