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이미 있었던 사랑
책 속 다정한 가족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내 마음 깊숙한 곳의 서러움 단추를 꾹 누른다. 잘 읽어가던 책장을 만지작거리며 마음이 머뭇거리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아버지는 일요일이면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어린 나를 데리고 집 앞의 작은 산을 오르셨다.” ― 『우리의 낙원에서 만나자』 141쪽 ―
아빠는 나를 데리고 산에 오른 적이 있었나. 그런 상념에 잠기다 이내 멍해진다. 다른 책에서도 마찬가지다. 『당근에 너를 보낼래』에서 언니가 동생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을 보면 부러움에 마음이 아려온다.
이런 장면들 앞에서 나는 자꾸 발걸음을 늦춘다. 책장이 느리게 넘어가고, 마음 한쪽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한 묵직함이 나를 덮는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포근한 순간들이 오히려 시리게 다가와 책을 덮고 싶어진다. 다들 있는 엄마가 내게는 없는데, 세상의 기쁨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던 마음이 내 청소년기를 오래도록 덮고 있었다. 타인의 다정함을 지켜보는 일은 내게 고통이었다. 그때는 내가 우울한지, 슬픈지도 모른 채 그저 감정을 차갑게 얼리며 시간을 건너왔다.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서러움 단추가 눌리면 나는 다시 그 시절의 한기 속으로 돌아간다. 스스로 굳지 않으면 끝없이 흐르는 눈물이 나라는 존재를 삼켜버릴 것만 같았던 그 시간으로.
그래서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 다짐했다. 이 아이에게만은 내가 경험한 어둠을 절대로 물려주지 않겠다고. 기억에도 없는 엄마의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나는 다정함을 책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육아책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소통과 교감의 방식을 공부했다. 읽은 것을 실천하며 아이와 성장하는 매 순간이 기쁨이었고, 나는 내가 다정함을 ‘독학’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돌이켜본다. 다정함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기에 아이에게 주고 싶었던 그 갈망은, 사실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고서는 생길 수 없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내 안에 다정함의 ‘씨앗’이 있었기에 그것을 꽃피우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닐까. 그 다정함이 엄마에게서 왔다는 사실은 상담을 받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쎄쎄쎄. 우리 아기 까꿍. 아침바람 찬 바람에….”
엄마에게서 이미 받았던 다정함이었다. 헤어짐의 거대한 아픔 아래 묻혀 있었을 뿐, 사라진 적 없던 기억들. 내 안에는 여전히 상처 입은 내가 있지만, 엄마에게서 받은 다정한 나 또한 함께 살아 있음을 이제는 안다.
나중에 이 글을 쓸 무렵, 예전에 덮어두었던 그 책들을 다시 펼쳐 보았다. 따뜻한 풍경은 여전히 부러웠지만, 이번에는 책을 덮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나와 아이의 시간을 떠올리며, 나는 그 기억과 함께 천천히 다음 문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