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이 되어 자취를 하고 있던 대학생 딸이 집으로 왔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가 돌아온 것처럼 마냥 설레고 기뻤다.
아이랑 미술관을 가고 싶어서 예매를 할지, 일정을 물어보고, 좋아하는 미술관인지 이런저런 말을 걸어본다.
대체로 아이는 내가 하자는 걸 잘 따라주었다. 본인이 진짜 하고 싶은 건지, 엄마 마음에 맞춰주는 건지 살짝 헷갈리기도 했지만 그냥 순조롭게 지나갔다. 나도 따라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두었다.
대부분 자기 방과 거실을 오가며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잠시 나갔다 오기를 반복했다. 잠자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 식사 시간까지 딱히 개입하지 않고 자신의 시간대로 움직이게 그대로 두었다. 뭐 먹고 싶은지 물어보고 이런저런 음식을 해놓고 출근을 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손 갈 데 없이 해 놓았다.
그리고 겨울에 살까 말까 고민했던 겨울 코트가 지금딱 세일하는 기간이라서 같이 가서 한 번 봐달라고 했다. 옷을 고르는 감각이나 패션 감각이 나보다 훨씬 뛰어나기 때문이다.
“아, 엄마 그건 아니야.”
“아, 엄마 이건 정말 예쁘다.”
“이건 엄마한테 정말 잘 어울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행복했다. 이게 나에게 있어 이렇게 행복한 일인가 싶을 정도로, 너무 작고 깨알 같은 행복들이 가득 모여 있는 느낌이었다.
작은 접시에 반짝이가 한가득 담겨 있는 기분처럼. 너무 소중하고, 후 불면 날아갈 것 같이, 너무나 가련하고 소중하고 예쁜 행복이었다. 종종 손에 깍지를 끼면 끼는 대로 손을 잡아주고, 팔짱을 끼면 끼는 대로 해주었다.
이틀이 지나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깨닫지 못했는데, 글을 쓰다 보니 살짝 눈물이 글썽해진다. 내가 왜 이토록 행복했었는지….
그렇다. 아이가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껴안는 거, 뽀뽀하는 거, 손잡는 거 어느 것 하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쩌다가 굉장히 기분이 좋거나 용돈을 받는 날이 아니면 선심 쓰듯 엄마 품에 살짝 안겨주었다. 그마저도 마음대로 못 했다. 너무 살짝이어서 엄마인 내 입장에서는 구차하기까지 했다. 그 소중하고 귀한 내 딸에게 손끝 하나 댈 수도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사춘기가 지나가고 성인이 되어 이렇게 나란히 친구처럼 팔짱을 끼고 걷고, 먹고 하는 이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고 고마웠다. 한참 행복에 겨워 밥을 먹고 카페도 가고, 카페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나의 취미 생활인 어반 스케치를 하는 동안 아이는 옆에서 같이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나의 모든 행동에 다 보조를 맞춰주었다.
엄마가 하는 대로 다 하게 하는 것도 살짝 어색할 만큼 행복했다. 엄마가 아닌 ‘어머니’ 대접을 받는 기분이랄까.
그러다가 아주 정말 진짜 조심스럽게 딸아이가 입을 열었다.
부모한테 하는 말 같지 않고, 정말 오래된 친구에게 쌓인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듯 말을 꺼냈다.
“엄마, 현준한테 뭐 하지 말라고 말하지 마. 그리고 칭찬 좀 해줘…. 지금 저 나이에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우고, 사고도 안 치고 집에 잘 있는데 착하잖아. 저만하면 좋은 애야.”
정말 고요하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나는 더 작아지는 걸 느꼈다.
현준이는 두 살 어린 남동생이다. 우리 집 막내. 오랜만에 집에 왔을 때 둘째가 엄마한테 혼나는 모습을 종종 봐서 그런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어, 알겠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아니, 어… 그래. 어떤 점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라고 물었다.
“솔직히 아빠가 현준이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건 오랫동안 알고 있고, 현준이도 알고 있는데, 엄마도 현준이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게 내가 느껴질 만큼이라서…. 현준이가 속상할 것 같아. 그리고 현준이 뭐 잘못해도 계속 잘한다고 얘기해줘. 잘한 거 찾아서 일부러 칭찬해주고, 잘한다고 계속 얘기해줘.”
그 순간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한편 딸을 잘 키운 것 같아서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둘째가 가엾게 느껴져서 슬픈 마음까지 여러 가지 감정이 한꺼번에 들이쳤다. 오만 감정이 다 든다는 말이 지금 딱 맞는 말이었다.
마음속에는 태풍이 불어오는데, 내 얼굴은 정말 고요했어야만 했다. 그 아이의 조심스러움, 공손함, 예의 바르고 따뜻한 말을 내 파도로 덮치고 싶지 않았다.
그 예쁜 말과 그 마음을 정말 소중한 그릇에 담아두고 싶었고, 소중한 상자에 넣어두었다가 먼 훗날 동생이 힘들어할 때 선물로 주고 싶었다.
“그래, 알겠어. 엄마가 꼭 그럴게.”
내가 정말 부끄러웠던 이유는, 내가 심리상담사로서 양육자 상담이나 양육자 교육을 할 때 늘 반복적으로 해왔던 말이기 때문이다.
나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최대한 칭찬거리를 찾아 칭찬했던 시간들이 있었는데, 상담 일을 그만두고 나서 낙엽처럼 시들어버린 것 같았다. 어떻게 내가 이럴 수 있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에게 너무 속상했고, 딸에게는 정말 고마웠고, 자녀들을 이렇게 키워낸 나 자신이 대견했다.
집으로 돌아와 둘째 아이 얼굴을 보는데, 어쩜 그렇게 빛나고 예뻐 보였는지. 다른 그 어떤 날보다 가장 예쁜 날이었다. 이렇게 예뻤는데, 그걸 잊고 지낸 시간들이 아까웠다.
엄마한테 용돈 받으려고 열심히 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다.
“엄마, 청소기는 2,000원이야. 빨래 개는 건 4,000원이야.”
용돈이 더 필요할 때 늘 하던 행동이었다.
‘그래, 이런 애가 어디 있다고….’
나는 더 작아지고, 마음은 따뜻하게 가득 채워졌다.
이렇게 예쁜 아이인데…. 이렇게 예쁜 별들이 두 개씩이나 내 삶에 반짝이다니….
정말 내 삶의 소중함을 깨워준 딸에게, 그리고 두 별의 탄생에 기여한 나 자신에게, 장하다고 말해주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