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깡을 좋아해

by nemo

요 며칠, 이상하게도 소라깡이 자꾸 먹고 싶었다. 밀가루를 튀겨 물엿 시럽을 입힌, 달고 바삭한 과자. 봉지를 뜯는 순간부터 손이 멈추질 않는다. 너무 열심히 씹다 보면 가끔 볼 안쪽을 잘못 깨물어 피주머니가 맺히기도 한다. 걸리적거려 터뜨릴 때면 시큼한 피 맛이 혀끝에 번진다.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임에도 자꾸만 소라깡을 찾는다.


소라깡을 씹을 때 나는 아삭아삭한 소리가 뇌를 울린다. 바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쌓여 있던 긴장과 피로, 말로 꺼내지 못한 감정들이 잠시나마 흩어지는 느낌이 든다. 짧은 시원함, 빠르게 채워지는 당. 아주 작은 위로 같은 이 감각이 소라깡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요즘 마음이 자주 가라앉는다.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도 잠시, 금세 물속으로 잠기는 것처럼 처진다. 이런 감정의 오르내림이 반복되면 문득 생각하게 된다. 혹시 내가 우울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낼 때는 이런 감정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하루를 버티는 것만으로 벅찼던 시절에는 마음의 상태를 묻지 않는 편이 훨씬 편했다. 아니, 마음이 뭐야? 관심도 없었다.


돌이켜보면 잠시도 여유를 부리지 못할 만큼 바쁘게 살아가는 삶이 정상이었을 리 없는데, 그 시간이 오히려 정상의 삶인 것처럼 여겨졌다. 근면성실이 칭송받고, 감정에 머물 때면 청승이라며 한 잔 술에 마음을 삼켰으니까.


40대가 되면서 내 감정에 더 깊이 관심을 가졌고, 최근에는 나를 자주 느낀다. 지금 어떤 상태인지, 무엇에 반응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쉽게 지치는지. 그리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을 위해 무엇을 견뎌야 하는지도 조금씩 알게 된다.


이 과정은 마치 내면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시간 같다. 서로 다른 마음들이 각자의 의견을 내고, 쉽게 합의되지 않은 채 부딪힌다. 결론에 이르기까지 오래 걸리고, 타협점을 찾기 위해 몇 번이나 방향을 수정한다. 느리고 번거롭다. 때로는 상처를 다루는 것처럼 아프다.


하지만 이 과정이 없다면 나는 나를 건너뛰게 된다. 이 시간을 통째로 삭제해버린다면 그건 아마 내가 나에게 가하는 조용한 폭력일 것이다. 다시 정신없이 바빠져 감정을 눌러두고, 느껴지지 않게 덮어두고, 편한 듯하지만 늘 시달리는 삶으로 돌아가는 것. 나는 더 이상 그 방식으로 살고 싶지 않다.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모른 채 간단하게 떼우고, 효율성 아래로 밀려난 나의 기호와 섬세함들이 울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존중받고 싶어 하는 소중한 마음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감정을 느끼고, 흔들리고, 지금의 나를 알아차리며 살고 싶다. 나를 존중하고 싶다.


이 모든 것이 중년에 찾아오는 감정의 변화인지, 아니면 많은 경험 끝에 의미 없는 것과 의미 있는 것을 가려내는 마음의 재정렬 과정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다. 더. 잘. 나를. 존중하고 싶다.


지금의 이 흔들림은 없애야 할 문제가 아니라 내가 보듬고 통과해야 할 시간이라는 것. 나는 오늘도 소라깡을 씹으며 내 안에서 나는 작은 부서짐의 소리를 듣는다. 소라깡을 좋아하는 나를 존중하고 싶다.


이제 그만 먹어야겠다. 입 안이 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